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나나리보에서 피아나란추까지, 택시 브루스로 달리다
3일차. 안타나나리보에서 피아나란추로!
새벽이 다가오자 다섯시에 택시브루스를 타기 위해 네시에는 일어나야 한다던 노부부의 준비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계속해서 잠을 청했다. 급박한 일정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비행의 여독이 풀리지 않아 아침에 일찍 일어날 힘도 없었다. 일찍 출발하지 않으면 어두워지기 전에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할 것이란 우려는 있었지만 자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직원들에겐 아침식사를 일곱시에 하겠다고 했으니, 여섯시 정도에는 일어나야 했다. 씻고 짐을 싸고 보니 얼추 시간이 맞는다.
일곱시 쯤 시간에 맞추어 본채로 가니 식탁에 접시 세팅이 한 명 분만 되어있다. 아침은 혼자 먹겠구나 싶어 조금은 아쉬웠지만 그보다는 오늘부터는 마다가스카르에서 정말로 혼자 돌아다니는 첫 날이기에 두려움과 설레임이 더 컸다. 그래서 아침에 무얼 줄까 궁금해하지도 않았는데, 웬걸 제법 근사하게 차려준다. 살짝 데워놓은 바게트에 딸기잼과 버터, 포트 하나 가득 끓여내온 커피, 생과일 쥬스에 현지 과일들까지. 아주 만족스럽게 아침식사를 마치고 이젠 정말로 길을 나설 준비를 한다.
첫날 머무른 이 숙소에서는 따뜻한 샤워가 가능한 별채를 혼자 쓰고, 맛있는 저녁과 든든한 아침까지 먹고, 공항 픽업 서비스를 받고도 내가 낸 돈은 40,000 아리아리에 불과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공항픽업을 따로 계산했는지는 사실 기억이 좀 가물가물하다). 우리 돈으로 13,000원 가량. 현지 기준으로 결코 싸지 않은 가격이지만, 서울의 물가와 비교하면 못 누릴 호사를 누린 셈. 숙소의 분위기도 음식도 대만족이어서 출국하기 전 돌아가는 길에도 이 곳을 다시 예약해서 묶었다.
아침도 해결했겠다 이제 오늘의 과제는 무사히 안타나나리보를 떠나 피아나란추로 이동하는 것. 등배낭을 매고 나서니 이미 아침 여덟시 가량이 되었다. 안타나나리보에도 시내버스란 것이 있지만, 불어도 못하는 벙어리 관광객이 그 혼잡함 속에서 정확히 내 목적지에 맞는 버스를 골라탈 자신이 없어서 일단 택시를 잡아보기로 했다. 다행히 안타나나리보(이하 '타나')에는 택시가 정말 많다. 덕분에 택시를 잡기 위해 그렇게 오래 기다릴 필요도 없다. 심지어 내가 묵었던 Chez Aina에서 큰 길로 가는 골목 입구에는 택시 기사들 서넛이 모여서 나처럼 숙소를 빠져나오는 외국 관광객들을 맞으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에 길을 나서며 숙소 스탭들에게 여기서 피아나란추로 가는 차가 출발하는 택시브루스 정류장까지 가는 택시비는 얼마가 적절하냐고 물어봤는데 14,000아리아리 정도면 된다고 하였다. 하지만 골목길 앞에 서넛 모여 있던 택시 기사 중 그래도 영어가 좀 되던 아저씨는 40,000 아리아리를 불렀다.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14,000이라고 부르자 안된다고 한다. 아직 협상의 기술을 익히지 못한 나는 등을 돌려 떠나지 못하고 20,000아리아리를 부르자, 그렇게 하잔다.
아, 이 모든 일들이 발생하는 이유는 마다가스카르의 택시엔 미터기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어느 정도 거리면 얼마만큼을 받는 다는 것이 공식화된 것도 아니다. 따라서 매번 손님은 목적지를 말하고 요금을 흥정하고서야 택시에 오를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외국 관광객들은 손쉬운 바가지의 표적이 되기도 하는데, 두 세배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면 언어를 못하고 지리에 어두운데 대한 비용을 지불한다고 생각하고 너무 심하게 흥정은 하지 않으려고 했다. 달리 흥정을 야무지게 할 능력도 없었고.
길을 나서자 마자 택시를 구할 수 있었기에 다행이라 생각하며 가방을 뒷좌석에 넣고 앞좌석에 타려하자 택시기사가 가방은 트렁크에 넣어달란다. 시내에서 경찰이 보면 뭐라한다고. 트렁크라고 해봤자 뒷좌석에서 그냥 의자 뒤에 있는 빈공간이라 해달라는 대로 해드리고 기왕 뒤로 간 김에 뒷좌석에 앉았다. 택시는 언덕을 따라 구불구불하게 난 타나의 주도로를 따라 빙빙 돌아서 도시의 남쪽으로 향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내가 묶었던 Chez Aina는 그래도 타나의 중심지에 위치한 호텔이었다. 중심지를 벗어날 수록 그래도 견고해 보이는 건물은 사라지고 점점 판자촌 같은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한 시간 남짓 시내의 어지러운 도로를 따라 달렸을까 싶자 도로 양 옆을 끼고 늘어선 판자촌들에 좌판 같은 것을 놓고 장사하는 것이 뜨문뜨문 보이기 시작하더니 이내 차가 막히기 시작하고 사람들이 늘어난다. 딱 봐도 관광객 티가 나는 내가 탄 택시는 정류장에 들어서기 전부터 호객꾼들의 먹잇감이다. 차량 옆으로 득달같이 붙어서 어디 가냐고 물어본다. 대개는 관광객의 일정이 자기가 속해있는 택시브루스 조합의 노선에 맞으면 정류장에 들어서기 전에 채가려는 부류이다. 매출과 직결되는 문제이므로 이들은 꽤나 적극적이다. 그런데 택시 기사는 그들을 그다지 뿌리치려고도 하지 않는다. 어차피 길이 막혀 그들을 떼어놓을 수 없기도 하고, 또 아마 어렵게 사는 형편에 서로 너무 박하게 하기 힘든 것이기도 하려니 생각했다.
그런 와중에 한 사람이 창가에 붙어 어디가냐고 묻기에 (물론 알아들은 것은 아니고 눈치밥으로 보아) '피아나란추'라고 하니, 덥썩 앞문을 열고는 천천히 굴러가던 택시에 올라탄다. 이건 뭐지 싶었지만 택시 기사는 전혀 개의치 않아 하고 말라가시어나 불어를 못할 뿐 아니라, 그저 아직 이 땅에 온지 2일차 어안이 벙벙해진 나는 잠자코 있었다. 택시는 천천히 한참을 더 가서 몹시 혼잡한 정류장 입구에 나를 내려주었고, 나는 약속했던 20,000 아리아리를 계산하고 짐을 트렁크에서 꺼내 정신을 좀 차리려고 하는 찰나에 나와 같이 택시를 탄 그 청년이 가방을 들어주겠다며 다가오더니 피아나란추로 가려면 자신을 따라오란다. 나는 가방을 내어주는 것이 내키지 않아서 내가 들고 가겠다고 (손짓 발짓으로) 표현하고는 어쨌든 그를 따라가 보았다. 정류장에서는 그와 동료인 듯한 사내 서넛이 더 달라 붙었다. 그들은 역시 내가 피아나란추로 가는지를 확인하고는 자신들을 따라오면 된다고 하였다. 이번에는 한 사내가 기어코 내 가방을 짊어진다. 나는 가방을 놓칠세라 차량과 사람들로 뒤엉켜 혼잡한 그 택시부르스 정류장에서 그들을 필사적으로 쫓았다. 다행히도 그들은 가방을 들고 사라지거나 그럴 생각은 없었고 다만 만만한 외국인 관광객을 놓치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그들을 따라가다가 차량과 차량 사이 아마 자신들의 부스 앞인 듯한 곳에서 그들이 티켓 값을 먼저 치르자고 한다. 얼마냐고 했더니 그저 영어로 "세븐"이라고 한다. 나는 이미 타나에서 피아나란추까지의 적정한 택시브루스 가격을 검색하고 갔지만 그 정류장의 어마어마한 혼잡에 정신을 앗겨, 바보처럼 영어로 '세븐티 싸우전드 아리아리?' 라고 물었다. 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호객답게 지갑을 열고 그 자리에서 7만 아리아리를 건넸다. 피아나란추에서 타나까지는 20,000에서 25,000아리아리가 시세. 무려 세배의 값을 지불하였으니 얼마나 반가운 호구인가. 차로 가자 그들은 서둘러서 내 짐을 벤츠 스프린터 모델의 미니밴 위에 올려 묶는다. 이제 꼼짝없이 나는 환불의 가능성 없이 이 차를 타게 생겼다.
아니 그런데 이번에는 차의 운전사(통상 운전사는 차랭 소유주로, 차의 소유주들 여럿이 모여 일종의 조합을 만들어서 택시브루스 회사를 운영한다고 한다.)가 오더니 아주 고압적으로 짐을 싣는 비용을 3만 아리아리를 추가로 지불하란다. 이것은 호구인 나도 관광객 책자에서 본 전형적인 바가지 수법! 이번엔 당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지불할 수 없다고 하자 운전사가 눈알을 부라리며 자신은 이 차의 드라이버이며 나에게 짐 싣는 비용을 내놓으라 한다. 영어를 조금은 하는 이 작자와 실갱이를 하는데 내 짐은 이미 실려 있고 이 차를 타긴 해야겠고 다른 차를 구하기도 어려울 것 같고 또 다른데 가도 바가지를 안쓸 자신이 없어서 바보 같이도 나는 30,000 아리아리를 지불하고 말았다. 알고서도 당한 것이다. 바가지를 안쓰기 위한 요령은 저렇게 입구에서 하는 호객행위를 모두 무시하고, 내 짐을 절대 미리 맡기지 않고 가격 흥정 및 좌석 확보가 된 후 마지막 순간에 짐을 건네는 것인데 순진한 초보 외국인 관광객은 그런 기본적인 원칙을 지키지 않았으니 별 수가 없었다. 나는 많아봤자 25,000 아리아리를 지급할 거리를 100,000아리아리를 낸 것이니 이 어찌 원통하지 않을 쏘냐. 적당히 부풀려 받는 것은 왠만하면 넘어갔는데, 이런 식의 폭리는 한편으론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 아주 불쾌했다. 바보가 된 것 같아서.
여기서 잠깐, 택시브루스 정류장을 묘사하자면, 그곳은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였다. 사각형으로 된 넓은 주차장을 여러 택시브루스 조합 사무실인 판잣집들이 빙 둘러싸고 있는 구조였는데 주차장은 차량과 사람들로 가득차서 혼잡하였고 드나드는 출입구는 아무 질서 없이 차들이 뒤엉켜 있었다. 마치 전쟁나서 피난민들이 집결한 기차역 같은 느낌이었는데 그 안에서 사람들은 잡화를 팔기도 하고 호객을 하기 위해 돌아다니기도 하고 차안에 갇혀서 마냥 차가 출발하기를 기다리기도 하고 아주 난장판이었다. 처음에는 정말이지 그 혼란 속에서 어째야 할 줄을 몰랐고 혹시 소지품이라도 잃어버릴 까봐 잔뜩 긴장을 했다. 전화기를 잃어버리거나 소매치기라도 당한다면 그야말로 낭패인지라 안타깝게도 핸드폰을 꺼낼 엄두가 나지 않아 이 혼란을 사진 기록으로 남기지는 못하였다.
어쨌든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다행히도 당일 아침에 대책없이 갔음에도 내 택시브루스는 표를 사고는 30분 이내로 출발했다. 그것도 외국인, 현지어로는 바자하(vazaha),이라고 드라이버 바로 뒤 창가석(택시 브루스에서는 맨 앞열을 제외하고는 일종의 상석이다. 가장 편하고 뷰가 좋은편인)을 준다. 혼잡하기 그지 없는 정류장을 벗어나 타나 시 경계를 넘어서자 점점 마다가스카르이 자연 풍광이 눈에 들어온다. 이로써 비교적 무탈하게 나는 내 생애 첫 택시브루스 여행을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