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새벽 Jul 06. 2019

로스쿨일기: 호그와트

로스쿨 호그와트설

로스쿨이 호그와트라니 이것은 왠 말인가.


하지만, 법은 마법과 같고, 로스쿨은 또 호그와츠와 같다.


학교를 다니면서 로스쿨이 호그와츠와 같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다. 사실 해리포터 시리즈가 영국의 기숙학교를 모티브로 한 소설이니 만큼 어디든 좀 과하리 만치 많은 시간을 한 학교 구성원이 함께 보내는 곳이라면 호그와츠의 이야기들을 쉽게 대입할 수 있을 것이어서, 이 비유 자체는 참신성이 떨어진다. 하지만 마지막 학년, 학교 탈출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올해, 이곳은 호그와츠고 내가 배우는 법학은 마법을 배우는 것 같다는 느낌은 점점 강하게 든다.



1. 법학은 마법이다.

이건 정말 유치한 비유이긴 한데, 법학은 마법 같다.

왜냐면, 법에서는 일련의 전제 조건들을 검토해서 그 전제 조건들이 충족되면 그에 따른 효과들이 발생하는데, 이것은 사실적인 것이 아니고 규범적인, 그러니까 사람들의 합의로서 정해진 것이다.


음, 그니까, 어떤 필연적인 자연의 법칙에 의해서 법적인 결과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정해놓은 규칙에 따라서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면 똭~ 하고 법적 효과가 발생하는 것이다.


가령 물건을 산다고 해보자. 물건의 누구의 소유인지에 대해서 자연적으로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렇지만 법은 그 물건의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어야 하는지에 대하여 정해 놓았다. 물건을 만든 사람이 있다면 일단 그 물건을 만든 사람의 것이 된다. 그 사람이 물건을 팔았다면 그 물건을 돈을 받고 넘긴 시점에서 넘겨 받은 사람의 것이 된다. 이건 순전히 인간의 임의적으로 정한 것이지만 (물론 관습 혹은 지극히 기본 상식을 공식화(법제화)한 것이기는 할 터이다.) 그에 따라서 법적 효과가 똭 하고 발생한다. 물건을 만든 사람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구분 받는 소유권을 '취득'하고, 그 소유권을 상대방에게 '이전'시킬 수 있다. 이런 관념적인 권리들은 실제적으로 사람들에게 귀속되고, 이 관념에 의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물리적인 힘을 구사하기도 한다. 그 세세한 귀속 관계와 절차에 대해서는 규범들을 만들어 놓기도 하다. 나는 이게 흡사 마법처럼 느껴진다. 의제된 것들에 실제적인 힘을 부여하는 것. 이것은 정말 마법 같지 않은가? 아무것도 없는 곳에 사람이 부여한 의미가 깃드는 것. 그것은 필시 마법일테다.


무미건조한 것들에 어떤 힘을 부여하고, 그 힘의 관계가 사람들이 나름 고안해낸 규칙에 따라서 움직이는 것에 대해서 학습한다. 그리고 그 결과를 예상하고, 원하는 결론 도출을 위해서 역으로 요건을 도출해서 정리한다. 나는 이에 대한 학습이 해리포터의 호그와츠에서 학생들이 마법을 배우면서 느끼는 막막함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헤르미온느도, 해리포터도, 뭣도 아니지만, 마법학교 수강생들 같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어떤 조건들이 갖추어지면 마법이 발현되듯이, 특정한 요건들이 충족되면 법적 효과가 발생한다. 이미 발현한 마법의 효과로부터는 벗어날 수 없거나, 벗어나려고 하면 제약이 가해지듯이, 이미 발생한 법적 효과는 구속력을 가지고 이에 반하는 행동에는 역시 제재가 가해진다. 마법적 효과를 발현시키기 위해 그 전제조건들을 공부하고, 이것을 재현하는 법을 체계적으로 익히는 수업을 듣는 것처럼 법적 효과의 발생을 위한 요건들을 배우고, 이것을 충족시키거나, 그 충족을 저지하는 사항들을 체계적으로 배운다. 이 정도면 꼭 같은 방식의 공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마도 법학은 아주 실용적인 학문이 동시에 아주 일상과 동 떨어져서 그런 느낌이 더 드는 지도 모르겠다. 마법도 꼭 그러할 테니까.




2. 로스쿨생들은 호그와츠 학생이다

이 부분에서는 반발이 더 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일단 로스쿨에는 호그와츠와 같은 정도의 낭만은 없다. 일단 우리는 그이들보다 나이가 훨씬 많고, 훨씬 목표지향적으로 학교를 다니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불행히도 마법사가 아니다. (대다수의 재학생은 머글들일 것이다) 하지만, 반쯤은 기숙학교스러운 로스쿨 생활은 호그와츠 생활 같은 면들이 있다.


3년 내내 같은 사람들과 같은 과정을 거쳐 같은 시험을 준비하는 이 생활이, 7년 내내 같은 기숙사 아이들과, 같은 수업을 듣고, 같이 졸업을 준비하는 그이들의 생활과 어쩐지 비슷하다는 말이다. 그 안에서 지지고 볶고, 학업과 무관하게도 갈등하기도 하고, 친해졌다 멀어지고, 멀었던 친구와 자연스레 관계가 회복되기도 하고. 그냥 많은 사람들과 오랜 시간을 보내다보면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많은 일들. 우리는 아동 청소년은 아니고 다들 성인이지만, 학교에서 고등학생처럼 공부만 하다보면 왠지 유치해지는 그런 것들 때문에 우리의 생활은 기숙학교 호그와츠 같다.


심지어 교수님들도 그 개성이 파악되면 꼭 호그와츠 같아. 일일이 어떻게 비슷한지는 설명 다 못하지만, 예를 들자면 배경 좋거나 공부 잘하거나 하여튼 뭔가 특출한 학생을 수집하듯 모으는 슬러그혼 같은 교수(물론 정도는 훨씬 경미하다) 말은 독설을 하지만 가르치는 실력은 좋은 스네이프 같은 교수 등등 교수님 별로 개성을 부여하다보면 더러 비슷한 캐릭터로 보이기도 한다. 사실 이건 꼭 여기가 아니라도 어디든 적용될 수 있는 예지만.


아마도 우리는 더 많은 시간을 더 밀접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보내다보니, 대학이라기 보다는 고등학교 같은 느낌이 나서 아마도 더 이런 생각들이 드는 것 같다.


그리고 우리들의 볼드모트. 모두의 적이자 모두를 두려움에 떨게 하는 그 대상. 그 합불 여부 논하기 조차 조심스러운 그 것. 변호사 시험. 그 절대적인 적과, 우리를 힘들게 하는 마법부 같은 변협이나 법전혐. 그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속절없이 고통 받는 마법수련생들인 우리들의 학교생활은 가끔은 아주 가끔은 꼭 호그와츠에서의 나날들 같은 것이다.


하지만 얼른 졸업해야지. 이 놈의 마법공부, 이놈의 호그와츠. 빨리 떠나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로스쿨일기 : 방학계획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