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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새벽 Aug 01. 2022

변호사일기 : 몽글몽글한 기분

오랜만에 돌아간 학교

간만에 간단한 발제를 할 건이 있어서 정말 오랜만에 학부 모교를 방문하였다. 사실 지난 월요일 있었던 일인데 지나보내기 아쉬운 감흥이라 굳이 일기로 남긴다.


연희전문학교에서 나는 제법 오랜 시간을 보냈는데, 대부분 삶에서 실패를 기록한 공간인데 왜 아직도 그 곳이 그렇게나 반갑고 다정하게 다가오는지는 모를 일이다. 시간이 흘러서 모든 기억들이 미화되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지만 아마 그보다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가 선택해서 만난 친구들과 사귀었고 그들과 함께 헛되이 보낸 시간들이 그래도 즐거웠기 때문일 것이다. 그 교정에서 느꼈던 환희와 절망과 기쁨과 좌절 모두 어떻게 사라질 수 없는 20대의 기억이니까 말이다. 


통상 20대의 절반 정도를 학교에서 보내지만 이래 저래 학교를 떠나지 못한 나는 연희전문에서만 거의 8년 가량을 머물렀던 것 같다. 그래서 정말 내 20대의 거의 전부는 연희전문에서 보냈고, 그 나머지는 군대에서 보냈으니 가히 내 젊은날 자유로웠던 순간의 대부분은 교정에서 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후 대학원은 오히려 혜화에서 다녔으니 사실 학교와의 연은 이제 아주 옅어졌다고도 할 수 있는데, 새삼스레 학교를 찾아가 추억을 되짚는 것은 왠지 궁상스러운 것 같아 학교가 문득 가보고 싶어져도 굳이 찾지는 않았다. 아니 사실 아주 큰 결심을 앞두고 있을 때만 나는 윤동주 시비를 찾고는 했다. 정확히는 되도록 학교를 찾지는 않았다는 것이 되겠다. 


그런데 마침 업무차 들릴 일이 생겼으니 약간은 설레는 마음으로 학교를 찾았다. 마침 날은 무척 더웠으나 맑았고 동문을 지나 청송대를 따라 광복관까지 이어지는 조금은 달라졌으나 크게는 여전한 그 길을 오랜만에 걸었다. 이제 더 이상 학생이 아니므로 학교 여느 건물이든 자연스럽게 드나들고, 이 교정이 다 내 것 같은 생각이 들 때와 완전히 같을 수는 없었지만 여름의 뜨거운 교정이 반가웠다. 


그 여름과 그 겨울과 중간 중간의 봄과 가을 동안 우리는 응당 우리가 세상을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치열하되 젠척하지 말아야 한다고 다짐했다. 어떻게 생각하면 조금 웃기기도 하고 치기 어려 귀엽기도 하고 또 달리 보면 여전히 뜨겁고 싶어 아쉬운 마음인데, 그 교정에는 왠지 그 때의 내가 여전히 있을 것만 같아 새삼 하루하루 살아 나가는 직장인이 된 내가 그 때 나의 눈에는 어찌 비칠까 부끄러운 마음이.


하지만 괜히 읽지도 않을 책 한권 손에 끼고 햇살 좋은 어느 일요일 학교 안 아무 벤치에서나 마치 책이라도 읽다 잠시 쉬어가는 것처럼 가만히 누워서 눈 감고 쏟아지는 볕을 느끼던, 그래도 너무 자연스럽고 좋았던 그 공간이 소중하게 떠오르는 것은 소중한 감상이므로 더 이상 굳이 그 기억들을 거부하지 않으려고 한다.  


오늘의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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