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시작, 조금씩 커져가는 불안감
(지이잉 ~ 지이잉 ~ )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아버지'인 것을 확인하고 조용히 휴대폰을 뒤집었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별거를 하신 이후 하루에 한 번꼴로 내게 전화를 했다. 전화를 할 때마다 욕을 하거나 술 사 먹을 돈이 없으니 돈 좀 부치라는 얘기일 것이 뻔했다.
(지이잉 ~ 지이잉 ~ ) 다시 한번 전화가 왔다. 짜증이 섞인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아 왜!! 자꾸 전화해, 지금 일 중이야" 그런데 40대 중후반으로 들리는 익숙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 , OO아 나 00이야, 아버지가 술을 많이 드셨나 보네, 옷 벗고 정좌에 누워계신다는 신고받고 출동 나왔는데 아들이 경찰이라고 하더라. 누구냐고 물어보니까 너라고 하네, 아이고 ~~ 웬만해서는 전화를 안 하려고 했는데, 집도 모른다고 하시고 이름도 말씀 안 해주셔서 전화했다. 아버지가 약주 좀 많이 하셨나 봐 ~ 우비로 가려 놓기는 했는데 어떻게 할까? 그냥 집에 모셔다드릴까? 아니면 네가 올래? "
아뿔싸, 순간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며 눈앞이 깜깜해졌다. 옷을 벗은 것은 아버지였지만 벌거벗은 기분이 드는 것은 다름 아닌 나였다. 그동안 아버지가 동네 술주정뱅이라는 것을 제발 회사가 알지 않기만을 바랐는데 터질 것이 터진 것이다. 당장 달려가겠다고 대답하고, 팀장님에게는 대충 이유를 둘러대고 서둘러 퇴근을 했다.
아파트 정문에 있는 정좌에 도착했다. 얼굴이 퉁퉁 붓고, 새하얗게 질려있는 아버지가 보였다.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다리를 가누지 못하는 아버지를 집에 모셨다. 동료들이 가고 나는 아버지에게 제발 아들을 생각한다면 이런 일이 없게 해달라고 간곡한 부탁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아버지의 알코올의존증 증세는 심해졌고, 특히 비가 오는 날이면 어딘지 모르겠다며 데리러 오라는 전화가 잦아지기 시작했다.
숨 막히는 아버지의 전화
(우르르 쾅쾅), 5월 초임에도 불구하고, 때 이른 장마철이 다가왔다. 며칠째 먹구름이 하늘을 검게 뒤덮었고, 천둥과 세찬 비가 세로로 파도를 치듯 내렸다.
퇴근 시간이 될 무렵,
(지이잉 ~ 지이잉 ~ ) 아버지로 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이제는 휴대폰 디스플레이 위로 '아버지'라는 글자가 보일 때마다 가슴 정중앙을 누가 주먹으로 짓누르고 있는 것 마냥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맡고 있을 때는 몰랐다.
혼자서 아버지를 맡는다는 것은 '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터질까' 조마조마하는 스트레스를 견뎌내는 것과 같았다.
별거를 하게 된 계기는 순전히 나의 제안 때문이었다. 아버지와 결혼한 후 29년 인생 동안 자식새끼 키우시느라 고생하신 어머니를 더 이상 고통받게 하고 싶지 않아 먼저 제안했던 것이다. 이제 나도 성인이고 동생도 안정된 직장이 있으니 아버지를 혼자 책임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연애한 번 제대로 못해 본 어머니의 황혼은 행복한 삶으로 가득하기를 바라며 말이다
그러나 나는 누구를 책임질 만큼 강한 사람이 아니었고, 힘에 부칠 때마다 이 피로 엮인 비루한 삶이 빨리 끝났으면 하는 나쁜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아버지의 전화를 받았다.
아들아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다.
비가 너무 많이 내린다.
우산도 없다. 너무 춥다 아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