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라는 연대와 투쟁
우리에게 음식은 무엇일까요. 단순히 배를 채우는 행위일까요, 잊고 지냈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촉매제일까요, 아니면 차마 말로 다하지 못한 마음을 전하는 방식일까요.
쌓인 감정을 풀고 싶은 순간 우리는 자연스럽게 식탁 앞에 앉습니다. 사이가 소원해진 상대와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약속을 잡고 조심스럽게 술잔을 기울였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있을 것입니다.
좀 더 공식적인 자리에서도 식사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처음 만난 이들과의 긴장을 풀어주고 어색함을 누그러뜨리는 데는 한 끼 밥만한 것이 없습니다.
이처럼 식사는 단순히 먹는 행위 그 이상으로, 일상 속에서 우리는 음식을 통해 눈빛, 행동, 때로는 침묵 속에서 많은 감정을 주고받습니다. 음식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가장 따듯한 언어일지도 모릅니다.
이 작품을 다시 떠올리니 또르티야가 구워지는 고소한 냄새가 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맥시코 농장 주인의 막내딸로 태어난 티타는
어머니의 젖이 마르는 바람에 집안의 요리사 나차에 의해 주방에서 길러지게 됩니다. 덕분에 그녀는 요리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게 되고 그것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게 됩니다.
성년이 된 후 아름다운 여인으로 성장한 티타는 마을의 청년 페드로에게 청혼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막내딸은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결혼을 할 수 없다는 집안의 전통에 의해 그와 결혼할 수 없게되고, 큰언니 로사우라와 그가 결혼하는 슬픔 속에서 그녀는 큰 좌절감을 느낍니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은 음식을 통해 한 사람이 얼마나 섬세한 감정을 품을 수 있으며, 그의 요리가 먹는 이의 마음 깊은 곳까지 어떻게 도달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녀가 언니와 페드로의 결혼식 날 만들었던 웨딩케이크는 먹는 사람들로 하여금 슬픔으로 인한 구토를 유발하게 하고, 장미 꽃잎을 곁들인 메추리 요리는 둘째 언니 헤르투르디스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하여 그녀가 자유를 찾아 떠나게 만드는 계기가 됩니다.
이러한 환상적인 상상력으로 작품은 보수적인 가치관과 개인의 자유가 충돌하는 과정을 정교하게 그려내며, 억압된 사회적 환경에서 행복을 찾으려 애쓰는 개인의 투쟁을 보여줍니다.
아마도 티타는 책임감과 열정이 강한 인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녀는 몇 번이나 자신을 억압하는 마더 엘레나를 떠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티타는 끝까지 자신의 농장과 부엌을 지켜냅니다. 부엌은 단순히 티타에게 요리의 공간이 아닌 열망과 사랑을 느끼게 하는 공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남자 페드로를 잃은 뒤 티타는 상상할 수 없는 한기로 가득 차 얼어붙은 듯한 추위와 시린 감정에 사로잡혀 오랜 세월을 보내게 됩니다.
그런 그녀에게 요리는 얼어붙은 성냥갑을 다시 지필 수 있는 유일한 불씨이자 희망이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공간을 지키며 내면의 사랑까지도 간직할 수 있었고, 이는 그녀를 사랑했던 의사 존 브라운 박사와의 혼담을 거절할 수 있는 용기가 되었습니다.
그녀의 의지는 사랑하는 남자 페드로와의 관계에까지 이어져 좌절된 자신의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불씨로 번지게 만듭니다. 이야기의 끝에서 두 사람은 결합하고 자신들을 억압하던 전통과 관습에서 완전히 탈피하는 데 성공합니다.
요즘에는 많이 바뀌었지만 이 작품이 쓰여진 시대상을 감안한다면 부엌이라는 공간은 남성적 입장에서 봤을 때 수직적이고 지배적인 공간으로 읽힐 수 있습니다.
남편이나 가장의 입장에서 아내로 대표되는 여성들은 늘 가정을 위한 음식을 준비하느라 분주한 모습으로 비춰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부엌의 안쪽으로 들어가보면 여성들은 서로 많은 감정을 공유합니다. 대표적으로 김장을 할 때 우리는 서로 재료를 건네주고 수육을 삶고 최종적으로 그것을 가족 구성원들에게 건네 함께 나눠먹습니다. 그때 요리 한 접시에 담긴 감정은 고생을 넘어 깊은 유대감 그 이상을 느끼게 합니다.
음식에 얽힌 추억은 정말로 강력합니다. 저녁에 미리 고기를 삶아두고, 아침 일찍 일어나 미역을 불려 부모님의 생신상을 차려드렸던 경험이 저에게도 있습니다. 지금도 어머니께서 해주신 미역국을 볼 때면 그 당시 칭찬받았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작품의 화자가 이모할머니인 티타를 추억하게 하고, 티타의 조카이자 자신의 어머니인 에스페란사의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그리워 하는 것도 바로 이런 사랑 때문일 것입니다.
나차와 첸차, 그리고 존의 할머니 새벽빛과 나눈 우정이 티타를 마지막까지 살게했듯이,
추억으로 세대를 이으며 지난 과거 우리를 옭죄었던 악습을 풀어버리기 위해 투쟁했던 연대의 기억이 후대로 전승되는 것은 아닐까요.
그 기억이 티타의 요리책처럼 끈끈하고 뜨겁게 남아 우리를 자유롭게 만들어주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