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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새벽 May 10. 2019

로스쿨일기: 꾸준함에 대하여

주짓수, 그리고 공부 

주짓수 도장을 3월쯤 3달치를 끊어놓고는 첫 2주 정도 나가다가 한 달 반을 안 나갔다. 이러다간 3달을 통째로 날릴 것 같아서 어제 다시 나갔는데 오랜만에 지치도록 운동해서 좋았던 것도 있지만 뜻밖의 좋은 말들을 들어 오늘의 일기거리로 삼는다. 


주짓수를 찔끔찔끔 배우려고 시도한 것만 벌써 그 역사가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에는 부산에서 군생활 할 당시에 부대 앞에 도장이 있어서 등록하고 찔끔 나가다 말았고, 

서울에 와서는 또 부대 안에서 저렴하게 진행되는 강좌가 있어서 찔끔 나가다 말았다. 

그리고 로스쿨 입학하고는 1학년 1학기 때 찔끔 나가다가 바쁘다는 이유로 말았다. 


그러니까 만약 그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했으면 벌써 6년차에 적어도 블루, 아주 높은 확률로 퍼플벨트는 되었어야 하는 시간인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1그랄도 없는 생 흰 띠다. 이러다가는 도저히 평생 배울 일이 없을 것 같아서, 3학년 1학기 올라가면서 운동 어차피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주짓수 도장을 세 달 끊었다.



무슨 일이든지 할 때 빈도(frequency)와 강도(strength)를 다 확보하면 좋겠지만, 그게 주업이 아니라면 이 둘 다 확보하기에 여의치 않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아예 포기할 것이 아니라면, 둘 중 하나 혹은 둘 다를 줄여야 한다. 그런데 이 경우에 그렇게 줄여서 할 바엔 아예 안하느니만 못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특히 "열심히"의 가치가 강조될 수록 빈도와 강도를 낮춘 활동은 의미가 없는 것으로 보여질 여지가 크다. 


나도 욕심을 부려서 일주일에 적어도 두 번, 많으면 세 번은 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어디 사람 일이라는게 마음대로 되는가. 군대 있을 땐, 연습훈련에 행사에 기타 등등 내가 저녁시간을 스스로 통제 못하게 하는 요소가 많았고, 그러면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나갈 수 있는 건데 그러느니 운동을 가기가 싫었다. 갈 때 마다 새롭게 힘들기도 했고, 그 정도로 해서 나한테 무슨 도움이 될까 싶기도 했던 것이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돌아보면 그렇게 해서 매주 하루씩만 나갔어도 그게 1년이 되고 2년이 되고 3년이 되고 연차가 쌓이면 처음 시작할 때의 나와 지금에 이르러서의 나는 아주 크게 차이가 났을 것이다. 그리고 몸에 익을 수록 더 없는 시간을 내고자 하는 동기부여도 확실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기회를 수차례 그냥 흘려보냈다. 


조금이라도 꾸준히 나의 시간을 내는 것, 그런 꾸준함이 바로 성실함이겠지. 나는 내가 적어도 성실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던 것 같다. 그렇지만 마음 속에서는 나도 알고 있었다. 나는 그런 종류의 꾸준함을 갖추지 않았다는 것을. 쉽게 질리고 지치고 그만두고 싶고 어려운 것은 피하고 싶다. 하지만 그러한 인내의 열매는 또 갈망한다는 것은 아이러니. 




직장인이 되면 분명히 더더욱 새로운 것을 할 여력이 없을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바빠도 아직 학생인 지금 이것을 시작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바빠졌다. 어제는 아침에는 객관식 시험, 그리고 이어서 수업, 점심 먹고 잠깐 쉬고 다시 수업 복습을 좀 하고, 세시에서 여섯시까지는 세시간 수업이 이어졌다. 이 일과를 마치고 나니 별달리 의욕이 안 생기고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도복을 챙기러 잠깐 방에 들렀는데, 8시 까지만 도장에 가면 되는데 그게 그렇게 가기가 싫었다. (여담인데 목요일 오후 민사재판실무 수업은 보통 7시에 끝나서, 간단히 요기하고 8시까지 운동하러 가면 일정은 딱 좋다. 이날은 수업이 조금 일찍 끝난 편.) 


그런데 오늘을 넘기면 정말로 영영 가지 않을 것 같아서 도복과 안에 받쳐입을 셔츠를 챙겨 넣고, 가기 싫은 발걸음을 일단 뗐다. 도장에 가니, 아직 사람이 많지 않다. 얼른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시작이 절반이란 것은 반쯤은 맞는 말. 일단 가게 되니 운동을 하게 된다. 그간 간간히 집에서 케틀벨도 하고 밖에서 자전거도 타고 했더니 올 3월 초 갔을 때 보다는 운동 따라가기가 훨씬 수월하다. 딱 한시간만 하고 와야지 했던 일정은, 도복 입고 하는 시간 1타임, 도복 없이 하는 시간 1타임 해서 총 2타임 2시간을 하고 나오게 되었다. 하지만 이날은 운동보다는 관장님의 일장연설이 의외로 마음에 남았다. 



이제는 나도 머리가 굵어서 남의 말을 정말 잘 안 듣는다. 구체적 분야에서의 충고야 할 수 있지만, 일반적인 삶의 태도에서의 조언 같은 것은 귀로 듣고 흘린다. 항상 승리하고 살지는 않았지만, 여기까지 어쨌든 내 원칙대로 살아왔고, 아직은 나름대로 너무 쳐지지 않고 달려왔다고 생각해서. 물론 이것은 오판이지만, 이런 오기와 곤조가 나를 버티게 했던 힘이기도 하다. 또 성인 간에 누가 누구에게 삶에 대해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삶의 태도에 대한 말들을 나는 정말 쓸모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잘 들으려 하지 않는데, 어제는 들었던 말들이 꽤 마음에 남는다. 


오랜만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나는 어제 내 발로 스스로 도장에 나갔다. 관장님은 아마 그게 신경쓰이셨던 것 같다. 몸풀기와 웜업을 하고 기술 지도 시간에 관장님은 주짓수에 있어서 꾸준함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시간이 정말 없을 때는 일주일에 한 번만이라도 나오라고. 그게 별 것 아닐 거 같지만 길어질 수록 차이가 크다고. 한달 동안 매일 나오고 그만두는 사람하고 일주일에 한 번만 나오더라도 1년 꾸준히 한 사람하고 누가 더 잘 할 것 같냐고. 횟수로만 따져도 1년 꾸준히 한 사람이 2배에 달한다. (이건 필자주) 결국 꾸준함(빈도의 지속)이 일시적인 노력의 강도를 높인 것보다 결과에서 유리하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해서 엄청난 1류가 될 수 있는가? 당연히 아니다. 하지만 그런 꾸준함이 나에게 실제적인 변화를 줄 수 있는가? 이 역시 지극히 당연하다. 그렇다면 나의 목적이 선수가 되고자 함도 아니고, 하나의 기예를 배우고자 함인데, 그렇게 하지 않을 이유가 무엇인가. 지금 하기 싫을 때 한 번 참고 일주일에 한 번만 시간을 내면 되는데 그것조차 못할 이유는... 없다. 일주일에 한 번 2시간을 못낸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적어도 나에게 이 정도의 시간통제권이 주어진 상황에서는 말이다. 그리고 몸에 익어서 한 번 가는 것이 그렇게 힘들지 않은 일이 되고 나면 2번이라고 못갈 일도 아닐 것이다. 그렇게 주2회 꾸준히 3년 이상 하면, 과연 나는 그 정도로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할까? 당연히 아닌 것이다. 


빈도와 강도를 확보하지 못하면 무익하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니, 내가 일주일에 한 번 나간다고 해서 설렁하는 것도 아니오, 내가 주어진 환경에서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니 진도가 더디 나간다고 해서 부끄러울 것도 없다. 운동이 빨리 늘지 않으면 오래하면 될 일 아닌가? 이게 로스쿨 과정처럼 3년 안에 못 마치면 인생이 고달파 지는 것도 아닌데, 과외 활동으로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을 이유는 무엇인가. 즐길 수 있는 선에서 나에게 기쁨이 되는 만큼, 대신 놓치지 않고 꾸준히인데 못할 이유는 없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 활동에 대해서 더 의욕도 생기고 다음주에 언제 가지에 대한 부담도 없어졌다. 나는 내킬 때 가면 되는 것이다. 대신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사실 나는 이 말이 하고 싶어서 글을 길게 끌었다. 부도 사실 이와 다르지 않다. 어차피 나는 공부를 해야 한다. 그 중에는 놓치는 것도 있고 완벽하게 하지 못하는 것들도 있다. 그럴 때는 눈 앞에 있는 것을 하면 된다. 사례 공부를 해야 하는데 하기가 싫을 때는 객관식 문제를 풀며 시간을 보내고, 학교에 정말 오기 싫을 때 그래도 일어나서 집을 나선다. 앉아서 아무것도 안할 것 같지만 그래도 앉으면 무엇이라도 보게 된다.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고 능력 밖에 있는 것을 애닯아 하지 않고, 빈도와 강도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서 꾸준함을 가지고 하면 기복없이 할 수 있을 것 같다. 3학년 수험생활, 마음은 불안하고 내가 잘 하고 있는지 모르겠고, 자꾸 메꾸지 못한 빈 공간들이 눈에 들어오는데, 빈도와 강도의 강박에서 벗어나서 꾸준함으로 1년을 보내면 나에겐 원했던 결과가 있을 것이다. 내 머리가 남들보다 특별히 나쁘다면 모르되, 그렇게 밀고 나갔음에도 어그러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머리가 모자란 것이라면, 역시 다른 일을 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여기까지 왔고, 조금만 더 가면 된다. 나는 충분히 잘 해왔다. 남은 8개월은 온전히 즐겁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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