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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다가스카르 11일 - 4일차(2부)

랜히라, 이살루 국립공원의 길목에 도착하다

by 김새벽


하지만 4시간 11분만이 걸리지는 않았다.

피아나란추에서 이살루 국립공원으로 가는 초입인 랜히라(Ranohira라노히라)까지는 상대적으로 거리가 짧았고, 구글지도 상으로는 네다섯 시간이면도착할 수 있는 것처럼 나왔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긴장이 덜 되었다. 봉고형 탁시브루스는 아주 좁았고 사람들을 끼워타서 난리였지만 그래도 보조석 뒷자리를 받을수 있어서 아주 불편하지는 않았다. 7번 국도의 경치는 어제보다도 훌륭했다. 그 전날은 주로 산 속을 구비구비 지나는 길이었다면 이번에는 주변의 시원하게 펼쳐진 평원과 사바나 같은 초원지대를 볼 수 있었다.


그런데 한 가지 슬픈 이야기는 마다가스카르의 초원지대들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여행 중에 이런 저런 사람들에게 들은 이야기라 얼마나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원래는 숲으로 우거진 지역이었으나 수백년간의 화전농/목축으로 인해서 숲을 다 태우고 목초지로 만드느라 사바나처럼 된 것이고 이 때문에 토지황폐화가 가속되고 있다고 했다. 탁 트여 보이는 풍광 뒤에는 그런 배경이 있었다니. 하지만 이 때까지만해도 여행객의 눈에는 그저 즐거운 광경이었을 뿐. 초원의 부드러운 녹갈색의 색감이 너무 좋아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는데, 같이 차를 탄 사람들은 이 좁아 터진 차 안이 답답한 것인지, 이런 풍광 따위는 다 익숙한 것인지 모두 꾸벅꾸벅 졸고 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기는 하다. 나도 한국에서는 어디 이동할 때 보통 풍경을 보기보다는 잠을 청했으니까.


이쯤에서 잠깐 탁시브루스의 질주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가야겠다. 7번국도는 이미 말했다시피 왕복 2차선의 포장도로에 불과했고 그나마 차로 중앙선도 안 그려져있었다. 왕복 2차선이란 것도 여유 공간 없이 딱 차 두 대가 마주보고 통과할수 있다는 정도였기 때문에 이 도로에서 운전하는 것은 숙련자가 아니고서는 그야말로 위험천만. 차를 렌트해서 개인이 운전하고 다니겠다는 생각 따위는 일찌감치 버리는 것이 좋다. 왜냐면 서로에게 안전하지가 않으니까. 도로 안전이 확보되지 않았기에 커브를 돌아나가거나 멀찌감치 차가 보이면 서로 경적을 알려서 존재를 알려주고는… 감속하지 않고 아주 빠른 속도로 서로를 지나쳐갔다. 왜, 에어쇼 보면 전투기 두 대가 서로 마주보고 돌진하다가 살짝 비켜서 지나가는 그런 기동을 보여주지 않나? 차가 지나갈 때 마다 나는 그런 공포에 시달렸다. 사실 한 2일차 부터는 무감각해졌지만. 서남부로 내려갈수록 도로 사정이 안좋아졌고, 내가 탄 탁시브루스이 차 상태도 거기에 맞추어 더 나빠져서 이동 속도가 점점 느려지긴 했지만, 이날 정도까지는 못해도 80kmh 이상의 속력으로 쌩쌩 달리는데차들이 서로 지나칠 때면 묘기를 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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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여행일정으로 돌아와서, 차는 그렇게 천처히 가는 것 같지가 않은데도 구글맵 상으로 도착할 시간인 네 시간이 지났는데 아직도 도로를 달리고 있다. 배터리를 고려해서 비행기 모드로 해 놓았던 핸드폰을 다시 켜서 지도를 확인하는데 아직 한참을 더 가야하는 것같았다. 그런데 차가 가는 길에 조금 큰 도시(나중에 확인한바로는 이호시Ihosy)에 들어가더니 도심을 헤메이는 것 같더니 어느 가게로 들어간다. 이번에는 도심 속에서의 호텔리 정차. 이번에는 다들 개인적으로 여행하는사람들이 많았고 젊은 사람들도 없어서 내가 말을 붙여보기도 어려웠다. 결국 이 날은 눈치를 보다가 혼자서밥을 먹었다. 그런데 슬픈 일이지만 이 패턴은 여행 내내 반복된다. 혼자먹는 밥은 심지어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는다. 호텔리 밥이 그렇듯이 밍숭맹숭하고 맛도 별로 없다. 값도 그냥저냥 아주 싸지도 않아. 식사를 마치고 나니 일행이 있는사람들은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나는 할 것도 없다. 나와서 호텔리 마당의 의자에서 타고 온 봉고차 사진이나 찍고 두리번 두리번 거리다 보니 하나 둘 식사를 마치고 차를 탄다. 창가자리인 내가 마지막으로다시 차를 타고 문을 닫자 이제 출발! 여기서 얼마나 더 갈 것인지 감이 잘 안온다. 네 시간은 이미 아까 지났고, 적어도 거기서 두세 시간은 더 달렸던것 같다. 혹시 지나쳤는데 나를 안 내려준 것인가 싶어서 구글맵을 확인하니 아직 랜히라에 도착하진 않았다. 혹시라도 목적지에서 못 내릴까 전전긍긍해서 오후에는 졸지도 못했다. 말도 못하니 운전기사에게 나 좀 제발 랜히라 지날 때 놓치지 말고 내려달라고 당부도 못하겠다. 심지어 차를 탈 때, 아무지나가는 차나 잡고 나를 태운 것이어서 정말로 나를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는 것인지도 확신할수가 없었다. 그러나 다행히 운전사는 한적해 보이는 한 마을에서 광장으로 보이는 곳에 진입하자 여기가 랜히라라며 내리라 한다. 오 여기가 랜히라야? 랜히라 랜히라? 난 몇번씩 확인하고 내렸다. 다행히 지붕에 묶어놓은 가방도 내려준다. 이로써 이튿날 이동도 일단 무사히 완료. 아마 기억하기로 도착을 오후 세, 네 시 경에 한 것 같았다. 그런데 정작 피아나란추에서 예약한 택시브루스 표는 나중에 문제를 일으킨다. 그 이야기는 차차 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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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 정차했던 호텔리. 밥은 그럭저럭오픈편의 은색 봉고가 내가 타고 온 탁시브루스. 위에 보면 호로를 씌운 짐들 위로 초록색 가방이 내 것. 급하게 잡아탄 것이라 내 짐은 호로를 안 씌워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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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편의 은색 봉고가 내가 타고 온 탁시브루스. 위에 보면 호로를 씌운 짐들 위로 초록색 가방이 내 것. 급하게 잡아탄 것이라 내 짐은 호로를 안 씌워줬다.

우내가 도착한 마을광장은 원형으로 생겼는데, 광장 주변으로 여행객을 대상으로 하는 숙박 업소들이 늘어서 있었고, 국립공원 가이드들이 관광객들을 기다리며 서있었다. 그 중 한 명이 이살루 가려고 왔냐고 물어보더니 자기도 이살루 국립공원 가이드라며 다가온다. 아저씨가 인상이 좋다. 국립공원 가이드로 등록한 사람들은 어차피 가격도 정찰제라고 들어서 고민하기도 싫고해서 그럼 가이드로 하기로 하였다.


우선 마을광장 바로 옆에 붙어있는 국립공원 안내사무로소 갔다. 사무소는 업무 시간이 지났던지 문을 닫고 있었는데 거기서 지도를 보며 어떤 일정을 하고 싶은지 등을 묻고, 비용을 이야기했다. 마다가스카르는 물가가 정말 싼 편인데 목돈이나가는 포인트가 몇 개 있다. 그 중 하나가 국립공원 방문. 국립공원은입장료가 엄청 비싸기도 하고, 일박 이상을 하게 되면 가이드 뿐 아니라, 짐꾼에 요리사까지 붙여야 한다. 내가 안한다고 안할 수 있는 것도아닌 것 같아서 피할 수 없는 비용. 특히 여럿이서 가면 그 비용을 분담할 수 있지만 혼자서 가면 아주 비싸진다. 혼자여도 가이드, 짐꾼, 요리사는 필수기 때문이다. 내가 갔을 때는 유월말 칠월초였는데 이땐성수기 직전이라고 했다. 그래서 정말 여행객이 나뿐이었다. 여행다니면서 다른 배낭여행객들도 만나고 할 것을 기대한 내 바람은 무참히 무너졌다. 심지어 백패커들에게유명하다고 해서 예약한 랜히라 숙소는 나 말고는 텅 비어서 그날 저녁 넓은 식당에서 나는 혼자 밥을 먹었다. 눈물을좀 훔치며 이야기를 이어가자면, 이살루 국립공원은 엄청난 풍광과 다양한 종류의 여우원숭이와 새들이 사는것으로 유명한 곳이었고 이번 마다가스카르 여행의 가장 핫한 포인트 중 하나였기에 비용과 무관하게 꼭 해야 하는 것이었다. 여기서만 거의 육십만 아리아리, 그러니까 우리 돈으로 20만원 가량은 쓴 것 같다. 이것저것 다 해서. 마다가스카르 여행 중 한 번에 한 지출로는 단연 가장 큰 액수였을 것이다. 아무튼그렇게 영어와 불어를 둘 다 하는 자기를 ‘피터’라고 부르라던가이드 아저씨와 다음날 아침 일곱시에 만나기로 하고 일박이일의 트레킹 예약을 마쳤다.


일단 예약한 숙소(Chez Alice)에 체크인을 하고(사실 국립공원 안내 사무소에 가기전에 피터 아저씨하고 같이 가서 체크인하고 나왔지만 윗 문단을 다시 쓰기가 귀찮아서 이렇게 내버려둔다.)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고 와서 저녁을 먹었다. 식당은 성수기에 맞추어 꽤 규모가 컸는데 정말 손님이 나 뿐이었다. 백패커들에게 꽤 유명한 숙소라고 했는데! 이렇게나 큰데! 왜 나 혼자 있는 거니? 와 그 적적함과 외로움이란. 식당에는 아직 익숙하지 않은 솜씨인 것으로 보이지만 잔잔한 소리가 나쁘지 않게 기타를 치는 청년이 있었고 분위기는 좋았다. 그렇지만 손님이라고는 나만 있었고 텅텅 비어 있었다. 아, 서글픔이여.

메뉴는 제부스테이크 버거. 제부는 마다가스카르 현지의 일하는 소를 일컫는 말이었는데, 일하는 소를 잡아 먹는 거라니까 꺼림칙해서 잘 안 먹으려고 했는데 한 번은 먹어봐야지 해서 도전했다. 맛있을 것 같기도 했고. 그리고 맛있어서 나중에 여행 중반에 이르러서는 제부 스테이크도 먹었다. 원칙은 그렇게 허무하게 허물어졌지만,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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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전경(왼편 위로 보이는 것이 조그만 바)과 이 날의 메뉴 제부스테이크 버거! 커피와 빵은 덤.


밥을 다 먹고 조금 아쉬워서 생강이 섞인 럼을 바에서 하나 시켜서 마시면서 앉아 있는데, 오전에 피터 아저씨 옆에 붙어있던 젊은 친구가 식당으로 들어온다. 나는 그냥 반가워서 인사를 했는데 옆에 앉더니 영업을 한다. 여기서 다음 목적지가 어디냔다. 피터 아저씨하고 이살루 국립공원을 보고 나서는 툴레아(Toliara=Tulear)로 간다고 하니까, 탁시브루수 티켓은 있냐고 묻는다. 미리 예약했다면서 내 티켓을 보여주니까 이날 피아나란추에서 출발해서 오는 차는 오후에는 운행을 안할 거란다. 난 오후에 움직일건데. 오후에 여기서 출발하는 것으로 예약을 했는데? 아무래도 사기치는 것 같아서, 이미 예약 했다고 탁시브루스 오면 탈 거라니까 그날 오후부터는 전국적으로 행사 준비를 할 것이기 때문에 모든 영업이 정지되고 탁시브루스도 운행을 안할 것이라서 오전 부터 가는 것이 아니라면 이동을 못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여기서 오전에 출발하는 차편을 알아봐준다고 한다. 아니 내가 날짜에 시간까지 찍힌 티켓(물론 수기로 작성된)을 받고, 피아나란추에서는 여기서 기다렸다가 타면 된다고 했는데? 그래도 아니란다. 절대 절대 아무것도 못 움직일 거란다. 다 쉰다고. 보니까 독립기념일 전야인 것은 맞는 것 같다. 흠 그래? 그럼 좀 불안하잖아. 나는 호구답게 그러면 일단 다시 표를 끊어달라고 했다. 그렇다. 내가 바로 글로벌 호구다. 오전에 출발하는게 나한테도 나을 것 같기도 하고해서 그냥 새로 끊었다. 그럼 내가 오후에 끊은 표는 얘들 오면 어쩌냐니까 자기들이 있다가 말해준단다. 흠... 그래? 정말일까? 암튼 혹시라도 오후에 못 움직이면 곤란하니까 일단 끊고 식당 직원들에게 물어보니, 그날 오후엔 진짜 마다가스카르 전역에서 모든 영업을 정지한단다. 일단 믿기로 하고 숙소에 들어와 자리를 잡고 씼고 누웠다. 이 모든 것이 끝났지만 아직 밤 여덟시다. 여긴 나 혼자다. 아 적적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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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앞 전경. Ranohira의 Chez Alice. 방갈로들로 구성된 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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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z Alice의 방갈로. 아주 기초적인 시설이지만, 따듯한 샤워가 가능하고 개인 화장실(달라고 해야 한다)이 있어 편했다. 최고급은 아니지만 백패커가 묶기에는 과분할 정도!

그렇게 여행 4일째의 밤이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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