용 한 마리를 품었건만...

"여자아이들만 있는데요. 뭘“

by 장희명

용 한 마리가 하늘에서 내려와 내 품에 달려들었다.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늘 그렇듯 아침을 알리는 까치 소리가 정신을 들게 했다. 그 꿈을 꾸고 태기가 있었다. 꿈이 너무나 웅장하고 커서 이번에는 필시 아들이라는 소망을 품었다. 큰 아이가 마당을 나비처럼 팔랑팔랑 뛰어다니며 놀고 있었다. 배가 불러와서 집에서 봉투 붙이는 일만 하고 있으니 큰 아이는 신이 나 있었다. 아직 엄마의 품이 많이 그리운 아이를 떼어놓고 일을 다녔으니 아이는 늘 마음이 공허했을 터였다.


"엄마, 저 이제 동생 태어나는 거죠?"

"그래, 우리 명옥이 이제 누나 되는 거다."

아들이라는 걸 장담하고 당당히 '누나'라는 말을 했다


"남자 동생이 생기는 거예요? 저는 여동생이었으면 좋겠어요. 저랑 같이 소꿉놀이도 하고, 꽃 따다가 꽃반지 만들어 나누어 끼고 놀게요."

"그런 말 하지 마라. 남자 동생이 훨씬 좋아. 나중에 힘든 일 있으면 도와줄 수도 있고."


아이의 말에 부정이 탈까 배를 어루만지며 영글기 시작한 대추나무를 바라봤다.

'제발, 아들이 태어나게 해 주세요.'

매미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고,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기 시작하는 7월 초순으로 접어들었다. 진통이 느껴졌다.


"얘야, 순돌이네 할머니를 불러오렴."

"엄마, 아기 나오려고 하는 거예요?"

"그래, 얼른 가서 할머니를 모시고 오렴."


너무나 가녀리고 작은 여자아이가 태어났다. 윗목에 아이를 눕혀 놓고 안아주지 않았다. 사내아이인 줄 알았건만 또 여자아이를 낳아 실망이 되었다. 남편을 닮은 잘생기고 늠름한 남자아이를 낳고 싶었다. 게다가 아이가 너무나 약하고 빼빼 말라 살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여보게. 아무래도 이 아이는 오래 못 살 것 같네."


순돌이 할머니의 말이 귀에 맴돌고 서운한 마음이 가득 차 아이를 윗목에 눕혀 놓고 한숨만 쉬었다. 시절이 좋지 않아 많은 아이들이 태어나고, 많은 아이들이 태어나자마자 얼마 안 되어 죽어도 아무렇지 않은 그런 때였다. 산모가 잘 못 먹어서인지 젖도 잘 돌지 않아 쌀뜨물을 끓여서 아이의 입에 넣어 주었다. 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봤다. 가슴에서 뜨거운 불길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이 아이는 살겠구나’ 싶었다.


아이는 가녀린 모습으로 기필코 살아났다. 크는 속도도 느리고 잘 먹지도 못했지만 그래도 생명줄을 붙잡고 제 몫의 삶을 이어나갔다. 태어난 지 석 달이 넘어서야 이름을 지었다. '구슬 옥', '빛날 희', '옥희'였다. 명옥이가 옥희를 정성껏 잘 돌보며 같은 집에 사는 좋은 친구로 살아가게 되었다. 아이는 자라나면서 얼굴이 뽀얗게 되고 눈이 동그랗고 몸이 가녀려 인형 같은 모습이었다.


"명옥이 엄마, 이 아이는 너무 예쁘네요. 배우 해도 되겠어요."

"엄마, 아버지가 인물이 좋아서 그런가 아이들이 어쩜 이렇게 예쁜지."


동네 사람들이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칭찬이 자자했다. 옥희는 몸이 약해서인지 행동도 크지 않고 목소리도 작고 얌전한 아이로 자라났다. 대추니무의 대추가 붉게 익어갔고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커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담장 넘어까지 가지를 뻗은 대추나무를 보며 탐스러워하며 언제부턴가 대추나무집 윤가네라고 불렀다.


“대추나무가 잘 자라는 걸 보니, 댁네 아이들이 번성하고 잘 될 것 같네.”

“여자아이들만 있는데요. 뭘. 다들 남의 집 식구 될 아이들이지요. ”


남편은 깊은 한숨을 쉬었고, 용이 날아와 품에 안기던 벅찬 기운이 아직도 몸에 남아 있는 듯한데, 정작 눈앞에는 팔다리가 앙상한 가녀린 옥희라는 게 믿기지 않고 환영 같았다. 대추를 손에 쥐고 공기놀이를 하던 명옥이와 옥희가 뭐가 좋은지 까르르르 웃고 있었고, 까치가 대추나무 이 가지 저 가지를 옮겨 다니며 까까 짖어댔다.


AI로 형성한 그림입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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