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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새벽 May 26. 2019

로스쿨일기: 인간관계

정답은 없다 

‘I am sorry,’ said Frodo. ‘But I am frightened; and I do not feel any pity for Gollum.’

‘You have not seen him,’ Gandalf broke in.

‘No, and I don’t want to,’ said Frodo. I can’t understand you. Do you mean to say that you, and the Elves, have let him live on after all those horrible deeds? Now at any rate he is as bad as an Orc, and just an enemy. He deserves death.

‘Deserves it! I daresay he does. Many that live deserve death. And some that die deserve life. Can you give it to them? Then do not be too eager to deal out death in judgement. For even the very wise cannot see all ends.”

                                                                    - J. R. R. Tolkien, "The Fellowship of the Ring"



반지의 제왕 시리즈 1권, 반지원정대에서 나온 대목이다. 프로도가 간달프와 혐오스러운 골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그런 녀석은 죽어 마땅하다고 하자, 간달프가 이에 반박하며 한 말이 꽤 오래 기억에 남았다. (사실 게임하다가, 게임에서 인용된 걸 보고, 와 멋있다 했던거긴 한데...) 볼드체 부분을 번역해보자면, 


살아있는 이들 가운데 죽어 마땅한 이들도 여럿 있지만, 죽은 이들 가운데 살았어야 하는 이들도 더러 있지. 헌데, 그 여부를 네가 결정할 수 있는가? 혹 그렇다해도 너무 쉽게 판단을 내리지는 말게. 아주 현명한 자라 할지라도 모든 것의 끝을 알 수는 없는 일이니. 정도가 되겠다. 


사실 이걸 보다 현실적으로 느낀 것은 군생활 할 때였다. 여러모로 배울 점이 많았던 T모 소령님은 자기와 함께 일해야 하는 사람들을 동기부여 시켜 어떻게든 일을 해내게 만드는 능력이 있는 사림이었는데, 그 분의 용인술은 그런 식이었다.  그 분 스스로는 매우 성실한 사람이었고, 말 그대로 일 밖에 안하고, 일 생각만 하는 워커홀릭이었는데 자기 기준에서는 아마도 나태하기 짝이 없을 후배들을 보면서도, 그 사람이 일을 함에 있어서도 어떤 도움이 될 면이 있다고 한다면 그런 부분을 발휘할 수 있게 해주고 그 사람의 성정 상의 한계를 넘어서 괴롭히지는 않는 그런 스타일이었다.   


그러니까,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능력을 할 수 있게 자기 편으로 관리하면서, 몰아붙이는게 필요할 때에도 다그치기도 하지만,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시키기만 하는 것이 아닌 같이 고생하면서 옆에서 일일이 챙기며 업무를 마무리할 수 있게 해주는 스타일이었다. (다만, 자기가 제일 헌신적으로 일하는 한편, 후배들은 어르고 달래가면서 업무에 한 팀으로서 참여하게 하는 식의 업무진행이었기 때문에, 자기가 누군가를 동기 부여할 입장이 아닌 후배의 입장에서 선배들을 대함에 있어서는 적용이 다소 제한되는 방식이기는 했다. 어르고 달래도 선배는 지 맘대로 해버릴 수 있으니까. 특히 지휘계통상에 상위자라면.) 물론 우리가 단기장교였고, 군대에서 커리어의 승부를 볼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다소 느슨한 기준을 적용해준 감도 있었지만, 적어도 단기자원들을 어떻게 활용해야 최선의 결과를 나을 수 있는 지를 아는 사람이었다. 


단기장교들끼리 '우리가 봐도 못봐주겠다'고 생각해서 저 사람하곤 아무 일도 할 수 없겠다고 단정한 사람에게서 조차 어떤 장점이 있다면 그 것을 포착해서 인정해주고, 그런 장점을 발휘할 수 있게 해주는 사람이었다. 실제로 그랬기 때문에 뜻하지 않은 곳에서 도움을 얻고, 풀리기 어려운 일들을 풀어낼 수가 있었다. 


나는 상당히 편협한 인간관을 가지고 있어서, 나와 맞지 않을 것 같으면 적당히 거리두고 끊어내거나 접촉 자체를 차단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와의 맞고 안 맞고를 떠나서 일에 우선순위를 두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유연하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렇다고 그가 우리를 수단적으로 대한다고 느낀 적은 없다. 큰 틀에서는 우리를 더 수단적으로 잘 다루는 수완을 보였다고 할 지도 모르나, 가장 우리를 동료로서, 전우로써 대접해주었다고 느낄 때가 그와 일을 할 때였다. 군생활의 시작을 그분과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은 여러모로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결국 하고 싶은 말은 "쓸모 없는 사람은 없다."라는 것이다. 물론 멀리해야 좋을 사람이 있고, 질나쁜 새끼들과는 접촉 자체를 안하는게 좋기도 하다. 그렇지만 나와 동류의 인간들과만 교류해서는 내 상상력의 범위를 벗어나는 일들을 마주쳤을 때 문제 해결 역량이 극히 제한된다. 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사고를 할 수 있거나, 다른 환경에서 자란 이들, 우선하는 가치가 전혀 다른 이들은 내가 전혀 해결책을 모색할 수 없는 부분에서 생각도 못한 대안들을 제시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다양성의 존중에는 한계가 있고, 나쁜 색희는 그냥 나쁜 것이기에 우리는 그런 것까지 허용할 필요는 전혀 없겠으나, 그 사람이 내게 불성실해 보인다고, 나와 일하는 방식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방향이 나와 맞지 않다고 배격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세상은 나와 동류의 사람들과만 살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나와 전혀 다른 사람들의 솔루션이 요구되는 순간은 생각보다 잦을 수 밖에 없다. 


굳이 이렇게 긴 이야기를 한 것은, 로스쿨이라는 공간은 필연적으로 사람들간의 충돌이 많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몸 담았던 군은 꽤 낙후된 조직문화를 가지고 있어서 그 안에서 문화충격을 느끼고 굳은 살이 베기면서 삼년간 부대끼다 돌아온 학교는 사실 생각보다 말랑말랑했고, 공부 스트레스 외에 인간관계 스트레스는 생각만큼은 크지 않았다. 그럼에도 하루 종일 3년 가까운 시간동안 한정된 사람들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다보니, 그 안에서 누군가는 '촌극'이라고 표현한 유치한 일들도 많이 일어나는데, 사실 그런 것들이 일일이 신경쓰여서야 학교를 다닐 수 없다. 물론 개중에는 권력과 지위가 주어진다면 서슴없지 자신을 위해서 남을 희생시킬 위인들도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고, 왜 저러지 싶은 일들도 종종 일어나지만 여기는 다만 각자의 그런 뒤틀림들이 더 잘 나타날 수 밖에 없는, 감추고 살기가 참 힘든 공간이라 그럴 뿐. 그들이 평균적으로 더 악하기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평균적으로 욕심은 더 많을 수도 없는데, 그게 남에게 해를 가할 동기를 강화할 수 있는 요인이 될 수는 있겠다.  


아무튼 표면적으로 들어나는 어처구니 없음으로 사람 하나하나를 평가하면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의 범위가 매우 협소해지고, 이것은 집단차원에서의 문제해결능력을 제한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사람들을 사랑하지는 않아도 구태여 싫어할 이유는 많지 않다. 당장 나도 내 안의 뒤틀림들을 너무나 잘 알지 않는가. 


그러한 이유로 아주 실리적인 입장에서 나는 나와 호환성이 없는 사람들을 배척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세상은 부조리하고, 그 속을 살아가는 인간 역시 부조리하게 마련이다. 우리는 제도로서 이를 보완할 수 있는 곳에서 이를 보완하고, 개별적인 일탈자들에 불이익을 주겠지만, 그 개개인을 굳이 탓할 필요는 없다. 그들 역시 한갓 사람에 지나지 않지 않는가. 너무나도 유약하고 욕심 앞에 무너지고 다들 자기만이 주인공인 것으로 알고 끝나는 그날까지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우리는 동질성을 가지니까. 


내가 둔한 것도 있지만, 그래서 사람들이 그렇게 좋지도 그렇게 싫지도 않다.

그들도 나도 그저 존재할 따름이니까.  


잠깐 센치해지는 토요일 밤의 오늘의 일기.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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