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특집 북큐레이션]
‘삼복더위에 입술에 붙은 밥알도 무겁다’는 속담이 있을 만큼, 우리나라의 여름은 유난히 무덥고 지쳐 식욕마저 떨어지게 만듭니다. 앞으로 몇 달간 지속될 이런 무더위 속에서 건강한 음식으로 허기를 달래는 일은 단순히 끼니를 해결하는 것을 넘어 마음을 위로하고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는 소중한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지친 마음과 입맛을 깨워줄 요리문학 BEST5로 여러분들의 상상력을 자극해 볼까 합니다. 문장 사이사이에 맛이 배어있는 이 작품들은 따듯한 이야기들과 함께 읽는 동안 우리의 미뢰를 포근하게 채워줄 것입니다.
1. 라우라 에스키벨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 식욕과 사랑, 그 경계에서 태어나는 뜨거운 감정의 레시피
(줄거리)
멕시코 명문가의 막내딸인 티타는 마을의 청년인 페드로와 서로 사랑하는 사이이다. 그러나 막내딸은 결혼을 하지 못하고 어머니를 돌봐야 한다는 집안의 전통에 따라 둘의 결혼은 좌절되고, 페드로는 티타의 두 살 위 언니인 로사우라와 결혼하게 된다.
티타는 로사우라의 자녀들이자 자신의 조카들을 돌보며 자신을 상처 입힌 구시대적 악습을 끊어내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고 로사우라의 막내딸인 에스페란사의 결혼을 주도하여 성사시킨다. 전통이라는 사슬을 끊어낸 티타는 페드로와 결합을 통해 자신의 사랑을 지켜내며 둘만의 세계를 찾아 떠난다.
(감상)
티타와 페드로의 사랑이라는 메인 디쉬에 멕시코의 이국적인 요리법을 사이드로 곁들인 이 작품은 환상적인 기법으로 인물의 감정을 표현하는 작품입니다. 특히 웨딩케이크, 메추리 요리 등을 요리할 때 그녀의 감정이 녹아들어 먹는 이들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장면들은 사랑의 기쁨과 고통이 음식을 통해 어떤 방식으로 생생히 전달될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티타는 여성의 욕망과 자아, 사랑의 본질에 대한 현신으로 그녀의 인생은 독자들에게 초콜릿처럼 달콤하면서도 씁쓸한 여운을 남깁니다. 우리가 거의 접해 보지 못한 이국의 음식과 주방의 풍경을 상상하고 싶은 독자분들께 이 책을 추천합니다.
2. 이자크 디네센 <바베트의 만찬> - 고요한 헌신이 만들어 낸 기적의 만찬
(줄거리)
덴마크의 한 외딴 마을에 두 자매 마르티네와 필리파가 살고 있다. 두 사람은 경건한 아버지의 가르침 아래 평생 독신으로 조용히 살아가며 마을의 소박한 종교 공동체를 돌보는 삶을 이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프랑스에서 온 난민 바베트가 자매의 집에 하녀로 들어온다. 그녀는 과거 프랑스혁명 중 가족을 잃고 피신한 것으로 오랜 세월 동안 말없이 자매를 도우며 살아간다.
그로부터 수년 후, 바베트는 복권에 당첨되어 큰돈을 얻게 되고, 자매의 아버지를 기념하는 모임을 맞이하여 바베트는 자신의 전 재산을 들여 호화로운 만찬을 준비한다. 이 만찬은 이전까지 검소함과 절제 속에 살아온 마을 사람들에게는 생소하고 심지어 죄스럽게 느껴지는 경험이었지만, 식사가 진행되며 참석자들은 과거의 상처와 오해를 풀고 서로를 용서하게 된다.
(감상)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경험이었던 요리를 통해 오랫동안 참아왔던 자아를 실현하는 바베트의 모습을 보며 저는 '일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어느 도서의 제목을 떠올렸습니다. 우리에게 일하는 행위는 금전적인 영역을 넘어서 최소한의 사회적 노출이자 자아실현, 타인과의 정서적 교류등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는 사회적 활동일 것입니다.
그 단 하룻밤의 만찬 후에 바베트는 프랑스로 돌아가지 않고 덴마크에 남아 남은 생을 살아가는 선택을 하게 됩니다. 가족을 잃은 그녀에게 프랑스에서의 삶은 이미 의미 없는 과거일 뿐이며, 자신이 온전히 받아들여지는 '집'은 자매들의 곁이기 때문입니다.
바베트의 선택은 일과 삶, 그리고 요리의 존재 의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녀에게 재능을 펼쳐 보일 수 있는 만찬은 그녀의 삶을 응축한 하나의 예술 작품이자 갈 데 없는 자신을 거둬준 마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진심 어린 선물이었습니다. 삶의 의미를 다시 느끼고 싶은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합니다.
3. 요시모토 바나나 <키친> - 부엌이라는 작은 우주에서, 삶은 다시 시작된다.
(줄거리)
주인공 사쿠라기 미카게는 부모님에 이어 마지막 가족이던 할머니마저 세상을 떠나면서 완전히 혼자가 된다. 상실감 속에 홀로 외로움을 견디던 미카게에게는 주방 즉 ‘키친’이 유일한 위안의 공간이다. 그녀는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고 정리하며 점차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된다. 그러던 중, 할머니 생전에 알고 지낸 남학생 타누마 유이치가 자신과 어머니처럼 지내는 유리코와 함께 살자고 제안하게 된다.
미카게는 타인의 집에서 처음 느끼는 따뜻함과 새로운 가족 같은 관계 속에서 조금씩 상처를 치유받게 된다. 하지만 평화롭던 나날도 잠시, 유이치 역시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아픔을 겪게 되고 두 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슬픔을 견디며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관계로 성장한다.
(감상)
잠시 범죄자 교화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해보자면, 가장 교화 효과가 좋은 프로그램은 제빵이라고 합니다. 손으로 뭔가를 만들고, 다듬는 완성작을 만드는 전 과정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정서적인 위안과 자존감의 회복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처럼 요리하는 행위는 상처 입은 마음을 치유하고 자신을 회복시키는 과정이 되기도 합니다. 『키친』의 주인공 미카게 역시 슬픔 속에서 주방에 머물며 요리를 하고 타인의 식사를 준비하는 일을 통해 삶의 리듬을 되찾아 갑니다.
미카게에게 요리가 삶을 돌보는 가장 근원적인 행위로 돌아가는 일이듯이 저에게는 글을 쓰는 과정이 존재를 다시 붙잡는 손길이 되어줍니다. 소소하지만 강인한 회복의 힘을 느끼고 싶은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합니다.
4. 조앤 해리슨 <초콜릿> - 달콤함이라는 저항
(줄거리)
프랑스의 한 보수적인 시골 마을 라 소크레에, 자유로운 영혼의 여성 비앙 로셰와 그녀의 딸 아눅이 이사 온다. 사순절 기간에 그들은 초콜릿 가게를 열고, 마을 사람들에게 따뜻함과 변화를 선사한다.
하지만 이들의 등장은 보수적인 성직자 레이노 신부와 갈등을 일으키게 되는데, 그는 금욕과 규율을 강조하며 초콜릿 가게를 "유혹의 장소"로 보고 비앙을 비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앙의 초콜릿은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억눌린 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게 된다. 결국 마을은 그녀의 따뜻함에 점차 마음을 열고, 변화와 관용의 가치를 받아들이게 된다.
(감상)
환상적인 초콜릿을 만드는 재능을 지닌 비앙은 마을 사람들의 상황에 꼭 맞는 초콜릿을 건네며 그들 내면의 변화를 이끌어냅니다. '나에게 딱 맞는 초콜릿'이라는 환상은 얼마나 달콤하고 매혹적일까요? 하지만 어쩌면 초콜릿은 단지 하나의 매개체일 뿐 진정한 변화는 스스로 내린 선택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 작품을 접하며 전통이 강요하는 규율이 때로는 사람의 내면을 억압하는 파괴적인 힘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은 적절한 달콤함을 통해 비로소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는 존재인지도 모릅니다.
비앙은 그 조화로운 삶을 사람들에게 건넨 것이고 신부 또한 그 의미를 받아들이면서 관용이라는 가치를 배웠는지도 모릅니다. 무언가에 억눌려 답답함을 느끼는 분들께 이 작품은 마치 달콤한 초콜릿 한 조각 같은 위로가 되어 줄 것입니다.
5. 윤고은 <1인용 식탁> - 고독을 삼키다
주인공 오인용은 직장에서 동료들에게 소외당하고 매일 혼자 점심을 먹게 된다. 점점 사람들의 시선에 예민해지고 외로움에 지친 그녀는 우연히 '혼자 밥 먹는 법'을 가르치는 학원을 발견하고 등록하게 된다.
이 학원은 단순히 혼자 식사하는 기술을 넘어서 사회적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자기만의 식사 시간을 지키는 법을 가르친다. 오인용은 그곳에서 비슷한 외로움을 겪는 사람들과 함께 연대감을 느끼며 조금씩 변화해 간다.
하지만 마지막 시험에서 그녀는 완전한 ‘혼자 있음’을 증명하지 못하고 탈락하게 된다. 그 경험을 통해 오인용은 진정한 독립이란 완벽한 고립이 아니라 고독을 받아들이는 용기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감상)
점점 혼밥을 즐기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지만 이 작품이 발표된 2010년 당시에는 ‘혼자 밥을 먹는다’는 행위가 다소 낯설고 이상하게 여겨지곤 했습니다. 그래서 작품 속에서 ‘혼자 밥 먹는 법’을 가르치는 학원의 존재가 오히려 독자들에게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학원에서 가르치고자 했던 것은 단순히 혼자 밥을 먹는 기술이 아니라 그 행위를 대하는 태도였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주인공은 그곳에서 혼자가 아님을 깨닫고 비슷한 이들과 연대감을 느끼게 됩니다.
어쩌면 완전한 자유란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고독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편안해지는 상태일지도 모릅니다. 삶은 낯선 시선들과의 대결이 아닙니다. 연대를 통해 자유를 느끼고 '내면의 공간'을 갈망하는 분들께 이 작품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올 것입니다.
누군가에겐 초콜릿 한 조각이 사랑의 기억을 불러일으킬 수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혼자 먹는 김치찌개가 용기와 저항의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작품들이 여러분의 영혼의 식탁을 풍성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면 그것은 내 몸이 어떤 음식을 그리워하듯 나의 영혼이 희망과 감동을 갈망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음식을 어떤 이야기와 함께 기억하고 있으신가요? 영혼의 체온이 기억하는 음식의 추억을 많은 이들과 나누는 따뜻한 일상을 보내시기를 바라며 이번 큐레이션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