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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로 Oct 22. 2023

과장 없이 쓰기

좋아하는 작가의 일기를 구독해서 받아보고 있다. 달에 한 번은 우편으로 오고, 일주일에 한 번씩 메일로도 온다. 몇 년 전 입상하면서 막 등단한 무렵부터 해서 최근에는 미국에서 작가 연수 프로그램에 참가한 일을 일기로 받아 읽는다. 그녀가 여러 권의 시집과 수필집을 내고, 유명해지고, 무슨 이유에서 글쓰기를 끊었다가, 다시 돌아와서 더 많은 시를 쓰기까지 과정들을 지켜보면서 응원했다. 그동안 나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자가 읽을 시만 쓰면 되었다.” 어느 날의 일기에서였나 집필후기에서 읽은 구절이다. 단 한 사람에게 보여줄 글을 쓴다는 건 어떤 일일지 궁금했다. 사랑하는 이에게 주는 글이 이야기가 되고, 시가 된다니. 쓰는 게 의미 없어져 쓰는 걸 까먹고 지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다시 쓰고 싶어졌다. 메모장이나 일기장에 끄적대는 거 말고, 글 한 편을 끝까지 쓰는 일. 읽어주기를 기다리는 일. 그리고 나도 그 비슷한 걸 하게 됐다. 쓴다는 것은 본능적이다. 뭉쳐있던 근육을 풀어주고 천천히 다시 걷게 됐다. 글자들이 울타리가 되어 일상의 불안으로부터 나를 지켜준다.


헤어진 지가 몇 년인데 아직도 보고 싶어? 응, 아직도 매일 생각해. 중요한 선택을 할 때마다 그 애를 떠올려. 자고 있는데 새벽에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간만에 용기가 났는지 예전 여자친구한테 다시 연락해 보고 싶다면서. 흥분한 목소리는 어딘가 소심했으나 뜨거웠고, 간절했다. 듣기만 하는데 나까지 울렁거렸다. 헤어졌는데, 헤어져있는데, 내내 생각한다는 기분은 어떤 걸까. 그 애를 위해 더 나은 선택을 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될 거라고 했다. 그래서 마침내 다시 만나기를 기다린다고. 나는 어쩌면 그가 애타게 그리며 바라보는 뒷모습은 옛날 여자친구가 아닌 자기 자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한 사람을 위해서 쓰는 일, 한 사람을 기다리며 사는 일, 모든 건 결국 나로부터 시작해 나에게로 가는 과정이다. 사랑은 나의 가장 순수한 부분을 내어주는 일이기에. 쓰는 일도 마찬가지. 어떤 글을 쓸지 떠올리며 단어를 고르고 써내리고 고치는 순간순간에 나는 나로서 존재한다. 그래서 불안하지 않게 된다. 누군가 읽어줄 글을 쓸 때, 쓰는 나와 읽는 내가 있다. 쓰는 나는 속엣것을 글자로 끄집어내고 읽는 나는 매무새를 가다듬는다. 내가 보기에 좋은 글인가, 그 사람이 읽기에 괜찮은 글인가를 생각한다. 혼자서 토하고 마는 글은 도취되거나 과장되기 쉽다. 스스로한테 속아 넘어가기도 하고. 그래서 읽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은 소중한 일이다.


보상 없는 글쓰기에 관해서는 자주 생각한다. 왜 나는 쓰기 위하여 쓰는 동시에 그의 마음에 드는 글을 쓰려는가. 어떤 심상을 떠올리고 또 무슨 느낌을 받기를 기대하는가. 왜 무엇이 되려 하는가. 감정에 아무런 동요가 없는 날이면 굳이 무얼 쓰는 것이 우스워지는 점은 간사하다. 그럴 때는 멈추고 다시 생각한다. 왜 계속 쓰려하는지에 대하여….


여기까지 쓰면서 나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야기라는 것이 그렇다. 이야기는, 바닥재를 한 장씩만 놓으며 걷는 일 같아서, 생각을 다 비워냈다고 여기며 쓰지만, 그다음에 할 말이 생기고, 또 생기고, 그래서 지나온 길이 만들어지며 그 자리를 딛고서 살게 되는 거라고. 여기서 편지는 일기가 되고, 일기는 편지가 된다. 그리고 이 사실이 맘에 들어 이것을 반복한다. 길 따라 생겨났거나 덜어낸 것들은 눈에 보이도록 정돈해 두었으며, 나는 계속 계속 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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