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마다가스카르 11일 - 3일차 (2부)

탁시브루스로 새벽에서 황혼까지

by 김새벽

마다가스카르의 수도 '타나'의 혼잡한 남부 탁시브루스 정류장을 떠나 혼잡한 시내를 빠져나오자 마다가스카르의 풍광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드디어 마다가스카르의 유일한 전구간 포장도로인 '7번 국도'에 올라선 것이다. 내가 탄 탁시브루스는 벤츠 스프린터 모델로 미니밴에 가까운 크기에 좌석도 조금 더 여유가 있다. 탁시브루스는 지붕 위에 짐을 과적하고 승객을 꾸겨넣기로 유명한데 다행히도 내가 탄 첫 탁시브루스는 딱 개인좌석을 주고 차량도 비교적 새 차로 상태가 좋았다.

IMG_2948.JPG 안타나나리보에서 피아나란추 구간 탑승한 탁시브루스. 벤츠 스프린터 모델로 일반적인 봉고 탁시브루스(마쯔다 등)보다 조금 더 비싸고, 조금 더 좋다.


7번 국도는 '타나'로부터 마다가스카르 서남부 해안으로 이어지는 '고속도로'라고 하지만 지형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는 왕복 2차선의 도로에 불과했다. 수도 타나에서 가까운 곳은 비교적 상태가 좋았지만, 서남부로 내려갈수록 관리상태가 나빠지고, 곳곳에 유실 구간이 많아 진행이 더뎌진다. 우기에 쓸려나간 도로들이 복구가 잘 안 되기 때문이다. 이럴 때 낡은 차량으로 통과시 타이어가 펑크나거나 다른 고장이 나기 쉽다. 다행히 나는 여행 중 한 번도 차량 고장을 경험한 적이 없지만 종종 보닛을 열거나 타이어가 들린채 멈춰있는 차량들을 볼 수 있었다.


내가 탄 탁시브루스에는 아마 스무명 남짓의 사람들이 탄 것 같았다. 우리 차에는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 초반으로 추정되는 한 무리의 남학생들과 이들을 통솔하는 것으로 보이는 아저씨 두 명, 그리고 아주머니 한 무리와 맨 앞 좌석에 앉은 젊은 남녀 커플이 있었다. 맨 앞 좌석은 아마 뒷좌석에 비해 티켓값도 더 받는 것 같았는데, 맨 앞 좌석에 앉은 젊은 남녀 커플은 스마트폰으로 연신 셀카를 찍어대는 것으로 보아 마다가스카르에서도 조금 여유 있는 계층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마다가스카르는 최빈국답게 스마트폰을 든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고 대부분 중국산으로 추정되는 문자와 전화 기능만 있는 고전적인 핸드폰을 들고 다니는데, 스마트폰을 들고 있다는 것 자체가 어느 정도 여유가 있음을 추정케 한다.


짐작했겠지만 마다가스카르의 '고속도로'에는 휴게소가 따로 없다. 주요 도시 간의 거리가 상당한데에 비해 숙소 겸 식당인 '호텔리'들은 중간 중간에 띄엄띄엄 있고 별도의 휴게 시설은 찾을 수 없다. 배고픈 것이야 참겠지만 생리현상을 어쩌기가 힘들터인지라, 탁시브루스들은 한 세시간 이상 달리면 갑자기 차를 멈추고 볼 일을 볼 시간을 준다. 이런 '화장실 정차'를 처음 경험했을 땐 다소 당황스러웠다. 갑자기 아무것도 없는 숲 가운데 차를 정차하고 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해서 몹시 당황스러웠다. 그러더니 남자들은 오른편 숲속으로, 여자들은 왼편 숲속으로 사라진다. 아... 나도 남자들을 따라서 오른편 숲속으로 들어선다. 안 그래도 화장실이 슬슬 신호가 오던 참. 아, 마다가스카르의 숲속에서 노상방뇨를 하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치 못했다.


차는 금방 떠날 생각은 없는지 거기서 한 이십분은 머문 것 같은데, 그 십대 후반, 이십대 초반의 남자 무리들은 도시를 떠나 여행을 하는 것이 그리 즐거운지 자기들끼리 낄낄 대고 장난치고 길 위에 드러누워 사진 찍고 난리다. 수학여행이라도 온 고등학생들 마냥. 하지만 난 그냥 뻘쭘할 뿐 불어도 말라가시도 할 줄 모르는 나는 그저 바라보며 어색할 뿐이었다. 그렇게 어색한 이십분이 흐르고 다시 승차!


한참을 달려 우리는 낮 한시에서 두시 사이에 식사를 위해 길 위의 한 호텔리에 들렸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주차된 차 뒤에 있는 건물이 2층은 숙소고 1층은 식당인 호텔리다. 오 마다가스카르 고속도로 음식을 먹게 되는군. 사뭇 긴장이 된다. 사람들을 따라서 식당으로 들어서니 단촐하다. 마다가스카르는 문자가 따로 없고 알파벳을 쓰는데 따라 읽을 수야 있지만 뭐가 뭔지는 알 수 없다. 보니까 그 남자 아이들 무리는 한 군데 뭉쳐서 자리를 잡는다. 난 혼자 앉아있다간 아무것도 안 될 것 같아서 그 무리에 껴서 앉아도 되냐고 (손짓, 발짓으로) 물어보았다. 다행이 앉으란다. 주문을 할 때도 그냥 같은 것을 달라고 했다. 뭐가 뭔지 알 수 없으니.


IMG_2946.JPG '호텔리'의 부속 식당. 쌀밥과 메인 반찬 하나, 간단한 국, 야채류 반찬 하나 정도로 구성된 단촐한 식단.


뒤에서 또 얘기하겠지만 마다가스카르는 인도네시아에서 이주해 온 인종과 아프리카에서 이주해온 인종이 섞인데다 지형별로 다양하게 서로 다르게 발전한 여러 부족이 각 고유한 문화를 유지하면서 살고 있(다라고 하)는데, 의외로 쌀농사를 짓는 문화권이어서 그런지 식단이 우리와 상당히 유사하다. 쌀밥을 기본으로 하고, 거기에 닭고기나 돼지고기류가 메인반찬으로 나오고 (다만, 고기는 양이 아주아주 적다.) 볶음 야채류가 딸려나오고, 시큼한 절임 야채가 사이드로 나온다. 그리고 반찬만 가지고는 밥을 다 먹기 힘드므로 소금간이 된 건더기가 거의 없는 국 종류가 나오는데 이게 전형적인 호텔리 음식인 것 같다. 처음 들린 호텔리는 밥이 그렇게 맛있진 않았는데 전체적으로 음식이 입맛에는 맞았다. 여행기간 내내 배탈난 적도 없고. 다만 호텔리 음식은 각별히 맛있다는 생각은 잘 들지 않는다. 특색 있는 음식이 있는 것 같지도 않고. 아 그리고 청수는 구하기가 어려워서 이런 식당에선 우리 보리차처럼 끓인 물을 주는 경우가 보통이다.


밥을 먹으면서 다소 친분이 생긴 그 한 무리의 젊은 남자 아이들의 인솔자들과 얘기를 해보니, 킥복싱 체육관 관원들이란다. 어디 가냐니 피아나란추로 간다는데, 아마 시합이 있어서 가는 것 같았다. 운동하는 사람들의 단순함인지 이들은 나를 대하는게 스스럼이 없다. 덕분에 차에 타기 전에 기념 사진 한장을 또 건질 수 있었다. 이 사람들도 외국인이 자기들이랑 한 테이블에 섞여 밥 먹는게 웃긴지 이래 저래 말을 건네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으니.

IMG_2950.JPG 마다가스카르의 킥복싱 체육인들과 융화하는 김새벽



그렇게 현지인들과 상호작용했다는 뿌듯함을 득한채 다시 차에 올랐다. 그런데 그 뒤론 가이드가 아닌 현지인들과 이후엔 이 정도 심도 있는 상호작용을 하지 못했다.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불어도 현지어도 못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다만 이때는 기대감이 커져서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다시 차에 올라 하염없이 길을 따라 달리는데 풍광이야 광활하고 아름답지만 장시간 좁은 차안에 앉아 있으니 괴로움이 더 크다. 이 정도면 꽤 편한 좌석인데도 슬슬 허리도 베기고 자다 깨도 내가 어디쯤 온 건지도 모르겠고 이제 슬슬 다음 목적지에 해 떨어지고 도착하면 어떻게 길을 찾아가지 걱정도 되고, 여행의 긴장이 조금은 풀리면서 피곤도 하고 했다. 그러다가 중간에 이번엔 어느 언덕에서 7번 국도에 닿아있는 비포장도로 앞에 차가 선다.

IMG_2951.JPG 중간 기착지. 아직도 난 여기가 어디였는지, 마을 이름은 무엇이었는지 알 길이 없다.

이렇게 정류소가 따로 없고, 탈 때 어디에서 내려달라고 하면 중간에 그냥 서고 내려주는 것이다. 여기선 어떻게 알았는지 한 무리의 가족이 마중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서로 반가운 인사가 몇번 오가고 누가 어디를 다녀온 것인지 난 여전히 잘 모르지만 어쨌든 돌아옴을 매우 환영하는 것이 명백한 사람들의 모습을 뒤로하고 우리는 다시 차에 올랐다.


이제 날이 슬슬 저물어가고 있었다. 창밖은 서서히 어두워지고 배터리를 걱정해 켜지 않고 있던 핸드폰 지피에스를 켜서 확인해 보니 아직 조금 더 가야하지만 피아나란추에 많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피아나란추에 도착했을 땐 아마 저녁 일곱시 정도였던 것 같고 아침 아홉시엔 출발한 것이니 중간에 쉬는 시간을 포함 총 열시간 정도가 걸린 것 같았다.


이제 나와 식사를 같이 해준 사람들과도 헤어져야 할 시간, 그런데로 서로 인사를 하고 나에게 바가지를 씌운 드라이버도 짐짓 아무일 없었던 듯 내게 작별인사를 하며 지붕에 있던 내 배낭을 건네주기에 악수까지 했다. 배낭을 짊어매고 타나에서와 마찬가지로 혼잡한 피아나란추의 탁시브루스 정류장을 빠져나온다. 이번 숙소도 에어비앤비를 통해 예약했는데, 다행히 찾아오는 길 안내가 상세하다. 일단 길도 모르고 어두우니 택시를 잡아서 에어비앤비에서 알려준 주소를 보여주자 근처까지는 갈 수 있었다. 다만 숙소 위치는 찻길에 접해있지 않아 그 뒤 구간은 어두운 밤의 골목길을 짚어 찾아가야 하는 처지. 다행히 구글맵과 지피에스의 도움을 받으니 어렵진 않다. 처음 와 본 동네에 어둑한 골목길에 조금 겁이 나지만 십여분 만에 15키로그램에 달하는 배낭을 매고 헥헥 거리고 언덕을 오르고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지나 그 집을 찾을 수 있었다.


숙소는 전통적인 마다가스카르 진흙벽돌집이었다. (그런데 사실 마다가스카르가 진흙벽돌로 집을 짓기 시작한건 19세기 이후의 일이라고 한다.) 방에는 화장실은 따로 없지만 전기는 들어왔다. 깨끗한 더블룸을 이번에도 혼자 쓴다. 마다가스카르 어딜 가나 그렇듯이 모기장이 딸린 침대가 있고, 조그마한 책상과 램프 정도가 시설의 전부. 샤워는 물을 데워서 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은데 숫기가 없는 나는 야밤에 도착해서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아 그렇게는 못했다. 화장실은 우리 옛날 시골집처럼 집과는 분리되어 있는데 다행히 수세식이다. 다만 수압이 낮아서 통에 미리 담아놓은 물로 내려줘야 하는 번거로움은 있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만족스러웠는데, 사실 이 날 숙소의 제일 큰 장점은 숙소에서 제공하는 식사였다.



UNADJUSTEDNONRAW_thumb_1dd9.jpg
UNADJUSTEDNONRAW_thumb_1ddc.jpg
UNADJUSTEDNONRAW_thumb_1e02.jpg


이미 해지고 도착한 숙소에 부엌을 마감한 건지 알 수 없었는데, 저녁 식사를 하겠냐고 물어봐서 그러겠다고 했다. 어둑해지고 지리도 모르는 곳에서 돌아다닐만큼 간이 크지 못해서. 정말 재료부터 준비하는지 거의 한 시간이 걸려서 식사를 차려주었는데, 방 앞에 있는 복도 겸 작은 테라스에 상을 차려주었다. 아래 층은 주인 가족이 사는 것 같은데 그들의 상차림과 식사하는 소리, 그리고 아이들의 말소리가 들린다. 얼마 후 내 식사가 올라왔는데, 정말 훌륭한 저녁이었다. 무려 에피타이저, 메인메뉴, 후식 순으로 제공해준 코스였다. 닭고기와 감자에 볶음야채와 절임야채가 곁들어져서 나오는 것이 메인이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사실 밥 대신 감자가 들어간 것을 빼면 전형적인 말라가시 식단인데, 다른 식당이나 마다가스카르 어디에서도 이 집 만큼 맛있는데가 없었다. 아마 집주인 분 솜씨가 정말 좋았던 듯. 혹 피아나란추로 간다면 정말 추천하고 싶은 숙소였다.


스크린샷 2018-01-20 오후 3.22.00.png

그렇게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다음 일정을 짜본다. 7번 국도를 타는 것이야 정해져있지만, 다음 목표는 여우원숭이를 볼 수 있다는 이살루 국립공원에 들리기 위해 그 관문인 라노히라로 이동해야 한다. 피아나란추에서 라노히라까지는 오늘 이동한 거리보다 짧다. 조금 더 늦게 출발해도 여유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집에서 터미널 까지의 길만 다시 확인하고 잠을 청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마다가스카르, 11일 - 3일차 (1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