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새벽 Dec 08. 2020

로스쿨일기 : 초보 변호사, 이직하다

ALEA IACTA EST


이제는 제목을 더 이상 '로스쿨 일기'라고 해서는 안되겠지만, 연속성을 위해서 이번 화 까지는 로스쿨 일기로, 다음화 부터는 새 제목으로 글을 써야겠다. 하지만 오늘은 일단 '로스쿨 일기' 제목으로 마지막화: 변호사로서 처음 일 다녔던 곳과 그 끝, 그리고 이직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본다. 

 

0. 일, 시작하다 


로스쿨 3년을 마치고, 변호사 시험을 보고, 직장을 구할 때 꼭 사내변호사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아니다. 아니 사실 사내변호사로 시작 하겠다는 마음은 없었다. 어쩌면 사내변호사로 시작하면 안된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형사나 가사 사건 위주로 시작하고 싶지 않았고, 그렇다고 나의 애매한 성적과 나이로는 기업법무나 금융 같은 '뽄때'나는 일을 하는 펌들은 가기가 힘들었고, 그럼에도 내가 주로 보게 되는 영역과 하는 일에 대해서 어느 정도 선택권을 가지고 싶었기에 그렇다면 특정 분야의 영업활동을 주로 하는 회사에서 변호사로서 일하는 것이 차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 이것저석 대외활동 했던 것들, 남들보다는 조금 하는 영어 등등이 법무법인 보다는 회사에서 선호하는 이력인 것도 한 몫 하였다. 또, 어차피 변호사 시험 합격 후 6개월이라는 실무수습 기간을 채워야 한다면, 그걸 어디에서 한들 그렇게 문제될 것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그렇게 나는 변호사로서의 첫 걸음을 판교 모처의 IT회사 법무팀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1. 사내'변호사'


사내'변호사'는 변호사 본령의 업무인 송무를 담당하는 경우는 잘 없고, 설령 송무를 담당하더라도 그 빈도와 강도가 현저히 낮으므로 진정한 의미에서 '변호사'라기 보다는 '법률 자문사'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그래서 기업 내에서 직원으로 소속되어 계약검토 및 법률자문을 제공하는 사람에게 '변호사'라는 타이틀은 꼭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주로 예우 차원에서 '변호사'라는 별도 직급을 두거나 직급과 병기하여 '변호사'를 표기해 그 자가 변호사의 자격을 가진 자임을 알리는 경우가 많고 그에 따라 동급의 직원들에 비하여 다소 대우를 달리 해주시는 경우가 많다. 


송무를 경험하지 않고 바로 사내변호사로 간 것에 대한 아쉬움이 없지는 않다. 변호사 자격증을 위해서 공부하던 순간들 중에 한 번도 나는 꼭 송무를 하는 변호사가 되어야겠다라거나 송무를 나의 평생의 업으로 삼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적어도 송무를 해보고 그 바닥을 나오더라도 나와야 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리고 송무가 힘들다고 해도 사내 자문 업무보다는 흥미는 있겠다는 생각도 들기는 한다. 실제 발생한 분쟁의 해결을 위해서 당사자를 대리하여, 상대방 대리인과 대결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사람의 투쟁심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있고, 결과에 대한 피드백이 보다 즉각적이고 직접적이니까. 또, 어쩌면 '변호사'라는 직업이 가장 보람되는 때가 있다면 그건 여하한 사유로 곤경에 처한 사람을 법적인 수단을 통해 도와줄 수 있을 때일텐데, 이 역시 일선에서의 송무 변호사로서 있어야 제대로 경험할 수 있는 것일테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마 송무변을 조금 하다가 사내변으로 옮겼더라면 어쩌면 첫 직장의 만족도가 훨씬 높았을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 하지만 주사위는 던져졌고, 나는 사내변호사로서 일을 처음 시작하게 되었다. ALEA IACTA EST



2. IT회사 법무팀 사내변호사

 

2.1. 전통산업 보다는 신산업!


처음 일을 시작할 때, 법무법인은 무수히 많은 곳에서 탈락했지만 사내변호사 모집에서는 비슷한 시기에 2군데에서 합격통보를 받았다. 한 곳은 대기업 계열 건설사였는데 주로 계열사들의 건설 업무를 지원하는 회사였고 다른 한 곳은 게임, 핀테크, 클라우드사업 등을 하는 IT 회사였다. 사실 대우는 대기업 계열 건설사가 훨씬 좋았다. 처음부터 변호사 수당도 훨씬 많이 주었고, 다음해 3월에 승진 조건이었고, 회사의 분위기도 부드럽고 업무량도 적당한 수준이었고, 구성원들도 너무 좋은 분들로 보였다. 같은 시기 오퍼를 받은 IT회사는 연봉이 그보다는 꽤 낮았고 업무량은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되고 조직 분위기도 보다 깐깐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결국 IT회사를 선택하였다. 간간히 지친 마음이 들 때마다 내가 왜 그 조건을 마다하고 여기와서 고생인가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닌데, 그럼에도 결과적으로 당시 선택은 옳았다는 생각은 한다.


당시 내 결정에는, "결국 어떤 분야에서 일하던지 차기 산업은 IT를 통해서 이루어질 수 밖에 없고, 그렇다면 항상 있어왔던 분야의 업무보다는 앞으로 모든 업무의 줄기가 될 (기존 산업도 결국 핵심 통제 기술은 IT 기반으로 갈 수 밖에 없으니) 분야에서 시작하는 것이 더 맞지 않는가"라던 (대기업 인하우스 컨설팅 부서에서 있다 나와서 지금은 스타트업 창업가로 일하고 있는)H형의 조언이 큰 영향을 미쳤다. 너무 맞는 말이었고, 나로서도 주로 하도급, 노무 등의 업무와 간간히 있을 해외 건설 관련 계약서를 보는 것이 주업무가 되었을 건설사 보다는 신사업 분야의 규제를 폭넓게 볼 수 있는 IT 회사의 법무팀이 보다 맞는 선택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나름 시장에서 포지셔닝을 잘 잡은 IT회사에서의 업무를 통해서 서당개 마냥 업계 트렌드를 조금은 더 밀접하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그럼에도 초봉을 깎고 들어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물론 없지 않았다. 


2.2. IT회사 사내변호사의 업무 


사실 사내변호사들이 하는 일은 대동소이 하다. 다만 산업분야에 따라 주로 들여다 보는 법이 조금 차이가 있을 뿐이다. 내가 다녔던 IT회사는 매출 규모에 비하여 법무조직의 규모가 꽤 큰 편이었다. 또 소송을 제외하고는 계약검토와 법률자문은 거의 법무법인 외주를 주지 않고 내부적으로 해결하는 편이었다. 그런 점에서는 회사 차원에서 법무검토를 적절히 잘 활용하는 편이라고 볼 수 있었고, 법무조직 구성원으로서도 회사의 돌아가는 사정을 들여다 보기 좋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은 자리였다. 


아무튼 송무를 하지 않는 사내변호사의 업무는 크게 계약검토와 법률자문으로 나뉜다. 계약검토는 말 그대로 회사가 맺는 계약서의 작성, 검토, 수정 등 계약체결과 관련된 전반의 업무지원이고, 법률자문은 그 범위가 무척 넓은데 이사회, 주주총회 등 회사의 운영과 관련된 사항에 대한 법무지원으로부터, 새로운 사업 아이템 추진 시 규제리스크 검토 등 매우 다양하다. IT회사라고 해서 사내변호사의 업무가 본질적으로 차이날 것은 없고, 다만 보게 되는 분야가 전자상거래나 전자금융 등 IT관련 특별법들을 조금 더 보게 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나는 핀테크 부문 전담팀에 배정받아서 주로 회사의 결제서비스 관련 계약서들 검토와, 사업부에서 추진하는 서비스 변경 또는 신규 서비스 도입에 따른 법적 리스크 검토 업무를 수행하였다. 



3. 스타트업으로 이직!


위의 IT회사는 야근도 거의 없고, 주말출근은 아예 없으며, 대우도 나쁘다고는 할 수 없고, 사내에서는 모두 '변호사'로 불러주시고 존중해주시고 맡게 되는 업무의 질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이직을 결심했다.


3.1. 변호사로서의 성장 


우선 위 회사에서 매출규모에 비하여 법무조직이 크다는 것은 회사가 영업 수행에 있어서 법무검토를 중요시여긴다는 점에서는 매우 좋은 지표고 실제로 사업 분야의 전단계에서 세부적인 법무 지원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는 모범적인 면이 있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법무조직이 크고 분업화가 잘 이루어져있어서 초임 변호사로서 다양한 업무를 경험하며 빠른 시일 내에 일을 손에 익히기에는 오히려 불리한 면이 있다. 이건 배부른 소리일 수는 있는데, 어쨌든 나는 변호사로서의 나의 장기적인 생존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고, 그렇다면 조금은 내가 내 책임하여 더 다양한 일을 더 빨리 더 많이 경험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내가 외부에서 변호사 생활을 조금 오래 하다가 입사했더라면 만족도가 훨씬 높지 않았을까 생각은 든다. 


옮기게 되는 스타트업은 역시 간편결제 서비스를 제공하는 핀테크 스타트업인데, 현재 10년차 변호사님이 한 분 계시고, 그 다음은 바로 나다. 그 전 회사에서는 내가 뭘 잘 몰라도 주변에 물을 수 있다고 생각했고, 또 회사 내에 자체적으로 쌓여온 자료들도 많고, 각종 표준계약서도 잘 정비되어 있고, 내가 굳이 처음부터 끝까지 고민하면서 일하지 않아도 해결 가능한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 옮기게 되면, 내가 더 고민하고 내가 더 많이 이해하고 있어야 답을 드릴 수 있는 부분이 늘어날 것이다. 한편으로는 무섭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설레기도 한다. 


핀테크 전담 법무팀에 있으면서도 사실 업종의 본질적인 부분에 대해서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았고, 공부 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는데, 옮겨가면 내가 내는 검토의견이 다중의 필터를 거쳐서 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스스로 더 많이 알고 있어야 하고, 나 자신의 오류를 내가 줄여나가야 하니,까 미리 공부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그런 점들이 더 자극이 되어서 무서우면서도 설렌다. 


3.2. 스타트업 생태계로 가고 싶은 마음


판교 모처의 IT회사는 판교다운 분위기를 풀풀 풍기는 편인데, 복장도 자유롭고 사내 복지도 잘 되어있고, 휴가 등의 사용도 몹시 자유롭고, 근무시간 등의 선택도 자율도가 높고 여러모로 장점이 많은 회사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 바이 팀의 분위기라든지 회사의 비전이 공유되는 정도 등에 있어서 아쉬움은 있었다. 그런 생각이 꼬리를 꼬리를 물다 내린 결론은 결국 회사의 비전이 나의 비전과 공감되기를 원하면 내 회사를 차려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어떤 섹터에서 일하든, 어떤 전문성을 가지고 일하든 결국 내 이름을 걸고 나의 일로서 하는 것이 아니면 결코 만족될 수 없을 것 같다는 느낌. 어쩌면 주변에 창업하고 잘 버텨나가고 있는 친구들이 많아서 막연한 동경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굳이 로스쿨 가서 시간과 자원을 쏟아붓고 이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 것 같기도 하고, 또 개업한 변호사가 되면 그것 자체로 창업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 보다는 조금 더 일반적인 의미에서, 조금 더 정해지지 않은 길이 재미있을 것 같아서. 


하지만, 물론 막연한 동경과 실제는 당연히 괴리가 있지 않겠는가. 그런 점에서 IT회사라고 해도 이미 자리를 잘 잡은 대기업의 포스를 풍기는 곳보다는 아직 투자 받아 커나가고 있는 아직은 조금 더 동적인 분위기가 살아있고 부서간 경계가 조금은 덜 명확한 곳에서 스타트업의 생존법을 관찰하고 싶었다. 관찰의 시간이 너무 길어지면 결국 행동하지 않을 것이고, 법무로서도 먹고 살 길이 충분하다면 굳이 리스크를 감당하는 선택을 할 것인지, 내가 그런 깜냥이라도 되는 것인지는 너무나도 모를 일이지만 그 근처에서 기웃거리는 것으로 그 첫걸음을 떼는 것은 결코 나쁜 선택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 점에서 찐 스타트업 생태계로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는 선택은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그렇게 나는 판교와 작별하였다. 아듀, 판교


4. 생존준비 


그렇게 결심하고 나니, 공부를 좀 해서 가야되게 생겼다. 과한 욕심을 부리고 싶지 않고, 내가 하다 그만두지 않을 선에서 공부하고 싶었다. 당장 가서 업무를 해야 하니 우선 급한것은 1) 스타트업에서 일어날 수 있는 법률문제가 무엇들이 있는지 보는 것과, 2) 핀테크 업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규제 이슈가 무엇인지도 감을 잡는 일. 그래서 일단 준비한 책은(나는 결국 모든 문제를 텍스트로 해결해야만 하는 문돌이이다.) 민변 예하 스타트업 법률지원단이 박영사를 통해 출간한 <스타트업 법률 가이드>와 예자선 변호사가 쓴 <핀테크 규제와 실무> 두권의 책이다. 요 두권이면 적어도 일하는 방향성 정도는 충분히 얻어갈 수 있지 않을까. 아무튼 꼭 가기 전까지 다 읽고 가지는 못해도 일단 쉬면서 차근히 책을 보고는 있다.  


그리고 어쨌든 이제 좋던 싫던 IT 분야 법무지원으로 당분간의 업무가 확정되었으니, IT자체에 대한 이해가 조금은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또 H형으로부터 추천 받은 <생활코딩>사이트에서 WEB관련 과정들을 따라가고 있다. 처음에는 HTML 부터 시작해서 아주 간단한 것들부터 배우는데, 인터넷이라는 공간 자체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켜 주기도 하고, 기술분야에 대한 개략적인 이해를 도와주는 것 같아서 좋다. 무엇보다 생활코딩을 만든 이고잉 님의 강의들이 워낙 쉽고 재미있게 구성되어 있어서 공부한다는 느낌보다는 퍼즐 맞추듯 (아직은) 재미있어서 좋다. 


때마침 겨울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따스한 온실에서 그 밖으로 한 걸음 내딘 것 같기도 하고, 여러모로 긴장이 되기도 하는데, 내 자신에게 행운을 빈다. WINTER IS COMING.



올라가는 것 같지만, 올라서 바라다보이는 잠깐의 풍경이 무척 새롭다는 것을 제외하면 가던 길로 다시 내려와야하는 '판교의 그 육교'


매거진의 이전글 로스쿨일기: 백수는 아닙니다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