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과 눈물이 일상이었던 X에게

침묵과 희생에 대하여

by 심상


X, 가끔은 궁금해. X는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방 안에 나뒹구는 술병들, 매일 술에 취한 그 사람 대신 밖으로 나가 돈을 벌어야 했던 시간들. 그게 어떤 기분이었을까. 이제 나도 자식을 키워보니 알겠어. 자식에게 다 해주지 못한다는 서글픔, 내가 부족하다는 자책감. 그 무게가 얼마나 무거웠을지 조금은 짐작이 돼. 그럼에도 살아야 했고, 나와 동생 때문에 삶을 붙들고 버텼겠지. 지금도 암과 수술로 지쳐 있으면서도 여전히 살아내려 애쓰고 있는 모습, 나는 알고 있어.


그동안 내 감정에 치우쳐 X의 감정을 잘 살펴주지 못해서 미안해. 어린 시절 그에게 늘 쩔쩔매던 X를 보며 ‘착하지만 배울 게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외면하고 원망했어. 그 판단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이제는 알아. 힘들어본 사람일수록 사랑하는 이들이 같은 길을 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는 걸 말이야. X 역시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고 싶었을 거야. 하지만 상황이란 게 쉽게 바뀌지 않았고, 순간의 선택이 이런 현실을 만들 줄은 아무도 몰랐겠지. 그저 그때그때 X도 행복을 바라는 선택을 하며 살아왔을 뿐일 거야.


삼십 대 중후반이 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보니 이제야 X의 마음을 조금은 알겠어. 나는 자꾸 생각해. X는 과연 어떤 사랑을 받으며 살아왔을까.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도, 그의 사랑도, 자식들의 사랑도… 온전히 받아본 적 없었던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면 내가 사랑을 주고 표현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감정을 숨기며 살아오다 보니 머리로는 알지만 몸이 따르지 않았어. 관성이 쌓였다고 해야 할까. 그래도 다행인 건, 내 자식에게 내가 하는 걸 보니 사랑을 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는 거야. 어쩌면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조차 모르는 게 가장 힘든 일이 아닐까 싶어.

그래서 나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연습해보려 해. 내 자식에게 하는 것처럼, X에게도 웃어주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안아주고, 끌어안고, 눈을 마주치고, 토닥여주고, 건강을 걱정하고, 밥은 잘 챙겨 먹는지 물어보는 거야.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사랑의 방식이야.

X는 늘 나를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다고 속상해하지. 하지만 괜찮아. 내 주변에는 나를 챙겨주는 사람이 많아 집사람, 장인장모, 자식까지 말이야. 이제 X는 X 자신을 먼저 챙겨도 돼. 죄책감 같은 건 내려놓고, X 스스로를 사랑해. 나는 옆에서 X를 도울께 스스로를 사랑하고 옆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도록 말이야.

그러니 오래오래 살아. X까지 떠난다면 내 삶이 너무 먹먹해질 것 같아. X가 이 세상에 없어도 살아가겠지만, 무뎌지고, 묵묵히 버티겠지만, 가끔씩 찾아올 공허와 어둠이 두려워. X가 무얼 하지 않아도, X는 그 존재만으로도 나에겐 빛이자 채움이야. 그러니 오래오래 살아줘. 함께 있어줘.


- 사랑하는 X에게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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