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도달할 무언가보다 지금 이 순간을 바라보며
2013년 가을이었다. 전역을 하고 노량진역 2번 출구 투썸플레이스 아래 화단에 앉아 '타이탄의 도구들'을 읽었다. 화단 앞에는 흰색 비둘기가 찌끄래기를 주워 먹고 있었다. 노량진 역 밑 그림자 사이로 햇살이 스며들었고, 나는 책 속에서 무언가를 나의 미래를 발견했다. 팀 페리스처럼 유명한 사람들을 인터뷰하며 그들의 삶을 듣고, 그 노하우를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그런 뜨거운 상상을 했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나는 외향적이지도 않았고, 용기 있는 타입도 아니었다. 생계는 늘 벼랑 끝에 있었고, 현실은 실질적인 생존을 요구했다. 부풀었던 꿈은 잠시 잊어둔 채 경찰행정학과를 나왔으니 당연하게 공직자의 길을 택했다. 하루 4~5시간 잠을 자며 공부했고, 1년 4개월 만에 경찰에 합격했다. 스물다섯, 사회에 빠르게 진입한 셈이었다.
처음 경찰 생활은 활활 타올랐다. 상점을 타기 위해, 고과를 위해, 승진을 위해 열정을 쏟았다. 월급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었는데, 나는 이상할 만큼 열심히 살았다. 하지만 5년 차가 되었을 무렵, 모든 것이 익숙해지면서 어딘가 무뎌졌다. 늘 같은 민원, 반복되는 업무, 피로한 인간관계. 새로움은 점점 사라지고, 나는 점점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라는 질문을 품기 시작했다.
승진에 목을 매는 동료들을 보며 대단하다고 느끼면서도, '왜 그렇게까지 하지? 내가 좌지우지할 수 없는 영역인데...'라는 냉소가 따라왔다. 나는 누군가에게 아부하는 게 내키지 않았다. 그렇다고 업무 시간에 자기 계발을 하는 것도 마음이 불편했다. 나의 고지식함은 누군가에겐 비효율로 보였고, 스스로에겐 갈등이었다. 나는 그저 막연하게 더 주도적인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한 발 물러서기보다, 내 삶의 핸들을 내가 쥐고 싶었다.
그러던 중 19년 가을. 유튜브에서 주언규 PD, 그러니까 (구) 신사임당'을 보았다. 그가 인터뷰하던 방식, 그가 전하는 이야기들, 모든 게 내가 13년도 말에 막연히 꿈꾸던 것이었다. '아, 저건 내가 하려던 건데…' 괜한 자격지심이 나를 덮쳤고, 열등감은 마치 오래된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다녔다.
그렇게 흘러 또 6년이 흘러 2025년. 나는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결론에 닿아 있었다. 물론 다양한 시도는 했다. 돈을 들여 강의를 듣고, 장비를 사고, 콘텐츠를 기획했다. 경찰에 합격했으니 못할 것도 없다며 밀어붙인 적도 있었다. 하지만 끝까지 가지 못했다. 기대한 만큼 행복하지도 않았고, 돈을 벌지도 않았다. 새로움은 또 하나의 익숙함을 만들 뿐이었다. 시작이 빠르고 뜨거운 만큼 포기도 빠르게 식어 오래가지 못했다.
왜 그럴까. 생각했다. 처음엔 환경 탓을 했다. 직장의 특성상 출퇴근이 일정하지 않고, 건강 문제도 있었고, 인간관계도 고려해야 했다. 다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적절한 만족'. 지금 내가 누리는 이 안정감, 크게 부자는 아니지만 적당히 소비하고, 가끔은 와이프와 소맥 한잔에 소소한 외식도 할 수 있는 이 생활. 그것이 나의 갈망을 잠재우고 있었다.
책 <아주 작은 습관의 힘>을 읽고 루틴을 만들고 나아가보려 했고,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을 따라 하루 성과를 기록해보기도 했다. 내 힘으로는 부족한 거 같아. 그룹을 만들고 책임감을 느끼며 이끌어 가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건 어느새 '과제'처럼 느껴졌고, 성취라기보다 의무가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변화'를 원한다. 단지, 집착하지 않기로 했다. 본업에 충실하며 스며드는 변화를 추구하기로 했다. 변화는 서서히 일어나야 탈이 없다. 큰 꿈은 부푼 풍선처럼 작은 바늘에도 터진다는 걸 알았기에, 이제는 나만의 정원을 가꿔야겠다고 생각했다.
SNS 플랫폼에 목숨 걸 듯 달려들다가 정작 내 옆 사람과 대화하지 못하는 내가 되지 않으려 한다. 욕망보다 만족에 가까운 삶이라도, 그 안에서 나만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그 또한 괜찮은 삶이 아닐까. 결핍보단 의미를 찾고, 지금의 만족이 나태함이 아니라, 나를 위한 '쉼'이라는 걸 받아들일 때. 나를 짓누르는 죄의식을 씻어내고, 진짜로 쉴 수 있지 않을까? 그 쉼 속에서 다시 시작할 힘도 만들어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나는 이제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내 삶의 방향을 나아간다. 무언가를 이루지 않아도 괜찮다고,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괜찮다고. 그렇게 말할 수 있는 내가 되길 바란다.
무언갈 더(+) 하려고 하지 말고 덜(-)어내는 삶, 특별할 것 없는 하루가 행복한 삶이라는 걸 알고 만족할 때, 시련 또한 반갑게 맞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거센 봄비를 맞고 자란 민들레는 뿌리를 깊게 내리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