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예전의 기억을 끄집어 올 수 밖에 없다.
가끔 처음 시작하는 일이 낯설고 힘들 때, 나는 두 가지 경험에 의존하여 스스로를 다독인다.
하나는, 운전을 처음 배울 때의 느낌 그리고
또 하나는, 군 시절 소위 때 첫 1년의 느낌.
지금도 나는 운전을 즐기는 편은 아니고, 도심이던 고속도로던 주행이 주는 재미보다는 스트레스를 더 느끼는데, (내 통제를 벗어난 리스크가 너무 많아서 운전에서 어떤 즐거움을 느낀다는 것은 나에게는 너무 낯선 관념이다.) 그래도 지금은 익숙해져서, 크게 생각 안하고 운전대를 잡을 수는 있게 되었다.
나는 운전면허를 꽤 늦게 딴 편인데, 처음 운전대 뒤에 앉았을 때에는 왜 그렇게 모든 것이 무섭게 느껴졌는지. 실제 차를 처음 몰아본 것은 군생활 할 때 부산 하고 서울에서 부대 안에서였고, 부대 안에서는 어차피 속도는 전혀 낼 수 없고, 통행량도 없다시피 한 수준인데도 운전은 꽤나 긴장되는 일이었다. 나의 인풋이 자동차를 통해서 어떤 아웃풋으로 나오는지에 대한 감이 없었으니까.
그렇게 차의 가속과 감속에도 익숙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이 교통법규를 준수하여 줄 것이라는 믿음이 없었고, (지금도 완연한 믿음은 아니다), 내가 운전에 필요한 상황인식을 전부 다 하고 있다는 자신도 없어서, 모든 순간이 긴장으로 가득했다. 그래서 잠깐만 운전대를 잡고 나와도 진이 빠지듯이 피곤했다.
운전에 그마나 익숙해진 것은 로스쿨 생활을 하면서였다. 대중교통으로 통학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는 것 같아서 자취하기 전에는 집에서 1년 정도 부모님 차로 통학했는데, 새벽에 가고 밤에 오니 차도 막히지 않고,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고 운전해서 다닐만하였다. 물론 그 시간대엔 88을 사람들이 트랙 질주하듯 질주해서 문제였지만, 나도 곧 그 속도감에 적응해갔다. 그렇게 오가는 길에도 익숙해지고, 운전 자체에도 익숙해지니, 그 전처럼 운전대를 잠깐 잡는다고 진이 빠지지는 않게 되었다.
처음에는 온갖 것들을 다 보고 확인하려고 하고, 그렇지 않으면 안심이 안되고, 잔뜩 힘이 들어간채 운전을 했다면, 조금 익숙해지면서 내가 운전하면서 주로 확인해야 될 정보들을 선별해서 볼 수 있게 되니까 힘을 빼고도 운전할 수 있게 된 것.
무엇이든 처음 배우는 것들은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긴장되고 무섭고 모든 것이 신경쓰이다가 점점 시간이 갈 수록 그 때 그 때 확인해야 하는 정보량을 줄여나가고, 그래도 같은 정도의 주의를 유지할 수있듯이, 업무도 결국 마찬가지로 결국 취급해야 하는 정보의 중요도에 대한 '감'을 키워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처음에 힘들고 당황스러워도 결국은 자연스러워지는 순간이 있겠거니 하고 생각한다.
낯설어서 힘들 땐, 그저 버티면 시간이 해결해주리라 생각하는 수 밖에.
마찬가지로, 그저 버티면 시간이 해결해주는 것 중에 하나는 초짜를 대하는 주위의 시선이다.
초군반을 마치고 갓 임관해서 실무에 나섰을 때, 나는 제법 잘 하는 것 같은데 모두가 나의 결과물을 의심쩍게 보는데서 오는 스트레스가 있었다.
괴담처럼 전해오지만 실제로 자주 행해지는, 전화와서 "너 말고 장교 없니"부터 시작해서, 공적으로 제출하는 모든 결과물 하나하나에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 조금은 귀찮고 구차한 과정을 적어도 소위 계급장 달고 있는 내내 겪어야 한다. 같이 근무하는 분들이야 시간이 조금 지나고 서로 신뢰가 생기면 어느 정도 부드러워지지만, 처음보고 딱 마주치는 소위 계급장을 보면 사람들은 우선 의구심부터 가지지 마련이다.
사실 나도, 동기가 근무하는 사무실에 부탁할 것이 있어서 전화했는데, 후임인 소위가 받으면,
'어 근데 미안한데, 00이 사무실에 없니. 아 그럼, 혹시 바꿔줄 수 있니.'하고 소위 패싱하고 동기랑 통화했으니, 별 수 없는 일이다.
아무튼, 이등병 만큼이나 신뢰 받지 못하는게 소위인데, 그 때 마다 억울한 마음도 들었으나, 사실 초군반이다 뭐다 해서 실제로 견뎌야 하는 소위 생활은 채 1년도 되지 않고, 사실 막상 초임이라고 힘들게 하는 사람보다는 보호해주고 도와주는 사람이 더 많으니 이것은 엄살이기는 하다.
하지만, 내가 실무에서 만났던 미7함대 모 소령은 자기는 소위 때 매일 배에서 뛰어내리고 싶었다고 했으니, 비단 나만 느낀 바는 아니었을 것이다. 후후.
아무튼, 실제로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익숙해져서 편해지는 것도 있고, 주변 사람들도 더 많이 알게 되면서 좋아지는 것도 있고, 실제로 업무 능력이 향상되어서 더 잘 지낼 수 있는 것도 있으니, 초짜라서 힘들 땐 역시 버티는 것만이 답이다.
정말 답이 없어 탈출해야 할 곳이 아닌 다음에야, 시간이 지나면 뭐든 익숙은 해지기 마련이니까.
그러니까, 사실 하고 싶은 말은 내가 변호사라고 타이틀은 달고, 나이도 적지 않아서 사회 초년생 카드도 쓰기 힘든데, 전혀 안해본 새로운 업무들을 '전문성'을 가지고 처리해야 한다고 하니, 가끔은 버거울 때도 있어서, 내가 기운내려고 한 옛날 이야기를 끄집어 왔다.
얼른 짬을 쌓아서 어떤 주제를 봐도 당황스러워하지 않고, 무엇을 해도 여유 있게 대처가능하고 손 빨라서 결과물도 금방금방 내놓는 짬돌이가 되고 싶다. 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