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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로 Oct 17. 2023

善解

판례를 읽다 보면 선해의 법리라는 것이 나온다. 소송당사자의 의도를 선(善)하게 해(解)석한다는 뜻. 주로 절차의 하자를 치유하는 일종의 논증법으로서, 소제기 요건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청구는 본래 각하할 것이나 일부러 그르칠 의도는 아니기에 적절히 참작하여 본안까지 계속한다던가, 원고의 청구취지가 개떡같이 되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식이다.


선해라는 말만 따지고 보면 성선설처럼 단지 좋게 여기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 같지만 더 깊은 뜻이 있다. 법률용어로 선의는 착하다는 게 아니라 ‘몰랐다’가 된다. 선의의 당사자는 자신의 행위가 어떻게 해석되어 어떠한 법률효과로 나타날지를 미리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런 공백을 선해의 법리로 채우고 행위자의 의도를 좋은 방향으로 유추하여 완성시키는 것. 작은 흠결을 치유하지 않고 돌려보낸다거나 고의가 아니었음에도 구제하지 않는다면 형평에 어긋나는 결론에 도달하는 수가 있다. 이에 궁극적으로는 소송절차를 안정시키고 당사자의 이익으로 돌아가도록, 변론의 전체 취지와 법관의 심증대로 판단하여 사법정의를 실현한다.


학설에 따라 판결문의 토씨 하나에도 여러 가지 해석이 갈리며, 소송까지 갔을 정도면 각자의 그럴만한 사정들이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법이다. 그러니 법관의 판단에도 선해의 태도가 요구되는 것이 아닐까. 법리란 판례와 통설, 법률가의 경험칙과 논리칙이 충분하게 퇴적된 이치인 만큼 어느 정도 선의로 간주하여도 거의 틀리지 않고 올바른 판단으로 귀결한다. 소장을 읽고서 판단하는 이의 해석이 권력이라면, 선해라 함은 그가 행위자의 선의를 이해해 보려는 마음가짐이기도 하다. 종국에 각자의 의중이 잘 들어맞는다면 공평하고도 아름다운 결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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