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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새벽 Mar 04. 2019

로스쿨일기: 다시 한 번, 개강 첫 날.

나는 이제 로스쿨 3학년 생

서울은 온통 미세먼지에 잠긴 채 뿌옇다. 그렇게 나의 로스쿨 3학년 생활은 시작되었다. 학교는 언덕에 있어 걸어 오르는 숨이 가빠진다. 코로 들이마시면 조금 낫다길래 입을 열어 숨을 쉬지 않으려 했건만, 부친 숨에 허업 하고 결국 큰 숨을 입으로 들이키고 만다. 50개를 한꺼번에 주문한 방진 마스크는 기껏 열어서 학교 책상에 두고 가져오지 않았다. 이 먼지바람은 분명 대륙에서 꽤 큰 부분이 유래하였을텐데, 나의 나라는 언제나 그렇듯이 자조 노력을 강조한다. 스스로 도우라. 얼마나 멋진 말인가. 물론 뉴스에서도 어디에서도 근래에 자조노력이란 말을 듣지 못했다. 아마 십여년 전 어느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어떤 농가의 하소연 섞인 인터뷰에서 정부의 반응에 씁쓸해하며 했던 말을 들었던 것 같다. 


오늘은 개강의 첫 날. 9시부터 수업이었다. 제목은 경제법. 주로 다루게 될 것은 공정거래법과 소비자법. 변호사 시험 선택과목으로 하고자 수강하게 되었다. 국제거래법이 하기 싫었고, 다만 재미있어 보여서 선택하였는데, 과연 사람 많은 과목에서 벌 수 있는 표준점수 고득점을 놓아버린 선택을 나는 후회히지 않을까. 그러나 그런 것은 어떠하여도 상관 없다. 달리 선택하는 것은 멋이 없으니까. 합리적인 리스크 관리로 살아왔다면 나는 여기 있지 않을 것이다. 동시에 조금 덜 움츠렸다면 역시 나는 여기에 있지 않을 것이다. 결국 스피노자의 제자는 필연성으로 회귀할 수 밖에 없다. 어쨌든 나는 지금 여기에 있고, 내 앞에는 1년의 시간이, 아니 열달 가량의 시간이 남았다. 달의 차고 기우는 것이 열 번 남짓이면 이 말랑말랑한 감옥에서도 탈출이리니 신나지 않는가. 정해진 형기를 사는 죄수는 덜 불행하다. 전역일이 정해진 의무 복무자도 마찬가지다. 다만 나는 예외. 나는 헐렁한 군생활을 하였다. 


네 시간여의 공강 뒤에 이번 학기의 첫 무게감 있는 수업인 '민사소송실무'를 들어갔다. 이 과목은 모의로 변호사가 상담한 기록과 증거자료 들을 검토하여 의뢰인이 원하는 바를 최대한 달성하고, 예측되는 상대방의 항변을 반박하는 소장을 쓰는 것이다. 실제 변호사의 소장 작성과는 일정 부분 괴리가 있겠으나, 수험생으로서는 거쳐야 하는 관문. 이 사건에서는 대여금 채권과 공사대금과 채권양도와 채권의 압류추심명령이 얽혀 나왔다. 이제 시작하는 단계라고 교수님은 쟁점을 미리 알려주셨고, 짤막한 기록 쓰는 방법론 강의 뒤에 비교적 단촐한 내용의 모의기록을 검토하고 소장을 작성했다. 


다음 주의 강평을 들어야 알겠지만, 내가 아는대로 쓰고 나왔는데 내용도 양식도 어설프디 어설프다. 아마 다음주 강평 시간이 되면 조금 더 뼈저리게 느끼겠지. 그런데 스트레스는 안 받으련다. 기록 쓸 때 잘 좇아가고, 강평 잘 들어서 다시 작성해보고, 놓친 민사쟁점 고치고, 양식 익숙해지고 하다보면 나도 쪽팔리지 만은 않은 법조인의 흉내를 내게 될 것이다. 급하지 않게 천천히 매일매일 놓치지 않고 조금씩.


급하지 않게 천천히 놓치지 않고 조금씩. 그렇게 다시 주짓수도 시작하였다. 학교 근처 주짓수 도장. 1학년 때 등록하고 두달 남짓 다니고 나가지 않았다. 그 때는 주짓수가 덜 와닿은 것도 있었고, 학교 생활 적응과 시간아끼기가 중요했던 것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지 않다. 저녁 시간 애매하게 끝나는 날 한시간 텀을 두고 이동한다. 저녁은 간단식으로 대체하고 운동을 하고 올라온다. 앞 뒤로 한시간 더 소요되나 실제 수업 끝나고 바로 공부 하기 싫은 마음과 밥 먹는 시간 등등을 제하면 시간 손해는 크지 않다. 그렇게 월, 화, 목 저녁 주짓수를 한다. 아침에는 케틀벨 스윙과 스내치를 번갈아 할 것이다. 주말에는 자전거를 1번이라도 타려 했는데 미세먼지가 두렵다. 마스크를 샀다. 조금은 숨 쉬기 편한. 하지만 여전히 미세한 발암 덩어리들을 헉헉대며 자전거를 타는 것이 옳은 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나는 제법 쓸모 있는 법조인이 되고 싶다. 올 한해는 적어도 내가 법조인이 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아니 나는 올해 적어도 스스로를 초보 법조인으로 만들어야 한다. 자조노력이 필요한 시기다. 그렇게 해는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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