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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다가스카르 11일 - 4일차 (1부)

이살루 국립공원으로 가는 길. 피아나란추에서 라노히라로 출발!

by 김새벽

저녁에 도착했던 피아나란추는 마다가스카르 제2의 도시라고 하는데 내게는 여전히 혼란스러운 곳이었다. 대학의 도시라고 하던데, 그래서 그런지 학생들이 저녁 시간에 도처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었고, 탁시브루스 정류장 인근은 온갖 행상들과 돌아다니는 사람들오 아주 정신이 없었다. 분명 여행서엔 한가로운 느낌이 나는 교육의 도시 정도로 묘사되었었는데 잔뜩 긴장한 초행자에게 특히 해가 진 저녁 이후에는 그런 느낌이 나지 않았다. 어차피 내게는 거쳐 가는 길일뿐 그렇게 아쉽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는데, 왠걸 아침에 보니 정말로 아름다운 도시였다.


우선 어제 저녁에 고생해서 짐을 지고 언덕을 오른 보람이 있는지, 언덕 중턱 쯤에 위치한 내 방 앞 발코니에서 보이는 전망이 정말 아름다웠다.

아, 그런데 이 바로 전 글에서 내가 이 집의 식사가 얼마나 맛있었는지 말을 했던가? 아마 했을 것이다. 왜냐면 이곳은 정말 마다가스카르 제일의 맛집이었으니까. 아침식사는 숙박비에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 또한 감동이었다. 바로 아래와 같은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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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ADJUSTEDNONRAW_thumb_1dfc.jpg 살짝 데운 모닝빵과, 커피 한 포트, 과일 주스, 요거트, 계절과일, 바게트, 버터, 설탕, 잼... 거기에 반숙 계란후라이와 치즈까지

사진의 상차림이, 나 혼자 먹으라고 차려주신 아침이었으니 몸둘바를 모를 정도였다. 오늘은 이동 예상 일정도 길지 않겠다 아주 느긋하게 아침을 즐겼다. 빵도 과일도 주스도 요거트도 모두 신선한 느낌에 맛이 정말 좋았다. 마다가스카르에서 하나 아쉬운 건 커피가 쓰기만 하고 향이 없는 편이라는 것인데, 여기선 커피 맛에 불평을 못할만큼 모든 것이 너무나 훌륭했다. 매일 아침을 이렇게 먹을 수 있다면 아마 난 우울이라는 기분을 못 느끼는 인간이 되고 말 것이었다.


전날 저녁 그리고 이어 아침까지 너무나도 맛나게 식사를 하고나니 하루가 왠지 신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약간은 더 마음에 들기 시작한 이 도시를 떠나기 아쉬웠지만, 일정대로 진행하지 않으면 계획한 것들을 하지 못하고 돌아갈 것 같아서 결국 서두를 수 밖에 없었다. 밥을 먹고, 여전히 물을 내리기 어려운, 그러나 그래도 수세식인 화장실에서 먼 길 갈 채비를 마치고 체크아웃을 하려고 내려와 보니, 주인댁이신지 주방장이신지 모를 할머니가 계신다. 어쨌든 식사 준비는 이분이 해주신 것. 나는 다시 한 번 한국인의 기질을 살려 사진 한장을 같이 찍을 것을 부탁하였다.

UNADJUSTEDNONRAW_thumb_1da8.jpg 시크하신 주인댁 아주머니(할머니?)


마다가스카르 사람들은 아직은 외국인을 어려워하는 편인데, 특히 말도 안통하는 손님으로서의 외국인에게는 더 낯을 가리는 편인데, 이 어머니는 산전수전을 다 겪으신 분이신지 그렇게 편하게 대해주실 수가 없었다. 말라가시 말도 못하고 불어도 못하는 내가 와서 체크아웃 하겠다고 하니 처음엔 못알아들으셔서 곤란해하시다가. 아.. 데빠? 데빠? 이러신다... 데빠? 데빠? 가 뭐지? 한참 고민하다가 3개월 배운 불어 통밥을 굴려보니.. 그것은 depart... "떠나다" 였다. 유레카! 나는 기뻐서 oui out moi depart를 외치며 에어비앤비 예약엔 포함되지 않은 저녁식사 값을 지불하고 문을 나서려다가, 이 숙소의 느낌이 너무 따뜻하고 좋았어서 주인댁 할머니에게 사진을 같이 찍자고 하였다. 할머니는 의아해 하시며 나랑 사진찍자고? 이런 표정으로 보시더니, 그래 찍어주지 하는 느낌으로 내 옆으로 서서 촬영에 응해주셨다. 그러고는 그게 그렇게 웃기셨는지 연신 웃음을 터뜨리신다. 덕분에 나도 기분이 좋아진채 인사를 드리고 돌아나왔다.


숙소를 빠저나와 돌아들어가던 골목길

어제는 무서웠던 구불구불한 골목길이 괜스레 정겹게 느껴지도, 등 뒤의 15kg짜리 배낭도 기분좋은 무게감으로 다가온다. 저벅저벅 걸어내려가는 언덕길을 따라 보이는 아침의 피아나란추는 아름다웠다.

나무들 너머로 보이는 것은 피아나란추의 학교. 이날은 아이들이 합창을 하고 있었다. 가까이서 보면 아직 누추함이 있지만.
피아나란추!


구글맵으로 확인하니 숙소에서 어제의 탁시브루스 정류장까지는 멀지 않다. 그런데 터벅터벅 내려가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날 불러세우는 것이 아닌가. 마다가스카르에선 긴장을 놓치면 호객행위에 당하는 경우가 있어서 그냥 지나치려는데 아니 그래도 궁금해서 얼굴을 보니, 어제 같이 탁시브루스를 타고온 그 킥복싱 팀의 코치아저씨다. 와. 마다가스카르에서 처음으로 보는 (하루만에) 익숙한 얼굴. 아저씨는 어딜가냐고 묻는 것 같은데, 나는 아침에 주인댁 할머니께 배운 덕택에 아주 태연하게 moi depart! (나 간다!) 외칠 수 있었다. 맞는지 틀리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알아는 들으시는 것 같다. 아저씨는 내가 안타나나리보로 돌아오면 자기한테 꼭 전화를 하라면서 전화번호를 적어주신다. 그런데 난 불어도 말라가시도 못하고, 내 전화는 지금은 데이터만 되고 통화는 안되는 것 같아서 알겠다고 하고는 나중에 안타나나리보에 가서는 전화를 결국 못드렸다. 아쉬운 일이야. 그렇게 반가워해준 아저씨와 인사를 나누고 다시 앞으로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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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어제였고, 이번엔 오늘이다. 피아나란추를 떠나는 길에 다시 만난 킥복싱 코치 아저씨


내리막을 끝자락 즈음 도심에서는 무언가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천막이 서있고, 의자들을 가져다 놓고, 전시회가 진행되고 있었고, 시끌시끌한 음악이 틀어져 있었다. 나는 어벙벙한 여행자의 모습으로 등에는 커다란 배낭을 메고, 어깨를 가로지르는 촌스러운 여행가방을 앞으로 메고 수많은 인파를 헤치고 어색하게 이들 틈을 비집었다. 조금 더 분위기를 즐기면 좋겠지만 무엇을 하는지 알아들을 재간도 없고, 오늘 일정이 더는 지체되면 안 될 것 같아 쓰윽 지나쳐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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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 앞인 것으로 추정되는 마당에는 천막이 쳐진채 무언가 전시회와 축제가 진행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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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바구니에 담긴 과일은 살구 같은 느낌이 나는데 아주 맛있었다. 오른편의 건물은 관공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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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편 사진의 두 건물 사이길로 5일장으로 보이는 장이 스고 있었다. 오른편 건물 af는 알리앙스 프랑세즈!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과연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행사장을 벗어나자 탁시브루스 정류장까지 가는 내리막 길에는 장이 스고 있었다! 우리의 옛 5일장 처럼 각종 과일, 야채, 살아있는 닭, 잡화 등이 길을 꽉 메우고 있었고 등 뒤에 배낭을 맨 채 움직이기엔 쉽지 않았다. 워낙 사람이 많고, 구글맵과 에어비앤비 없이는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아서 도저히 핸드폰을 잃어버리고 돌아다닐 자신이 없어서, 폰을 꺼내 사진을 찍진 못했다. 그 모습은 내 눈에만 담고 길을 나설 수 밖에 없었다. 아무튼,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조심 내려가서 드디어 큰길로 진입!


그렇게 해서 도착한 탁시브루스 정류장은 그러나 여전히 혼란스러운 곳이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호갱님이었다. 이번에는 용케나 호객꾼들을 물리치고 여행안내서에 쓰인데로 탁시브루스 정차장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탁시브루스 조합 사무실 중 하나를 찾아들어갔다. 부르는 값도 내가 안내서에서 본 것과 크게 차이나지 않았다. 그래, 이젠 나도 호갱 외국인 탈출이야를 확신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분명히 스프린터 모델(더 크고 좋은 미니밴형의 탁시브루스)을 끊어준다고, 지금 대기 중이니까 빨리 오라고 해서 가방을 메고 뛰었는데, 가보니 이중으로 예악을 해서 자리가 없다며 문을 닫고 떠나버린다. 허허. 이것은 무엇인가. 벙찐 내게 미안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잠시 기다리면 새차를 잡아준단다. 그런데 정말 새 차를 잡아준다. 그냥 하행선 방향을 향하는 차를 아무거나 잡고 태우는 거다. 그렇게 난 드디어 제대로된 탁시브루스 경험을 위해 봉고형 탁시브루스, 소위 '마쯔다'를 타게 되었다. 그렇게 다시 7번 국도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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