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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새벽 Jun 08. 2019

로스쿨일기 : 허탈하다

민재실, 너란 놈 

민재실. 이번 학기 내가 엄청나게 성실했다 말은 못하겠는데, 꽤 많은 노력과 정성을 들였는데 정말 허탈하다. 

시험 자체가 워낙 어려웠던 듯 하고 동기들도 다들 많이 당황스러워 한 것 같지만, 그러한 점을 고려하더라도 스스로에 심히 불만족스러운 부분들이 있다. 


음, 시험을 조금 소개해 보자면 민사재판실무 시험은 로스쿨 3학년 1학기 수강하는 수업에서 보는 시험으로 연수원 판사님들이 출강을 나오신다. 민법/민소법을 기반으로 판결문 작성을 위한 기초가 되는 검토보고서 작성법을 가르쳐주는 수업인데, 판결문 작성을 위해서는 사실관계 파악과 법리 검토가 수반되므로 민사법 전반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는 수업이다. 


검토보고서는 어떤 권리를 주장하며 법원에 그에 대한 판단을 구하는 사람(원고)의 주장에 대하여 그 청구를 받은 사람(피고)가 반박하는 내용을 주장--> 반박 --> 재반박 --> 다시 재반박의 흐름으로 정리한 글을 쓰는 것인데, 예시로 목차를 뽑아보자면, 


1. 원고 A의 주장에 대한 판단, 

   가. 청구원인에 대한 판단 (원고의 주장) 

      1)  청구원인의 요지  ==> 어떤 청구하는지를 간단하게 서술

      2)  인정사실 ==> 청구와 관련된 사실관계를 뒷받침하는 증거와 함께 정리  (요건사실에 맞추어서)

      3)소결론 ==>  인정사실에 따라 발생하는 법률효과를 정리 + 청구에 대한 1차적 결론 도출 


   나. 피고 B의 항변에 대한 판단  (원고의 주장에 대한 피고의 반박에 대한 판단)

       1) 변제(돈 갚았다는)항변에 대한 판단

           가) 항변의 요지 

           나) 인정사실

           다) 관련법리 

           라) 변제항변에 대한 결론 

        2) 상계(나도 받을 돈 있어서 똔돈하자는)항변에 대한 판단

           가) 항변의 요지 

           나) 인정사실 

           다) 상계의 범위  (상계충당) 

           라) 상계항변에 대한 결론 

       3) 피고 항변에 대한 결론 

     다. 원고 A의 청구에 대한 결론   


이런 식으로 답안을 작성하면 된다. 

그런데, 거친 목차가 저런 식일 뿐, 그 안에 청구의 유형과 반박(항변)의 유형에 따라서 또 그 서술하는 방법(기재례)가 세세하게 갈린다. 


 결국 이걸 잘 하려면, 

1) 원고와 피고의 주장/항변 등의 법리를 잘 정리하고 결론을 정확하게 도출하기 위한 

민법(실제 권리관계를 정리해 놓은 법 = 실체법)과 

민사소송법 (실체법상 권리를 소송에서 적합하게 주장하고 받아들여지기 위한 절차를 규정한 법 = 절차법)의 관련 내용을 숙지하고, 

2) 이것을 위 양식에 맞춰 풀어낼 수 있게, 기재례에 익숙해져야 한다. 


물론 시험이 이번처럼 어렵게 나온다면 (여기서 어렵다는 것은 주어진 시간 내에 기재례를 갖추어서 내용을 잘 작성하기가 어렵다는 것.) 연습을 많이 해도 결코 모든 것을 잘 정리한 답안을 내기 어렵다. 하지만 내가 화가 나는 것은 이렇게 무리한 것을 요구하는 시험에 완벽을 기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기본적인 부분에서 숙지 안 된 것이 있어서 틀린 것들 때문에 그렇다. 그러니까.. 정말 시험이 끝나고 내 자신이 똥.덩.어.리 같이 느껴졌다. 


기재례는 눈에 불을 키고 로클럭이 되기 위해 달리는 동기들에 비하여 쳐질 수 밖에 없다고 해도, 민법/민소법의 기본 쟁점들에서 결론을 틀리는 것은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인데, 다소 소홀히 한 민소법적 부분에서 결국 결론 자체를 틀린 부분이 2군데 있었다. 이 것은 학업 부족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데, 내가 성의 없이 준비한 것일까? 정리한 내용들의 반복이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화가 난다. 내가 이것 밖에 안 되었나? 나는 (아직 법률가도 아니지만) 법조인으로서의 기본적인 자질도 없는 사람인가? 


이 정도만 해도 된다는 마음은 너무나도 안이했던 것일까. 


일단 다가오는 남은 기말고사와, 2주 남짓 뿐이 남지 않은 변호사시험 대시 6월 모의고사를 잘 넘겨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해야겠다. 이렇게 학교생활을 공부해야할 것들에 멱살 잡힌 채 질질 끌려다니는 것도 지긋지긋하다. 내가 주도권을 잡을 순 없어도, 이제 그만 좀 끌려다니자. 이제 정말. 수험생처럼 공부해보자. 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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