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살루 국립공원에서 텐트 치고 하룻밤!
불안하게 찰랑이는 물통을 들고 다시 길을 나섰다. 나무 그늘을 벗어나자 마자 햇살이 따갑다. 건기에 서늘하다고는 해도 마다가스카르의 낮은 여전히 뜨겁다. 삼분의 일 정도가 남은 물통으로 과연 버틸 수 있을까 계속 신경이 쓰였지만 피터 아저씨가 이제는 크게 오르막은 없고, 언덕 위에서 천천히 내려가는 길만 있다고 했으니 그 말을 믿고 따라 나선다. 죽기야 하겠어라는 심정으로. 숙소에 두고 온 멀쩡한 캐멀백을 아쉬워하며.
이살루 공원의 지나온 길과 앞으로 가야할 길은 건기 답게 마른 풀과 낮은 초목들이 있는 지형이었다. 깊이 파인 계곡을 따라서 나무가 자라는 곳들이 있었지만 사암지대에 노출된 고지대 평원에는 그늘이라고는 찾기가 어려웠고, 배탈 난다고 마시지 말래서 어차피 마실 수 없던 물은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전반적으로 내리막이라고는 해도 지형을 따라서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는 구간이라서 완전히 편하지 만은 않았다. 하지만 힘들거나 지친 내색은 할 수 없어서 바싹 타들어오는 입술을 닫고 최대한 말을 아끼면서 그나마 몸에 남은 수분 배출을 안하려고 했다. 물론 땡볕에 삐질삐질 흐르는 땀 까지는 어쩔 수 없었지만.
이때부터는 정말 오직 탈수하지 않고 생존해서 텐트 치는 곳까지 도착한다는 마음에 사진도 거의 찍지 않았고 피터 아저씨가 이것 저것 가르쳐주는 것도 그냥 묵묵히 듣기만했다. 내 정신은 오직 목이 마르다, 이것 뿐이었고, 이러다 퍼지면 쪽팔린다 이것 뿐이었다. 협곡 가까이를 지날 때면 그 아래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면 아 그래도 정 안되면 저거라도 마시면 되지 싶어서 잠깐 힘이 났고, 다시 멀어지면 오늘 대체 언제 도착하는 것일까 불안했다.
사실 오후에 걸은 시간은 점심 먹고 총 2~3시간 뿐이 되지 않는 것 같았고 피터 아저씨 말대로 오르막도 거의 없어서 체력적으로 지칠 것은 별로 없었지만, 처음 가보는 길인데다 대체 얼마 후에 끝나는지 알 수가 없어 그때 까지 버틸 수 있을 지에 대한 불안감과 공포가 컸다.
물론 그 와중에도 엄청 큰 메뚜기의 화려한 색감도 감상하고, 또 물을 담고 있지만 독성이 있어서 마실 수는 없다는 엘리펀트 풋도 지나쳤다. 다양한 종들이 서식한다는 이살루의 새들도 보며 한걸음씩!
조금 낮은 지대로 오면서 그나마 나무가 나오기 시작했지만 우리가 걷는 길에 그늘 따위는 없었다.
그렇게 터덜이면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길을 피터 아저씨 뒤꿈치만 쳐다보면서 걷다보니 어느새 협곡 하나 사이로 들어간다. 햇볕이 조금 가리워 지면서 조금은 더 살만하다. 협곡 아래로는 계속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렸고, 한층 시원해진 온도와 더불어 공기의 습도도 올라간 것 같다 목마름이 조금 덜 하게 느껴진다. 바짝 마른 고원지대의 평원과는 달리 협곡으로 내려가는 길은 물이 흘러 질척인다. 그 모습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아 수분과이 재회라니.
물 흐르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협곡의 그늘 아래에서 체온도 조금 내려가서 살만하다고 느끼기 시작할 때 쯤 진짜 계곡이 눈 앞에 보인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계곡 물이 고여 흐르는 곳이 나타났다. 여기도 수영 포인트.
잠시 멈춰서 숨을 고르는데, 이번에는 여우원숭이들이 나타난다. 이살루 공원에 그렇게 흔하다던 여우원숭이들을 드디어 지척에서는 처음 보는 순간. 그래 너희들을 보려고 난 여기까지 목마름을 참아가며 온거야.
요즘은 우리나라 국립공원에서도 산짐승들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것이 흔히 요구되는 에티켓이 되어서 가까이 오는 여우원숭이들을 보고도 뭘 줘야겠다는 생각을 못하고 있었는데, 피터 아저씨는 거리낌 없이 먹이로 여우원숭이들을 유인한다. 가이드 입장에서는 관광객들의 만족이 제일 중요한 요소일 것이겠고 아무래도 이렇게 만져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데려다주는 것을 방문객들이 좋아했겠지? 사실 나도 이래도 되나 하는 마음이 있긴 했지만 막상 바로 옆까지 오고, 털도 쓰다듬을 수 있으니 신기하긴 했다. 아마 이런 대접에 익숙한 듯이 사람에 대한 큰 두려움이나 거부감도 없어 보였다.
그래도 여전히 야생동물이라서 사람이 손 대면 얼른 멀어져버리기는 했지만 이렇게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약간은 설레는 일. 마다가스카르에 올 때 2가지를 꼭 보자고 했었는데(바오밥 나무와 여우원숭이) 그 중 여우원숭이를 드디어 아주 가까이에서 보았으니, 이번 여행의 목적의 절반은 달성한 셈. 다만 여우원숭이 구경의 하이라이트는 사실 이 다음날 만났던 알락꼬리 여우원숭이 무리였다. 그 이야기는 차차.
그런데 햇볕으로부터 도망쳐와 사정이 조금 나아졌다고는 해도 여전히 갈증은 가실줄을 몰랐는데, 사실 이 계곡으로 들어온 것 역시 여기가 수영 포인트였기 때문이다. 아저씨는 자기도 쉬면서 내게 수영을 할 거냐고 물어보았는데, 솔직히 여행책자에서 꽤 근사해 보였던 이 물 웅덩이는 한국의 흔한 계속에서도 볼 수 있을 정도 크기였고, 혼자서 수영하는 것이 크게 재미 있진 않았지만 일단 시원한 물에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 끌렸고, 또 피터 아저씨는 난 계곡물은 떠마시면 안 된다고, 배탈 난다고 했지만, 그 때 난 배탈날 각오를 하고 수영하는 것을 빌미로 물을 조금은 마셔 목이라도 축일 생각을 하고 있어서 당연히 수영을 하겠다고 했다.
마다가스카르의 협곡에서 또 한번 옷을 다 벗고 수영복으로 갈아입고는 풍덩. 아저씨는 모르겠지만 난 몰래 몰래 입술을 적시고 물을 마시고 있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