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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새벽 Sep 01. 2018

로스쿨일기: 자취의 즐거움

뭐 해먹으면 좋을까

지난 학기 중간고사를 보고는 몸이 너무 지쳐서 집에 말해서 자취방을 얻어서 나왔다. 이 동네 자취방은 크기나 주거의 질에 비해서 너무 비싼 편인데, 그래도 굳이 무리해서 나왔다. 염치가 없긴 하지만 나오니 좋긴 하다. 사실 나이 먹고는 집을 거의 떠나와서 살다가 다시 집에 들어가 사니 머리가 굵어져서 힘든 점들도 있었고, 실제로 등하교 하는데 대중교통으로도 힘들었고, 운전도 매일 하기엔 고역이라 잘한 선택이라고는 생각이 든다. 


학기 중에는 정신 없이 바빠서 뭘 해먹을 일이 없었는데 얼마전에 집들이를 한다고 급하게 프라이팬 등등 기타 필요한 물품들을 사고 장을 좀 봤다. 지금 사는 원룸에는 인덕션이 1구라서 뭐 복잡한 것은 할 수가 없다. 대신에 요새 유행하는 원팬 파스타를 해보기로 했다. 평소에는 스크램블 에그나 간단한 덮밥류 정도만 해먹을 수 있다. 그나마 지금은 밥솥이 없어서 밥은 안 해먹으니 아주 간단한 거 외에는 정말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뭐라도 해 먹는 건 생각보다 재미있는 일이었다! 집들이 날에는 달걀, 파스타소소, 방울토마토, 파스타면, 깐마늘, 베이컨, 소고기(부위는 뭔지 까먹었다.) 등등을 사놓고 첫 접시로는 토마토소스 스파게티를 두 번째 접시로는 알리오 올리오를 준비했다. 각 2인분 씩 분량이 팬 하나로 할 수 있는 한계였으므로 미리 씬피자를 한 판 사놓았다. 고기를 동시게 구울 수가 없어서 고기는 파스타 끝나고 내온 것은 덤. 알리오 올리오는 마늘이 살짝 타고, 왠일인지 팬에서 묻은 것인지 면 색이 검게 변해 조금 아쉽기는 했고 마늘 향이 충분히 면에 베지 않은 것 같았지만 허브솔트의 힘으로 그럭저럭 먹을 만은 했고, 소스와 방울토마토, 베이컨, 마늘을 아끼지 않고 넣은 토마토소스 파스타는 꽤 먹을만 했다. 자취 음식으로 종종 해먹게 되지 않을까 싶다. 밥솥을 갖다 두면 한식도 조금 해서 먹을 수 있을 것 같긴한데, 아직 시도는 안해뵜다. 


내 목표는 아침식사를 계란 2개 스크램블드 에그 해서 바나나나 사과 등 과일 하나 먹고, 거기에 바게트에 버터 발라서 먹고 운동하러 갔다가 학교를 가는 것인데, 학기 중엔 아침에 일어나기가 바빠서 못하고 있다. 조금 더 부지런한 룡룡이 되어야지! 


먹는 걸 스스로 만들어 해결하는 것은 (물론 대부분 이미 준비된 재료지만) 이상하게 삶의 주도권을 가져오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렇게 내 손으로 해결하는게 많아지는 것은 불편하지만 한 편으로는 '살이있음'을 확인하는 일이 아닐까. 물론 우리는 전체 효율의 향상을 위한 분업 속에 있지만, 그 쪼개어진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삶의 작은 주체성을 돌려받은 것 같아서 좋다. 귀찮아지면 곧 다시 피하고 싶은 노동이라 느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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