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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뭐람!

작은 찻잔

by 왈풍류

조그만 찻잔을 바라보던 내 눈길은 늘 한결같았다.

“이게 뭐람!”

처음 단골이 되어 자주 찾던 찻집.

찻잔이며 다관을 하나둘 모으는 재미에 빠져 있던 시절이었다.

이 작은 잔도 그때 들인 것 중 하나, 아마 첫 번째나 두 번째였을 것이다.

그 후로 많은 찻잔이 새로 들었고, 감탄을 자아내는 잔도 많았다.

하지만 이 작은 잔은 구입한 뒤 단 한 번도 쓰이지 않았다.

볼 때마다 후회가 밀려왔다.

‘그때는 보는 눈이 없었구나. 괜히 이런 보잘것없는 잔을 샀네.’

그럼에도 정리할 때마다 손이 망설였다.

특별한 애정 때문이었을까? 아니다.

아마도 처음이라서 버리지 못했을 것이다.

안목은 없었지만, 그 시절의 부산, 어린 날의 기억, 찻집을 채우던 차향이 남아 있었다.

그렇게 작은 잔은 찻잔장 한쪽에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작은 잔의 특징을 요약하면 이렇다.

-용량: 20ml

-색감: 거무튀튀

-존재감: 없음

-입전에 수리 자국까지 있음

다시 봐도 잘난 구석이 없다.

그런데 이제, 내 찻잔 선택 기준은 이 작은 잔이 되었다.

올해 햇차를 조금 얻게 되어 찻잔을 고르다가 무심코 이 작은 잔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깜짝 놀랐다.

작은 잔은 작은 다관과 잘 맞았다.

몇 번이고 차를 우려 마셨고, 덕분에 적은 양으로도 오래 즐길 수 있었다.

몸에 부담도 없었다.

미적인 면에서는 또 어떤가?

한때는 밋밋한 먹빛 때문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 빛깔 덕분에 다른 잔들이 무용지물이 되었다.

먹빛 잔은 자신을 뽐내지 않는다.

백자를 만나도, 청자를 만나도, 심지어 분청을 만나도 겸손하다.

오랜 시간 곁에 있으면서도 보채지 않았다.

차를 담으면, 오로지 차만을 즐길 수 있게 해 주었다.

작은 잔에 차를 따르다 문득 깨닫는다.

"이게 뭐람."

세월이 흐른 뒤에야,

"이거구나."

당신도 그런 순간이 올지 모른다.

오랜 시간이 지나기 전에, 한 번 더 들여다보길.

차를 마시다 말고, 나처럼 "이거구나." 하고 외칠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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