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시간 비행의 시작
1일차, 인천에서 출발하다.
이번 화는 다소 지루하겠다. 공항에 익숙한 여행자들에게는 새로운 것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버거웠던 비행기에서의 시간도, 환승 공항에서의 가지 않던 시간도 여행의 일부이므로 기록을 남긴다.
마다가스카르까지는 한 번에 가는 항공편이 없다. 두 번 경유하고 가는 것이 내가 확인한 것들 중 가장 짧은 동선이었다. 결과적으로 인천에서 출발해서 태국 방콕, 케냐 나이로비를 거쳐서 들어가는 항공편으로 이동하였다. 총 소요시간은 갈 때는 26시간, 올 때는 36시간. 가는 길의 비행시간은 각각 5시간, 9시간, 3시간 가량이었다. 사실 이렇게 장시간 비행을 해본지가 너무나도 옛날이라 감이 없었고, 이코노미 석을 타고 장거리 이동하는 것의 해악에 대해서는 익히 들었으나 들뜬 마음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듣는다고 한들 대비할 수 있는 건 없으니 말이다.
경험 많은 여행자(혹은 출장자)들은 비행기에서는 돌아다니기 쉬운 비상구 쪽 혹은 복도 쪽 좌석을 달라고 한다는데 여행이 그저 설레는 초보는 무조건 창가 자리를 달라고 했다. 창밖으로 흐린 하늘 밑의 서울이 멀어져가고 구름을 뚫고 올라와 햇빛 속을 나는 그 느낌이 아직은 마냥 좋다.
그런데 이내 해가 떨어지고 창 밖에 더 이상 볼 것이 줄어들자 기내에서는 시간이 정말 안 간다. 이미 영화 한 편은 보았고, 그 외에 기내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에 있는 건 더는 흥미를 끄는 게 없는데, 야간비행이라 기내 소등하고 나니 별달리 할 것도 없고 심심하다. 가져간 책은 가벼운 공부거리와 목적지인 마다가스카르 안내 책자뿐. 차라리 소설이라면 읽었을 텐데, 둘 다 머리를 쓰며 봐야 하는 책들이라(후자는 보면서 계획을 세워야 하므로) 꺼내지를 않게 된다. 자다가, 뒤척이다가, 영화를 틀어놨다가, 기내식을 먹다가 보니 그래도 어느새 도착한다. 그렇게 내린 방콕 수완나품 공항 현지 시각은 밤 열 시 반 정도였다.
두 시간 정도 뒤에 케냐 나이로비로 떠나는 비행기로 환승해야 한다. 출발 전 인천공항 체크인 카운터에서 짐을 부칠 때 친절한 직원 분께서 최종 목적지가 마다가스카르인 것을 보시더니 짐은 최종목적지에서 찾을 수 있게 연결해주겠지만 반드시 공항 환승 시 마다 연결 항공편으로 이송이 되었는지 확인하라고 당부를 하셨다. 좋은 조언인 것 같아서 수완나품 공항에서도 환승 동선을 따라서 보안검색을 마치고 다음 항공편 카운터로 가서 내 짐 잘 가고 있냐고 물어보았다. 시스템 상으로는 다음 항공편으로 옮겨지고 있단다. 그 이상 확인할 방법은 없으니 일단 안심하고 다음 항공편을 기다린다.
다음 항공편은 태국 시각으로 오전 열두시 반은 되어서야 출발했다. 이번 여행에서 제일 긴 약 아홉시간이 소요된다. 케냐 현지 도착 시각은 새벽 다섯시 반 즈음. 태어나서 처음으로 인도양을 건너는 여정이지만 창 밖 너머 깜감한 하늘 밑으로 아무것도 보일리가 없다. 게다가 이번에는 복도 쪽 좌석을 발권받았는데, 탑승하고 보니 하필 내 옆에 앉은 나이 지긋한 아저씨는 비대한 체형이다. 이코노미 석의 좁은 좌석이 불편한지 비행 내내 편히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는데 그럴 때마다 자꾸 내 팔에 그 아저씨 몸이 닿아서 여간 신경쓰이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나는 팔을 내 좌석 팔걸이 안 쪽으로 바싹 붙이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렇게 밤새 선잠을 자는 듯 마는 듯 그 아저씨와 함께 뒤척이고, 특색 없는 기내식을 야식과 아침으로 두 번 먹고 나니 몹시 길었던 아홉시간도 끝이 보인다. 나를 인도양 넘어로 실어다준 보잉 787기는 조모 케냐타 공항에 꽈당 하고 내려 앉는다. 와, 내가 아프리카에 있다. 아직은 너무나도 생소한 대륙, 언젠가 꼭 와보고 싶었던 그 곳에 내가 있다. 비록 비행기 안일 뿐이고 또 공항을 벗어날 일도 없겠지만, 지금 나는 아프리카에 있다. 그 자체로 가슴이 두근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