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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나는 필요한 말만 하는가?

by 심상

말은 힘이 있다.
말은 지배력이 있다.
그래서… 말은 무섭다.

두 달 전이었다.
늦은 저녁, 아내의 친구 부부와
조용한 식탁에 마주 앉았다.
몇 번 얼굴을 본 사이였지만, 그날은 달랐다.
소주잔 사이로 흘러나온 이야기는
예상보다 훨씬 깊고, 조심스러웠다.

그녀는 어두운 과거를 조심스럽게 꺼내놓았다.
그리고 이내, 지금 겪고 있는
부부 사이의 균열을 이야기했다.
말끝마다 망설임이 묻어났고,
나는 그 무게를 느꼈다.

나는 본래 사람 냄새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서로의 삶을 진심으로 나누는 대화를 귀하게 여긴다.
그래서 그 순간, 내 자세를 고치고 들었다.
이건 가벼운 수다가 아니라
한 사람의 삶, 감정, 상처가 있는 이야기였다.

진심을 끌어내기 위해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그 시절 그녀가 느꼈던 감정,
지금 남아 있는 상처,
그리고 남편의 침묵 뒤에 감춰진 불안까지.
그들이 미처 인식하지 못한
감정의 틈을 찾아, 조심스럽게 파고들었다.

"00 엄마가 느낀 그 감정, 충분히 이해해요."

"사실, 그날 바라셨던 건 따뜻한 한마디였잖아요. 늘 혼자 잘 해오셨던 분인데, 딱 그 순간만큼은 무너졌고, 누군가가 '괜찮아' 해주길 바라셨던 거죠."

"형도 사실, 아내가 힘들어하니까 더 불안했던 거잖아요. 도와주고 싶었는데, 방법을 몰라서 속상했던 거고요."

내 말에 그녀의 눈시울은 붉어졌고,
남편에게 듣고 싶었던 말을 내게 들었다고 했다.
남편은 한참을 말없이 앉아 있다가,
천천히 눈을 들어 아내를 보았다.
그 눈에는 미안함과 알 수 없는
두려움이 함께 섞여 있었다.
그리고 조용히 숨을 들이켜고 소주잔을 기울였다.
그날 이후, 생각보다 나는
그 부부에게 큰 신뢰를 얻은 듯했다.

그러다 어젯밤, 아내가 말했다.

"그 친구가 그러더라. 힘든 일이 생기면 당신 생각이 난대. 상담받고 싶다고."

아내는 내심 뿌듯해했지만,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오히려 겁이 났다.
그 순간, 내 안에서 오래된 장면들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아무렇지 않게 조언했던 수많은 날들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내 말이 누군가에게 방향이 될 수 있다는 걸.

"상대의 마음에 스며들기 시작한 말은, 어느 순간 믿음이 된다. 그리고 그 믿음은, 과하면 신념이 되어버린다."

상담을 요청해 오는 사람들은
이제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마치 정답처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 신뢰는 감사한 동시에, 묵직한 책임으로 돌아왔다.

이제 더 이상 수평관계가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목사와 신도,
의사와 환자,
선동자와 피선동자,
주도하는 자와 따르는 자.
무언가 균형이 기울어버린 느낌.

하지만 내가 내린 조언이 항상 옳았던 건 아니다.
같은 상황, 같은 감정이라고 해도
사람마다 감당하는 방식은 다르다.

내가 던진 해답을 따른 친구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선택 후에야
자신의 진짜 감정을 마주했다.
그리고 후회했다.
더 안타까운 건, 그 후회를 되돌리기 위해
다시 선택을 번복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결정은,
되돌릴수록 더 큰 파장을 만든다.

그래서 말은 반드시 신중해야 한다.

이건 내가 비난받기 싫어서가 아니다.
그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꽤나 잘,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욕 한마디 들으면 그만이지만,
그들은 고통을, 후회를, 책임을
짊어지고 살아가야 한다.

그 무게를 함께 질 수 없다면,
말은 가볍게 해서는 안 된다.

한편으로는 이것이 진짜 리더,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갖춰야 할 태도 아닐까? 생각했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말이 적은 이유.
그건 유창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말이 지닌 영향력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비전과 철학은 당당히 말하되,
의견과 조언은 신중하게.
내 인생의 선택은 과감하게 해도 되지만,
타인의 인생에 개입할 땐
차라리 침묵의 지지가 나을 때도 있다.

말로 사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사람은
그 말이 칼이 되어
되돌아올 수 있다는 걸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그 칼날은, 나 자신뿐 아니라
그 사람의 삶을 깊게 벨 수도 있으니까.

아무리 좋은 말도,
스스로 깨닫지 않으면
결국은 잔소리다.
내 말로 누군가가 뭔가를 ‘알게 된다' 해도,
스스로 깨우친데 아니면
텅 빈 깡통처럼
머릿속이 시끄럽기만 하다.

말의 무게를 알면
답을 주지 않는다.
질문을 통해
스스로 답을 찾게 도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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