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살루 국립공원으로!
이튿날 아침에는 7시에 피터 아저씨와 마을 광장에서 만나기로 했기에 그 전날 짐을 싸두었다. 다행히 짐꾼과 요리사 그리고 가이드인 피터 아저씨까지 같이 가기 때문에 트레킹에서 내가 짊어질 짐은 별로 많지 않았다. 갈아입을 옷과 마실 물, 그리고 침낭 정도면 되었다. 일정상 1박 2일로 코스를 잡았기 때문에 사실상 필요한 짐이랄 것도 별로 없었다. 그나마 침낭은 짐꾼 편으로 숙박지로 미리 보낸다고 하니 그야말로 내가 가져갈 짐은 거이 없다. 그래서 옆으로 매는 작은 여행용 가방(파우치에 더 가까운 작은 사이즈) 하나를 메고 갔다. 내 배낭은 너무 컸고, 중간 사이즈 가방이 없기도 했고, 워낙에 짐이 없기도 했다. 나 하나에 사람 세명(가이드, 포터, 요리사)이 붙었으니 이 정도면 황제 트레킹이라고 할 만 한데, 당시 마을에 여행객이라고는 나 혼자였으므로 어쩔 수 없었다. 덕북에 비용도 아주아주 많이 들었다.
마을광장에 나가보니 피터 아저씨는 이미 도착해있다. 마실 물은 마을광장에 붙어 있는 자그마한 가게에서 샀다. 마다가스카르 어디나 생수(eau vive라고 하던데, 오 비브 정도로 발음된다)는 어렵지 않게 구매 가능해서 나는 1리터 생수 두 병을 사서 한 병은 짐꾼에게 맡겨서 숙박지에서 받기로 하고, 한 병은 챙겼다. 그랬더니 피터 아저씨가 그걸로 되겠냐고 한다. 감이 없었기에 이걸로 안 될 거 같냐고 하자, 아마 더 필요할 거란다. 그래서 아저씨는 얼마나 가져가시냐구 물으니 자기는 1병 가져 간단다. 그러면 나도 그 정도면 될 것 같아서 이거만 가져가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조금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렇게 하란다.
그렇게 짐꾼 편으로 보낼 짐을 부치고, 우리는 트레킹 시작 지점까지 차로 이동한다. 마을에서 이살루 국립공원 입구 까지는 비포장도로. 하지만 우리를 데리러 온 것은 또 다른 가이드인 피터 아저씨의 친구분의 자기 차량이었다. 통상 이런 길은 4륜 구동 자동차여야 할 것 같았지만, 아주 오래된 승용차가 나온다. 오, 정말 이 차로 비포장 도로를 달리는 것인가 싶었지만 다행히도 무리없이 이동할 수 있었다.
피터 아저씨처럼 이 곳 이살루 국립공원의 가이드인 차주 아저씨도 영어를 조금 하시고 유쾌하다. 가는 길, 차 뒷 좌석에서는 차주 아저씨의 아이들이 같이 타고 있었는데 아마 이때가 방학이라 학교에는 안 가는 것 같았다. 아이들에게 커서 아버지처럼 가이드가 하고 싶은지 물었는데 아이들의 웅얼거림이 정확이 무슨 말인지는 알아듣지 못했다. 그런데 그 차주 아저씨가 대꾸하길 아마 아빠처럼 되고 싶지는 않아 할 거란다. 왜냐고 물으니까, 가이드 일을 하다 보면 집에 못 들어오는 일이 많고, 일이 없을 때면 술 마시고 그러니 아이들이 아빠처럼 되고 싶지 않을 거란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 지 몰라서 웃으면서 넘겼다.
본격적인 트레킹 시작점까지 차로 이동하는 길도 너무나 좋았다. 서스펜션이 무너진 차 아래로 느껴지는 땅의 단단함과 삐걱이는 차량 소리가 풍기는 분위기, 이곳의 날것 같은 느낌이 전해져서 좋았다. 그래봤자 짐을 다 들어주는 널럴한 관광객으로 이 땅을 밟고 있는 것이지만.
이살루 국립공원 경계로 가까워지자 오른편으로 이공원의 상징같은 거대한 암벽들이 눈에 들어온다. 사암으로 이루어졌다는 암벽지대는 깊은 협곡과 그 위의 고원지대가 장관을 이루는데 트레킹은 그 협곡으로 들어가서 구경을 하고 고원지대로 올라가 풍광을 보는 것이 주를 이룬다. 건기이자 겨울인 이 곳의 누런 들판과 사암 암벽의 색감이 잘 어울려 그 풍경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건기에 겨울이라고는 하지만, 마다가스카르의 햇살은 여전히 따가웠다. 하지만 우리의 늦여름에서 가을 초입 정도의 느낌이라 햇살을 받는 느낌이 나쁘지는 않다. 사암 지대 사이로 깊게 파인 협곡으로 들어가면서 트레킹이 시작되는데 가까워 질 수록 사암 지대가 거대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마다가스카르에는 여러 부족이 살고 있고, 지금도 부족 간의 구분이 있다고 하는데 이 지역은 베주(vezo) 부족이 살고 있다고 했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살고 있는 부족민들은 이살루 국립공원의 이 거대한 사암 암벽에 시신을 묻는 풍습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사진 상에 보면 사암 지대에 가로로 깊게 패인 곳들이 있는데 그런 곳들마다 멀리서도 자세히 보면 반짝반짝 빛나는 철제 박스들이 보인다. 그 박스들이 바로 죽은 이들의 사체를 담은 관이라고 했다. 잘 사는 집은 철제로 그렇지 않은 집은 나무로 관을 짜서 사암지대에 가매장을 했다가 뼈만 남으면 다시 마을로 가져와서 축제날 하루에 단체로 장례를 지낸다고 했다. 일종이 집단 장례일이자 축제라고 했다. 그러고는 다시 화장한 뼛가루를 다시 암벽에 패인 동굴 안에 매장한다고 했다. 내가 알아듣고 기억하고 있는 것이 정확하다면.
사암 암벽의 장관을 바라보면서 나무들이 우거진 협곡 안으로 들어가자 햇살의 따사로움이 조금 덜하다. 숲속은 내가 생각했던 엄청나게 이국적인 정글은 아니다. 하지만 이 곳에는 여우원숭이들이 산다고 했다. 마다가스카르에 왔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여우원숭이들을 보고자 함이 아니었던가. 숲 속으로 조금 들어가자 여우원숭이들의 소리가 난다며 잠깐 기다리고 있으면 여우원숭이들이 보이나 확인하고 오겠다며 피터 아저씨는 나를 두고 숲속으로 더 깊이 들어갔다. 하지만 한 십분 쯤 뒤에 돌아온 피터 아저씨는 여기서는 여우원숭이들을 보기 힘들다고 일단 더 들어가자고 한다. 하지만 가는 길에 여러 새들을 보여준다. 나는 새들을 잘 모르기에 그냥 오 신기하게 생긴 새다, 색이 예쁜 새다 정도 보고 넘어갔는데 이살루 국립공원에만 80종 이상의 새가 살고 있다고 했다. 이 중 여러 종은 마다가스카라에만 살고 있는 새라고 했다. 불행히도 내가 가져간 카메라는 핸드폰에 달린 것이 전부라 멀리서 보이는 조그만 새들을 도저히 사진으로 담지를 못했다.
국립공원 초입에서 바라보았을 때 협곡은 2군데가 있다. 한 곳은 원숭이가 많다 하여 canyon de makis, 한 곳은 쥐가 많다? 하여 canyon de rats라 부른다. 둘 다 비슷한 느낌의 협곡인데, 사암 지대가 담고 있던 물이 건기에도 흐르고 군데 군데 우리나라 계곡이 그렇듯이 물이 고여 마치 수영장처럼 되어 있는 곳들이 있다. 협곡은 암벽 지대를 아주 깊이 파고들고 있었는데, 1박 2일 일정으로는 아주 깊이 들어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협곡 구경은 맞보기 정도만.
첫번째 협곡을 들어갔다 빠져나오는데는 두 시간이 채 못 걸린 것 같았다. 길도 아주 험하다고는 할 수 없고 그늘진 곳에서는 아주 덥지도 않다. 그런데 벌써 물은 1/4 정도는 마셨다. 하지만 이 정도 페이스면 앞으로 여섯시간 정도 더 걷는다고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리고 두번째 협곡으로 이동하면서 옆의 계곡에서 피터 아저씨는 물병에 물을 채웠다. 나도 따라하려 하자, 절대 안된다며 펄쩍 뛴다. 나는 그 물 마시면 바로 배탈 난다고 절대 안된단다. 아... 아... 그렇지... 한국에서도 산에 가면 대장균 많다고 물 못마시게 하지. 아... 계곡물 마시는거 아니지. 계곡물 뜨는 것을 보며 물 마시는 것은 걱정 안해도 되겠다고 생각했던 내가 조금 부끄러워졌지만, 여전히 내 물통엔 3/4 그러니까 750ml 정도가 남았으니 괜찮지 않을까 했다.
협곡 중간 중간에는 아까 말했듯이 수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물이 고인 곳들이 있다. 여기서 수영을 하는 것이 이살루 트레킹의 하이라이트 중에 하나라서 꼭 수영을 시킨다. 나는 혼자 가서 같이 수영할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마다가스카르의 계곡에서 수영해봤다라고 말은 하고 싶어서 미리 준비해간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수영을 했다. 이 계곡은 성수기에는 꽉 들어찬다고 하는데 성수기 직전 외로이 다니는 여행객인 내 주변엔 피터아저씨 뿐이었기 때문에 대충 안 보이는데 가서 옷을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입수했다! 수영할 수 있는 포인트는 2군데 정도 있었는데 처음 간 곳은 계곡 아래라 햇살이 잘 닿지 않아 어둡고, 진짜 깊기도 하고 해서 바닥이 보이지 않고 까만 곳이 있다. 이곳을 piscine noir 그러니까 검정풀 정도로 부른다. 물에 대한 두려움은 없는 편이라 별 부담 없이 생각했는데 막상 차가운 물에 몸을 담그고 바닥이 보이지 않는 위를 헤엄치려니 조금은 무섭다. 하지만 티를 낼 수는 없어서 열심히 수영했다. 같이 장난치고 놀 사람도 없어서 그냥 열심히 수영했다. 또 물이 차가워서 체온을 높이려고 열심히 수영했다. 이 때는 정신 없이 수영만 하느라 계곡을 사진으로 남길 생각도 못했다. 그렇게 물장난이 아닌 수영훈련을 하고 나니 체력소진으로 이때부터 팔다리에 힘이 안 들어가기 시작했다.
협곡 두개를 모두 구경하고 빠져나와 이제 다시 협곡 앞에 형성되었던 숲을 거슬러 올라가자 이번에는 드디어 여우원숭이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와, 여우원숭이구나. 이곳에 여우원숭이가 있다. 오직 여우원숭이와 바오밥을 보겠다고 마다가스카르에 오겠다고 했는데 드디어 내가 야생에서 여우원숭이를 보는구나!
나뭇가지를 능숙하게 타는 여우원숭이들이 신기하긴 했지만 아주 가까이는 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실망은 금물, 다니다 보면 여우원숭이는 또 계속 보일 거라고 한다. 그래서 일단 여우원숭이들을 뒤로 하고 다시 출발! 이제 햇볓을 가려주던 숲을 벗어나 협곡의 외벽에 쏟아지는 햇살을 그대로 받으면서 사암지대 위로 올라설 차례. 이제부터가 힘든 일정이란 것을 모르고 있었다. 외벽은 가파르지만 암벽을 타고 비스듬하게 난 길을 따라 오르는 것은 사실 그렇게 힘든 일은 아닌데 무지막지하게 쏟아지는 태양은 꽤나 강렬하다. 땀이 송글송글 나고 점점 더워진다. 그리고 자꾸 물을 엄청 마시게 된다. 지금까지의 페이스보다 엄청 빠른 속도로 물을 마시게 된다. 아껴 마셔야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일단 목이 마르니 물병에서 입술을 떼기가 어렵다.
점점 체온이 오르는게 느껴지고 땀은 계속 나고 물은 자꾸 줄어들고 아직 점심도 안 먹었는데 벌써 이러는 것이 불안하다. 오늘 내내 마실 물이 이거 뿐인데 이걸로는 오후에는 도저히 안 될 것 같아보였다. 계곡물은 마실 수도 없으니 혹 탈수증세라도 오면 여기선 나를 도와줄 사람이라곤 피터 아저씨 뿐이니 곤란하다. 하지만 일단 물이 떨어진 것은 아니니 아껴 마시자 하면서 언덕을 올랐다. 걱정되는 가운데서도 풍광은 정말 어마어마하다. 가는 길 곳곳에 내가 생전 볼일 없던 식물들과 도마뱀 같은 것들이 있다. 내가 놓칠 법한 것들은 가이드인 피터 아저씨가 짚어내서 보여준다. 몇백년은 산다는 elephant foot도 신기하고 일광욕을 즐기던 도마뱀 같은 것들도 신기하고, 이곳은 정말 내가 살던 곳과는 다른 땅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언덕을 오르면서 점점 눈에 더 들어차는 저멀리 펼쳐지는 끝없는 들판과 그 끝에 걸친 지평선. 완전히 다른 나라에 있다는 것.
언덕 중턱에서 한 번 쉬어가며 보니 피터 아저씨도 살짝 숨이 차는 것 같다. 하지만 나처럼 숨소리가 거칠지는 않다. 한국에 돌아가면 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괜찮냐고 묻는 아저씨에게 아무렇지 않다고 했다. 조그마한 나무 그늘 밑에서 바람을 맞고 있으니 몸이 조금 식는다. 이 정도면 괜찮은 것 같은데 싶은데 걷기 시작하니 다시 금방 더워진다. 하지만 높이로 치자면 겨우 몇백미터 정도 올라가는 것. 잠깐 땀 좀 빼는 것이지 특별히 힘들 일은 전혀 아니다. 근데 목이 자꾸 마르고 물은 자꾸 없어지고.
언덕을 올라서자 피터 아저씨는 이제 이 뒤로 그렇게 언덕을 오르고 힘들 일은 없을 거란다. 다 올라와서 나무 그늘 밑에서 피터 아저씨가 가방에 담아온 점심꺼리를 내놓는다. 점심은 바게트 빵에 절임 야채를 넣은 것 하나와 햄등을 넣은 것 하나 해서 샌드위치 두개와 바나나 하나, 후식용 과일 정도가 있다. 뭔가 더 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 기억이 잘 안 난다. 수영도 했고, 언덕도 올랐고 배는 고픈데 절임야채와 햄은 너무나 짜다. 빵은 퍽퍽하고. 맛이 문제가 아니라, 짜면 물을 자꾸 마시게 되어서 문제다. 왠만하면 음식을 잘 남기지 않느데 이 날은 그걸 다 먹으면 남은 물을 다 마셔버릴 것 같아서 빵을 남겼다. 바나나는 다 먹었고, 과일(귤 같은 종류의 것이었다)은 수분보충용으로 다 먹었다. 정말 목이 말라서 귤을 한입에 넣고 쥬스 짜내듯 해서 먹었다. 피터 아저씨는 물이 좀 모자랄 수도 있다고, 오늘 밤 텐트 치는데 가면 조금 더 살 수 있을 것이란다. 사실 내일은 오전 정도만 걸으니까 1리터면 충분할 거 같지만 오늘 당장 숙영지에 가면 물이 없어서 너무 고통스러울 것 같아서 그렇게 해다라고 했다. 마을에서 사는 것보다 비쌀 것이라고 했지만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점심도 먹고 이제 다시 출발! 그런데 사암지대의 위에는 마치 사막 같은 느낌이다. 이곳은 드문드문 나무가 나고 있지만 대부분이 햇볕에 노출되어 있다. 무사히 오늘의 트렉을 마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