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속에서도 삶은 계속 쓰인다

삶을 이해하는 35번째 속성: 절망

by 심상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지만, 그것을 극복하는 것으로도 가득 차 있다.” – 헬렌 켈러



어린 시절, 제 세상은 어두운 방 한 칸과 뒤집어쓴 이불, 그리고 컴퓨터 한 대뿐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술에 취해 허공을 바라보며 천장의 누군가와 대화했고, 틈만 나면 부엌칼을 들고 죽겠다거나 죽이겠다고 소리쳤습니다. 저는 아버지에게 들킬까 손잡이 돌아가는 소리조차 신경 썼고, 고양이처럼 두 발끝으로 걸었습니다. 가장 역동적이어야 할 시기에, 제 마음을 지배한 것은 오직 절망이었습니다.

미래를 꿈꾸기보다 오늘을 어떻게 버틸까만 고민했습니다. 때로는 무력하게 몸을 내주며 포기했고, 정신을 차리면 온몸에 멍이 들었습니다. 어머니는 생계를 위해 집을 비웠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제도적 안전망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때의 우리 가족은 아버지가 만든 지옥 속에서 속절없이 끌려다녔습니다.

절망은 블랙홀과 같습니다. 빨주노초파남보로 다채롭게 피어날 감정을 빨아들여 모두 검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제 유일한 탈출구는 친구들이었습니다. 어떤 친구집에서는 더 오래 머물기 위해 친구 부모님에게 넉살을 부리고 심부름을 자처했습니다. 그것이 살아남기 위한 저만의 방식이었습니다.

그런 제가 지금은 긍정마인드를 갖추고, 글도 쓰고, 경찰이 되었으며, 자식을 낳아 평화로운 가정을 꾸렸습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첫째, 일상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절망에 빠지면 먹고 자고 씻는 기본적인 욕구마저 무너집니다. 저는 의식적으로 먹고, 자고, 운동하고, 관계를 이어갔습니다. 단순한 습관처럼 보이지만, 절망에 잠식되지 않기 위한 첫 번째 저항이었습니다.

둘째, 한 줄기 믿음을 붙잡았습니다. 언젠가 이 상황을 벗어날 기회가 올 것이라 믿었습니다. “아버지의 반대로만 살면 행복하게 살겠다.”는 다짐은 제 삶의 첫 나침반이 되었습니다. 고통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 것이라 되뇌며 인내했습니다. 물론 자책과 무력감은 늘 따라왔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제 안의 목소리는 기다리라고 속삭였습니다. 반드시 지나갈 것이고, 스스로를 비난하지 말고 버티라고 말이죠.

셋째, 절망의 본질을 이해했습니다. 원인을 알아가는 건 내적 안도감을 안겨줍니다. 절망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뇌의 작용과도 깊이 관련됩니다. 편도체가 과도하게 활성화되면 공포가 커지고, 전두엽과 해마의 기능은 약화됩니다. 이를 통해 깨달은 건 절망 속에서는 이직, 결혼, 이혼 같은 중요한 결정을 성급히 내려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판단력이 흐려진 상태에서는 작은 선택조차 인생을 왜곡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넷째, 작은 도전을 이어갔습니다. 절망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새로운 자극이 필요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환경을 바꾸는 것이지만, 쉽지 않다면 작은 변화라도 시도해야 합니다. SNS에 고민을 털어놓고 모르는 이의 위로를 받는 일,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는 일, 새로운 습관을 만드는 일. 이 작은 움직임들이 세상과 연결되었다는 감각을 되살려 주었습니다.

물론 저는 모든 것을 극복하지는 못했습니다. 지금도 마음속 한편에서 어둠은 그림자처럼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절망을 견디며 버틴 시간들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절망을 이겨낸 사람은 더 이상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절망을 견딘 사람만이 더 깊은 연민과 강인함을 품을 수 있습니다.

절망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절망은 우리를 무너뜨리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를 재구성합니다. 다시 재구성하기 위해 일상의 끈을 지키고, 무모한 선택을 미루며, 작은 도전으로 연결감을 되찾으십시오. 언젠가 빛이 올 것이라는 믿음을 놓지 마십시오. 그렇다면 절망은 더 이상 블랙홀이 아니라, 우리를 다른 차원으로 이끄는 또 다른 차원의 문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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