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의 사랑》 외로움이라는 이름의 거울

고향이라는 근원

by 서린

가끔 세상으로부터 이해받고 있다는 감각이 사라질 때 우리는 깊은 고립감을 느끼곤 합니다. 울타리처럼 둘러싸인 요새 같은 외로움 속에서 우리는 어느새 심리적 거울 앞에 서게 됩니다. 그 거울 속에 비친 나의 모습은 때로 일그러지고, 때로는 흐릿하게만 보입니다. 그렇게 왜곡된 현실 속에서 우리는 자신과 세계를 다시 질문하게 됩니다.


한강의 『여수의 사랑』은 그런 고립감과 이해받지 못한다는 감정에서 비롯된 고독함을 품고 있는 작품입니다. 정선과 자흔, 두 여성은 같은 고향 여수를 기억하면서도 서로 다른 방식으로 그곳을 품고 살아갑니다. 누군가는 잊으려 하고, 누군가는 되짚어 가려하죠. 이들의 엇갈린 감정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우리가 얼마나 이해받고 싶어 하는 존재인지를 그리고 그 이해가 어떻게 상처와 연결되는지를 이 작품은 조심스럽게 드러냅니다.


여수에서 태어나 서울로 상경한 이후 여러 형태의 동거를 거친 정선은 마지막 동거인이었던 후배가 떠난 뒤 방세를 나누어 낼 적절한 상대를 찾지 못해 애를 먹습니다. 자신의 병적인 결벽증으로 많은 동거인을 떠나보낼 수밖에 없던 그녀는 자신의 진의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세상에 점점 더 큰 거리감을 느낍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정선은 거리에서 단정치 못한 차림으로 위태로이 서 있던 자흔과 우연히 마주치게 되고, 마치 운명처럼 그들은 곧 함께 살림을 꾸리게 됩니다.


정선에게 있어 자흔은 매우 특별한 존재였던 것 같습니다. 그녀는 동거인들이 떠날 때마다 서운하고 섭섭한 감정만을 느꼈을 뿐 한 번도 그들에게 자신의 의도나 감정을 설명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습니다. 어렸을 적 아버지의 폭력 이후 평온했던 날이 없었던 정선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자신의 감정을 봉인하고 살아와 자신의 세계 안에 갇혀있었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자흔은 정선이 찾아가야 할 일종의 마음의 기원지가 되어 줍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자흔이 정선을 떠나가던 날 그녀는 가지 말라며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게 됩니다.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억압받는 것 같았던 내면적 강박을 내려놓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흔은 왜 정선을 떠날 수밖에 없었을까요. 살림을 합친 이후 두 사람은 꽤 잘 지내는 좋은 친구였습니다. 그러나 한 여름의 끈끈한 습도는 정선의 결벽증을 심화시켰습니다.


결국 정선은 후배에게 했던 것과 비슷한 히스테릭한 행동을 자흔에게 분출하고 자흔은 내면적 한계에 다다릅니다. 정선의 과거의 트라우마에 얽매인 정지된 시간 속에 자흔은 머물 수 없었습니다.


어릴 적 여수발 기차에 버려진 자흔은 같은 동향 출신이었던 정선에게서 고향과의 연결점을 찾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선에게 고향은 아버지의 폭력으로 얼룩진 벗어나야 할 과거였습니다. 이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고향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정선은 여수를 떠나야 하고, 자흔은 여수로 돌아가야 하는 존재였던 것입니다.


정선에게 위안을 얻지 못한 자흔은 여수로 떠날 것이란 암시를 한 채 어느 날 새벽 왔던 날과 똑같이 자신의 짐을 들고 사라집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점은 작품의 시점이 정선이 여수행 기차를 타고 자흔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고향을 왜 그녀는 스스로의 의지로 돌아갔던 것일까요?


저는 그 선택이 자흔이 여수로 떠난 이유와 비슷하다고 느꼈습니다. 이 인물들은 물감을 찍어 펼친 데칼코마니 같은 서로 닮은 외로움을 지닌 존재들입니다. 정선과 자흔 모두 '여수'라는 공간에서 상처를 받았고, 그래서인지 삶이 비틀려버린 출발점을 단 한순간도 마음에서 지우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단 한 번도 진심으로 떠나지 못했던 장소로 돌아가 진정으로 떠날 준비를 비로소 시작하려 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여수역에 도착한 정선은 자흔을 다시 만날 수 있었을까요? 저는 조금 회의적입니다. 정선과 자흔은 서로를 통해 자신의 근원적 외로움과 슬픔과 마주하는 연습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관계는 서로의 시간에 잠깐 머무를 수 있었을 뿐 근본적인 회복은 되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 관계가 서로를 비추는 거울처럼 섬세한 관계일지라도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외로움은 스스로 견뎌내야 한다는 자각처럼 느껴졌습니다.


『여수의 사랑』을 다시 떠올리며 글을 쓰다 보니 저도 외로움에 눈물이 고이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까지 감정의 전이가 깊은 이유는 이 작품은 제가 한강 작가의 작품들 가운데서, 아니 어쩌면 모든 한국 문학 중에서 가장 사랑하는 소설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정선과 자흔처럼 미래에 대해 극심한 단절을 느낀 적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겪는 고립과 불안,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의 간극은 오늘날 우리가 느끼는 정서와 많은 부분이 닮아 있습니다.


그들의 내면에 자리 잡은 고통은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닌 시대가 만들어 낸 상처임을 저는 깊이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독자인 저를 포함해,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고독함을 그려낸 우리 시대의 자화상인 셈입니다.


저는 이 작품이 많은 독자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정선과 자흔은 서로에게 미래를 볼 수 없었지만 진실한 위로는 나눌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 마음이 우리의 의식 깊은 곳까지 닿을 수 있을 것이라 느낍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를 가장 진솔하게 구현해 낸 존재인 이들은 외로움과 상처 속에서도 누군가와 연결되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적인 소망을 분명하게 전해줍니다.


『여수의 사랑』은 우리 모두가 잊고 지냈던 고향의 의미를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소중한 작품으로 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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