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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나는 만족하며 살고 있는가?

지금, 후회 없는

by 심상

인생은 고통과 쾌락,

절망과 환희가 반복되는 긴 여정이다.


하지만 만약,

이 삶이 단 하나뿐인 선물이라 믿고,

나에게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삶의 파편이라 여긴다면,

나는 어제도, 내일도 아닌

‘지금’을 온전히 사랑하겠다.


언젠가 모든 걸 잃게 되더라도,

그때 후회하지 않을 만큼

지금 이 순간을 살아내겠다.


나의 후회는 언제나

‘지금’, ‘현재’라는 시간 속에서

‘하지 못한’ 것들에 머물러 있었다.


반대로 미련 없이 지나온 과거는,

충분히 할 만큼 했다고

스스로에게 인정했을 때

비로소 자유로웠다.


남의 기준이 아닌, 나만의 기준을 세운다.

그 기준은 때로는 흔들리고 바뀌기도 한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단 한 가지가 있다.

고민하고, 숙고하고, 시간을 들여

‘이만큼이면 됐다’고

스스로 말할 수 있는

‘만족’, 그리고 ‘인정’이다.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한 선택은

결국 후회라는 감정 속에 나를 가두곤 했다.


"내가 정말 그런가?"

"이제 나이가 찼나?"

"지금은 그럴 환경이 아니잖아?"


이런 외부의 잣대를 벗어나,

나는 내 마음에 묻는다.


"충분히 만족했니?"

"이쯤 그만둬도 후회 없겠니?"


그 물음에 ‘예스’라는 대답이 들리면,

담담히, 그러나 확고하게

나의 과거를 놓아준다.




나는 요즘 이렇게 생각하려고 한다.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을 만큼 살고 싶다."


이 말은 매 순간을 열정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중요한 순간에는

몰입해서 살고 싶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책을 읽는다면,

10분이라도 온전히 집중해서

주변을 잊고 몰입해,

책장을 덮었을 때 후회가 남지 않을 만큼.

그 책이 사라져도,

내 마음에 그 문장이 남아 있다면

그것은 내게 만족스러운 삶이다.


사람마다 자신만의

‘만족스러운 오늘’이 있다.

만약 아직 찾지 못했다면,

조금 더 부지런히 찾아야 한다.


그 만족은

거창하고 대단한 것이 아니라,

일상의 작은 틈에서

발견되었으면 한다.


나는 ‘만족스러운 오늘’을 찾았다.

그 순간은 아내와 아들과 함께하는

너무도 평범한 일상 속에 있다.


20대 시절,

비혼주의자였고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던 내가

이렇게 변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귀찮고 불편했던 존재가

이제는 애틋하고,

늘 가까이 있고 싶은 존재가 되었다.


아내와 아들과 살갗을 부딪히며

보내는 시간은

웃고 울고, 화내고 인내하고,

다투고 또 사랑하는

소란스러운 하루들이다.


문제도 많고, 변수도 많다.

하지만 멀리서 조망해 보면,

그 모든 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값지고

아름다운 선물이다.


너무도 평범하고 일상적인 풍경이라

종종 그 소중함을 잊고 살지만,

이 선물을 잃는다는 상상을 할 때면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시울이 붉어지며,

숨이 턱 막힌다.


그만큼, 이들은 이제

나와 분리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그래서 그들의 눈망울과

눈웃음, 향기, 몸짓을 더 느끼려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줄 수 있는 것을 아낌없이

주고 싶어진다.


하지만 이 선물은

영원히 내 곁에 머물 존재가 아니다.

언제든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릴 수 있다.


삶과 죽음은 종잇장 한 장보다

더 가까운 곳에 있다.


그래서 나는,

더 후회하지 않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 더 사랑하고,

더 표현하고,

더 깊이 보려 애쓴다.




이 생각은 어렴풋이

이미 내 안에 있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 후회를 이미 겪어본 사람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말한다.

"가족이라 해도 유대감이 없으면,

그저 남보다 못한 존재다.

차라리 없는 게 낫다고."


그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던 적 있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유대감이 깊지 않았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

뜻밖의 후회를 했다.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은,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사랑하려는 시도조차

해보지 않았다는 자책이었다.


지금도 문득 꿈이 현실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아버지가 현관문을 열고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걸어올 때.

그 기시감에 휩싸이다가

‘아, 아버지는 돌아가셨지’

하고 문득 꿈에서 깨어난다.


꿈속에서 보이는

아버지의 무표정한 얼굴 너머—

도움을 요청하듯

흔들리던 눈빛.

몸짓으로 내던

조용한 신호들.


그때는 무심하게 외면했던 것들이

이제는 꿈속에서 더 선명하게 다가온다.


돌이켜보면,

그때의 나는 미리 아버지를 포기했고,

무언가 함께 해보려는 시도조차

실망할 결과부터 단정 지었다.


그게 후회의 이유였다.

사라지고 나서야 깨닫는 것들—

그 무게는

생각보다 오래, 깊게 남는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는 ‘나’다.

하지만 나만 생각하며 살다 보면,

어느새 주변을 잃고

후회만 남는 순간이 찾아온다.


나를 소중히 여기는 만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할 때

비로소 만족은 찾아온다.


‘지금이 충분하다’고,

‘이만하면 됐다’고

스스로 말할 수 있는 하루.

해보고 싶은 걸 미루지 않고

시도해 보는 하루.

그런 날들이 쌓여

후회 없는 삶이 된다.


알면서도 하지 않는 것은,

결국 후회에게

먹이를 던져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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