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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다가스카르, 11일 - 2일차

안타나나리보 입성

by 김새벽

2일차, 마다가스카르의 수도, 안타나나리보 입성.


새벽 다섯시 반경 도착한 조모 케냐타 공항에서는 환승대기 시간이 약 일곱시간. 공항에는 공짜 와이파이가 따로 제공되지는 않는다. 와이파이 이용권을 끊어서 핸드폰으로 검색하며 여행 계획을 세운다. 십여년 부터 가려던 나라, 개략적인 동선은 머리 속에 있지만 아직 구체화 된 것은 없다.


일단 이번 여행은 마다가스카르의 유일한 전구간 포장도로인 "7번 국도(Route Nationale 7; RN7)"를 왕복하는 것으로 정했다. 처음부터 대부분의 일정을 "택시브루스(taxi-brousse)"로 할 생각이었기에 차와 운전사를 고용하지 않고도 안정적으로 이동할 수 있는 것을 보장하려면 그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남반구에 있는 마다가스카르는 내가 여행한 6월은 겨울이고 건기였기 때문에 포장도로가 아닌 곳에서도 이동이 어렵지는 않다고 했지만, 현지 사정이 실제로 어떤지 알 수 없었기에 안전한 선택을 하기로 했다.


수도 안타타나리보에서 해안도시 툴레아 까지 이어지는 마다가스카르 7번 국도

7번 국도는 수도 안타나나리보에서 시작하여 피아나란추(Fianarantsoa) 등 마다가스카르 주요 도시를 관통해서 모잠비크 해협에 연한 툴레아(Toliara)까지 이어지는 도로로, 마다가스카르 서남부를 가로지르는 길이다. 길가의 풍광이 아름답고, 마다가스카르에서 가장 인기 많은 국립 공원 중에 하나인 이살루(Isalo)국립공원을 지나기 때문에 여행객들에게는 꽤 인기 있는 루트라고 했다.


마다가스카르에 갈 때 스쿠버를 하는 것이 아니라면 내 목표는 딱 두 가지 바오밥과 여우원숭이를 보는 것이었고, 나머지는 다 덤이라고 생각했다. 바오밥을 보기 위해서는 사실 '바오밥의 거리'로 유명한 무릉다바(Morondava)로 가야 하지만 무릉다바 까지 가는데에도 한 2, 3일은 걸린다는게 중론이었고, 그렇게 돌아서 갈 경우 툴레아까지 갔다가 복귀하는 것이 11일 이라는 일정 내에 소화할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나는 과감히 바오밥 나무를 포기하기로 했다. 다음 기회를 위해 무언가를 남겨놓는 것이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또 바오밥의 거리 자체는 한 번 도는데 30분이면 충분할 정도라고 하기도 했고, 나는 별 관심이 가지 않았던 무릉다바 근처의 칭기(바위산)공원이라든지 등과 연계해서 더 돌아볼 생각이 아니라면 메리트가 떨어져보였다. 무엇보다 현지에서 사고 없이 안전하게 여행하고 수도까지 돌아오는 것이 우선이다. 그래서 아주 직선적이고 단순한 여행계획을 짰다.


나의 동선은 수도에서 7번 국도를 따라 해안까지 갔다가 다시 오는 것. 안타나나리보에서 출발해서 중간에 제2도시인 피아나란추에서 하루를 자고, 그 다음날 이른 아침에 이살루 국립공원이 있는 랜히라(Ranohira)로 간다. 랜히라에서는 이살루 국립공원에서 2박 또는 3박을 하고 다음날 툴레아로 떠난다. 툴레아는 해변도시니까 거기서 2~3일을 지내고 다시 수도인 안타타나리보로 돌아와서 2~3일 정도를 보낸다. 현지 교통이 지연되거나 이동에 제한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수도에는 여유를 두고 도착한다. 케냐에서 세운 계획은 딱 저 정도였다.


숙소는 에어비앤비를 통해 예약한 안타나나리보에서의 첫날밤만 확보한 상황. 현지에서 교통이 얼마나 안정적인지 모르니 더 계획을 자세히 짤 수도 없고 숙소 예약도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공항을 배회하며 오직 보딩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조촐한 조모 케냐타 공항의 면세점에서는 거금 18유로를 주고 사자 문양이 새겨진 남색 티셔츠를 샀다. 이 후 오는 길에 같은 디자인의 국방색 셔츠를 샀다. 지금도 잘 입고 있다. 면세점 물건임에도 비싼 것은 흠. 그냥 면티였는데 말이다. 여하튼 나의 간단한 쇼핑도 15분의 시간만을 소모하였고, 가지 않는 시간 속에서 7시간의 대기 환승대기는 정말로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시간의 장점은 어쨌든 흐른다는 것이고, 기다림에 지칠 즈음 마다가스카르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나이로비에서 안타나나리보로 가는 비행기에서는 다시 창가 자리. 내 밑으로 하릴 없이 지나가는 케냐를 보며, 저 땅은 밟아 보지 못한 아쉬움에 창가에서 눈을 떼지 못하였다. 조금 지나니 푸르른 바다가 눈 앞에 펼쳐졌고, 아무 것도 없는 망망대해에 구름이 남기는 갖가지 무늬의 그림자들을 바라보다 보니 세 시간은 금방 간다. 내 옆좌석에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마다가스카르인 커플이 탔는데, 나만큼이나 여행이 익숙하지 않은지 계속 나를 넘어서 내 쪽으로 나있는 창밖으로 시선이 향한다. 나만큼 촌스러운 사람들과 함께해서 다행이야라고 생각하며 이제 슬슬 질리기 시작하는 기내식을 먹고 있으니 발 밑으로 마다가스카르가 펼쳐진다.


와, 10년 가까이 노래 부르던 그 나라에 들어서고 있다. 한 눈에 봐도 광할한 대지와, 땅 위에 그어진 붉은 선 처럼 이어진 비포장 도로들, 위에서 봐도 흙벽으로 지어진 것이 선명한(나중에 알고 보니 진흙 구워 만든 벽돌로 지어진 집들이었지만) 이국적인 집들, 세상과 고립되어 보이는 그 풍광들을 보며 가슴이 설레기 시작한다. 이곳은 도대체 어떤 나라일까.


IMG_4388.JPG 매우 단촐한 마다가스카르의 이바토 국제공항. 사진은 출국 할 때 찍은 것.

들어서는 공항에서부터 마다가스카르는 이국적이었다. 수도인 안타나나리보의 이바토 국제공항은 그 명색이 무색하게 단 하나의 활주로만을 가지고 있었고 심지어 활주로에서 공항 건물로 이어지는 별도의 유도로도 없어서 막 착륙한 비행기는 기체를 돌려서 활주로를 거슬러 올라가서 공항 청사로 향한다. 비행기에서 내려서는 걸어서 공항청사로 이동한다. 공항 규모도 우리나라로 치자면 지방의 조금 큰 기차역 정도였다. 케냐만 해도 국제공항의 구색을 갖추고 있었는데, 여기는 정말이지 또 다른 세상이다.


마다가스카르에 입국할 때에는 기내에서 나눠주는 자그마한 안내 책자에 입국신고서가 포함되어 있는데, 미리 기내에서 작성해 놓는 것이 편하다. 입국 절차는 전혀 까다롭지 않으나 첫날 숙소 주소는 반드시 요구하기 때문에 미리 주소를 하나 정도 확보해 놓는 것이 좋다. 외국 여권 소지자들은 일단 비자를 발급 받았거나 필요가 없는 사람들과 비자가 필요한 사람들로 나누어 줄을 서서 들어간다. 한 달 이내 여행을 하는 것이면 비자가 필요없는 것으로 안다. 줄을 서 있는데 공항 직원이 와서 비행기 내에서 작성한 입국신고서를 보여달라고 하고, 내 출국 일자를 묻더니 비자 받는 줄로 안내를 해준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가서 줄을 섰고, 19유로인지 20유로를 내고 비자를 발급 받았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난 비자가 필요 없는 한달 이내 여행자 아닌가? 내 입국일은 6월 20일, 비자를 보니 7월 21일까지 유효하다. 아, 당했다.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었겠거니 생각하고 일단 짐을 찾으러 갔다. 사실 '갔다'라는 표현을 할 것도 없이 비자 발급 받는 곳에서 살짝 돌아서면 바로 짐 내리는 공간이다. 예전 청량리 기차역 정도의 규모와 복잡함. 일단 짐이 무사히 도착했음에 감사를 드리며 아주 단촐한 세관을 통과해 나가려는데 입국장에서 영어를 전혀 못하는 공항 직원이 한 번 더 여권을 달라한다. 그러더니 나를 다시 아까 비자 발급 받는 곳으로 데려가는 것이 아닌가. 조금 당황했지만 일단 시키는데로 했다. 알고보니 내가 비자는 발급을 받았지만 입국 수속은 안한 것이었다. 내가 들려야 하는지도 몰랐던 부쓰가 하나 있었다. 거기서 다시 입국 수속을 받았다.


나가기 전에는 공항 입국장 내에 있는 통신사 대리점에서 마다가스카르에 있는 동안 쓸 USIM 칩을 샀다. 데이터는 3GB를 충전했는데 동영상만 안 보면 그 정도면 2주를 충분히 버티고도 남을 것 같았다. 가격은 15유로 혹은 20유로 였던 것 같은데, 여행 간 편하게 다닐 것을 생각하면 충분히 지불할 만한 금액이라고 생각했다. USIM 칩을 산 통신사는 TELMA(Telecom Madagascar)라는 현지 통신사 였는데, LTE 까지 지원한다고 광고하고 있었다. 실제로 여행지에서 주로 도심지 중심으로 LTE가 터질 때가 있었다. 3G는 왠만한 도시 근처에서는 안정적으로 접속 가능했고, 도시간 이동 중에는 전화기 배터리를 고려하여 주로 비행기 모드로 다녀서 어느 정도 수신이 되는지는 확인하지 못하였다.


현지에서 통신도 해결했으니, 이제 정말 입국할 채비가 마쳐진 것. 에어비앤비를 통해 예약한 숙소의 호스트는 공항까지 픽업을 보내주겠다고 하였다. 출국장을 나서니 여느 공항 처럼 이름을 써들고 자신들이 픽업할 손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있었다. 그 중에서 내 이름을 발견하고는 일단 안도를 하며 나갔다. 픽업을 나와준 아저씨는 그래도 영어가 통하는 분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숙소에서 영어가 되는 사람으로 연결해서 보내준 것이었다. 아직 환전을 안 했기에 아저씨에게 일단 환전을 하겠다고 하니 공항 내 환전소로 데려다준다. 아직 현지 물가라던지 화폐 단위에 대한 감이 없었던 나는 언제 또 환전이나 출금이 가능할지 모르기 때문에 넉넉히 하기로 하고 500유로 정도를 환전했다. 그랬더니 마다가스카르 돈으로 엄청난 양의 지폐를 건네준다. 살짝 실수했구나 싶었지만 일단 손가방과 지갑에 분산해서 넣었다. 생각해보면 마다가스카르 1인당 GDP가 400불 언저리이므로 500유로면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돈이다. 여행 내내 큰 묶음 단위의 돈을 들고 다니느라 부담이 되었다. 돈을 별도로 출금이나 환전할 일이 여행 막바지 전에는 없어서 편하긴 했지만, 돌다다녀보니 현지에서 그렇게 많은 돈을 들고 다닐 필요는 전혀 없었다. 일단 수도를 벗어나도 여행객들이 자주 찾는 숙소 등에서는 약간의 수수료(3%~6%)를 내면 비자나 마스터카드를 받는 곳들이 제법 있고, 또 조금만 규모가 되는 도시면 은행이 있어서 환전이 가능하고 ATM 등에서 출금도 어렵지 않은 편이었다. 운전사 아저씨는 내가 환전한 액수를 보고는 놀라는 눈치다. 한국에서 500유로면 그렇게 엄청난 돈은 아니지만 여기서는 현지인들이 한 번에 만져보기 어려운 돈. 내 첫 실수는 처음부터 너무 많은 돈을 환전했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 실수는 운전사 아저씨와 함께 환전소에 왔다는 것. 마다가스카르에 있는 동안 사실 한번도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 적은 없고, 사람들이 그렇게 경고했던 소매치기도 당한 적 없었고, 사람들이 뭘 가져간다거나, 뭘 잃어버려 본 적이 없어서 아주 안전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미리 조심하는 것이 좋은 것 같다. 환전은 조그만 단위로 자주 하는 것이 나았을 것 같다.


환전을 마치고는 아저씨를 따라서 공항 주차장으로 걸어나갔다. 우리를 기다린 것으로 보이는 키 큰 남자가 오더니 내가 차문을 열고 가방을 넣는 것을 도와준다. 나는 당연히 일행이겠거니 생각을 했는데 알고보니 여행객들을 기다리며 이런 식으로 소일거리를 하는 사람이었다. 공항 근처에는 그런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나는 갓 환전을 마친터라 10,000 아리아리 지폐들 뿐이 가진 것이 없었다. 우리 돈으로 약 3000원 가량. 그는 차문을 열고 가방을 넣어준 것 뿐인데 팁을 달라한다. 물가 감각이 없는 나는 줘야 되겠거니 하고는 지갑을 열어 얼른 눈에 들어오는 10,000아리아리를 들어보이며 이거면 되겠냐고 물으니 그거면 된단다. 운전사 아저씨는 특별히 말이 없다. 나는 일단 10,000 아리아리를 건넸다. 그렇게 우리는 공항을 빠져나왔다. 현지 물가에 적응한 후의 나였다면 아마 많이 줬으면 500 아리아리 정도를 건넸을 것이다.


일단 무사히 입국을 했고, 첫 날 숙소로 향하고 있다는 안도감에 주변 풍경이 다시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마중 나와준 아저씨의 차는 아주 오래된 푸죠. 차는 샤시가 무너져 내린 듯 승차감은 딱딱하고 내장재는 다 삭아있다. 차 내에는 휘발유 냄새가 풀풀 풍기고 엔진 소리는 과하게 크게 들린다. 조금 신이 났다. 아 내가 정말 다른 나라에 와 있구나. 운전사 아저씨는 원래 학교 체육 선생님을 하다, 공무원 생활을 오래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영어도 잘 하는 편이다. 시내에서 운전할 때에는 이 낡은 차로 다니고, 여행객들을 상대로 운전사 겸 가이드로 장거리를 뛸 때는 4륜 구동의 더 좋은 차로 다닌다고 했다.


차창을 내린 채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으니, 정차 중에는 창문이 열려있으면 그냥 핸드폰을 집어간다고 조심하라고 한다. 여행의 모든 부분을 핸드폰에 의지할 수 밖에 없는 나는 소심해서 조심스레 전화기를 가방에 집어넣었다. 아저씨는 내게 이런 저런 질문을 했다. 어디에서 왔는지, 여행으로 온 건지 아니면 출장인지, 마다가스카르에선 어디를 가 볼 것인지, 어떻게 돌아다닐 것인지. 한국에서 여행 목적으로 왔고 7번 국도를 왕복할 것이라고 하니, 7번 국도를 따라 펼쳐지는 풍경이 대단히 아름답다며 적극 추천한다고 하였다. 이동은 택시부르스로 하겠다고 했더니 불어를 할 줄 아냐고 물어본다. 아니오. 전 불어를 거의 하지 못합니다. 사실 한국에서 한 해 전에 알리앙스 프랑세즈에서 4개월 간 불어를 공부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간단한 숫자를 세는 것과 non, je ne pas parle Francaise... 그러니까 "전 불어를 못합니다"가 전부였다. 그랬더니 아저씨는 불어를 못하면 마다가스카르를 택시브루스로 이동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한다. 나는 고민을 해보겠다고 답했지만 속으로는 여기까지 와서 내가 택시브루스를 포기하고 드라이버 따위를 고용하지는 않겠다고 다짐했다. 결과적으로 안타나리보에서 툴레아까지는 수일에 걸쳐 택시브루스 만으로 이동했으므로 아저씨의 말은 틀렸지만, 또 여행 후반기에는 차와 드라이버에 의존한 일들도 있으므로 완전히 내가 옳지만도 않은 일이 되었다.


마다가스카르의 수도, 안타나나리보의 구비구비 좁은 도로


공항에서 출발한지 약 한 시간이 조금 더 넘게 걸려서 안타나나리보에 도착하였다. 안타나나리보는 현대적인 느낌이 전혀 없는 도시였다. 일단은 그 좁고 구불구불한 도로를 따라 달리면서 아직은 긴장을 풀지 못한 채 도시의 느낌에 익숙해지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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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약한 숙소는 프랑스계 말라가시인(마다가스카르인)이 운영하는 아주 예쁘고 작은 호텔. 나는 별채 방 하나를 통채로 받았다. 이 먼 곳 까지 날라와서 무사히 첫 날 숙소에 체크인 한 것에 대해서 매우 안도감을 느끼며 방을 둘러보니 너무나도 좋다. 본채와 별채 그리고 정원까지 모두 너무 디테일하게 꾸며져 있었고, 해가 져가는 오후의 공기는 선선했다. 방에는 태양열을 이용한 온수가 공급된다 하였고, 별채에서는 잘 터지지는 않았지만 와이파이도 있고, 방에는 냉장고도 있다! 심지어 방에 딸린 화장실 인테리어도 예쁘다. 다만 마다가스카르의 왠만한 현지 건물이 그렇듯 화장실 입구에는 문 대신 커튼이 달려있다. 하지만 혼자쓰는 방이니 별 상관은 없을 것. 내가 도착한 날은 마침 주인은 해외에 있다고 했다. 스탭들 중 마르셀이라는 친구가 영어를 조금 한다고 했다. 그 친구가 체크인 부터 도와주었는데, 숙소에서 저녁을 먹겠냐고 묻는다. 나는 달리 아는 곳도 없고 해지고 돌아다닐 만큼의 배짱이 없어서 그러하겠다고 했다. 몇시쯤 가면 되겠냐고 했더니 7시 정도에 본채로 오면 된단다.


가보니 테이블엔 세 명을 위한 세팅이 되어 있다. 아 나 말고도 여행자가 있나보구나. 조금 기다리니 나이든 프랑스 노부부가 내려온다. 사실 그렇게 나이가 든지 몰랐는데 65, 63세란다. 절대 그 정도로 보이지는 않는다. 마다가스카르는 거의 40년 만에 온단다. 둘 다 마다가스카르에서 교사로 활동했었다고 한다. 아저씨는 당시에는 프랑스에도 징병제가 있어서 일종의 대체복무로 마다가스카르에 와서 기술 과목을 가르쳤다고 했다. 그때와 지금의 마다가스카르는 많이 변했냐고 물어보니, 변하긴 했다고 한다. 다만 도로에 차가 엄청나게 늘었고 그에 따라 도시의 매연이 참기 심할 정도로 나빠진 것 같다고 하였고, 또 빈부격차도 더 심해진 느낌이 든다고 했다. 내가 잠깐 스치듯 지나온 안타나나리보 시내의 느낌은 정말 세월이 빗겨간 느낌이긴 했다. 지난 3, 40년간 전혀 발전이 없었을 것만 같은 느낌.


IMG_2909.JPG 마다가스카르에서 만난 프랑스 노부부

그 부부는 약 세달 정도의 일정으로 마다가스카르를 여행할 것이라고 했다. 나는 한국인 답게 사진을 같이 찍자고 하였다. 모든 것은 기록에 남아야 하니까. 저녁 식사를 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자연스레 나는 7번 국도를 따라 택시브루스로 이동할 것이라고 하며 근데 불어를 못해서 쉽지 않은 도전이 될 것이라고 하니, 프랑스인 답게 하지만 그것은 아름다운 도전이라고 응대해준다. 허허, 이 아저씨 보시게.


아저씨는 영어를 잘 하셨고, 아주머니는 영어를 알아는 듣는데 말은 잘 못하셨는데, 프랑스 본토가 아니라 그런지 어쨌든 나하고 영어로 대화를 해줘서 고마웠다. 사실 이날 과거 식민지였던 마다가스카르와 프랑스 간의 여전한 긴장 관계를 처음 느꼈는데, 아저씨는 과거에는 마다가스카르 어디를 가도 유창한 프랑스어를 하는 지역 주민들과 대화를 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수도 타나의 길거리에서도 젊은이들 중에 대화가 가능할 만큼 프랑스어를 못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고 하였다. 직접 말은 안했지만 프랑스로부터 해방 후 전혀 발전하지 못하고 있는 마다가스카르를 보며 아마 속으로는 해방된 것이 잘 된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평균적인 마다가스카르인들이 프랑스 인들을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는데, 그러면서 거기에 있던 서빙해 주던 스태프에게 농담하듯이 마다가스카르 사람들은 프랑스 사람을 좋아하는지 어쩌는지 물어보는데, 아직 스무살이 안 되었을 것 같던 그 스태프는 웃으면서 얼버무렸다. 그냥 수줍어서 그렇겠거니 생각했는데, 단편적이긴 하지만 여행 나중에 만난 이들 중에서는 조금 친해지자 과거 식민통치국이던 프랑스에 대한 악감정을 나타내는 마다가스카르인들도 있었다.


두 부부는 내일 아침 일찍 여행을 시작한다고 했다. 새벽 5시면 자기들은 택시브루스를 예약해놓아서 타러 가야 한다고. 그리고 같이 찍은 사진을 보내달라며 이메일 주소를 알려준다. 와, 여기 여행와서 알게 된 첫 친구다. 노부부와의 대화가 다소 무거워지긴 했는데, 그래도 여행 온 첫 날 같이 이야기를 나눌 사람들이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저런 나이에 이런 나라를 부부가 같이 여행사를 통하지 않고 자유여행을 한다는 것이 조금은 부러웠다. 자연스레 집에 부모님이 생각이 났는데, 아무래도 나 혼자 좋자고 떠나온 여행에 주위 사람들이 조금은 떠오를 수 밖에. 하지만 오늘 저녁이 지나고 내일부터 현지에서의 계획이 짜임새 있게 갖추어 진 것이 아무것도 없기에 그런 감상을 오래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당장 내일 7번 국도를 타고 피아나란추까지 가야 하고, 아직 숙소도 예약하지 않은 상태였다. 저녁을 먹고는 방에 와서 역시 든든한 스마트폰으로 에어비앤비로 전에 봐두었던 숙소를 확인하니 아직 자리가 빈다. 일단 예약 신청을 하고나니 마음이 놓인다. 이제 내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7번 국도로 출발하는 garre-routiere를 찾아가면 된다. 가면 어마어마하게 복잡한 터미널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고 몹시 정신 없을 것이라고 해서 긴장이 된다. 하지만 더 준비하고 알아보기도 지쳐서 일단 잠을 청했다. 그렇게 마다가스카르에서 나의 첫 하루는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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