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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스스로 박은 대 못(2)

by 심상

비가 많이 오니 술 먹고 돌아다니지 말라고 신신당부한 게 분명 3시간 전이었다. 어딘지 모르겠다는 아버지의 말을 듣는 순간, 단전부터 끌어 오르는 화를 참고 사무실을 나왔다. 턱이 어그러질 정도로 어금니를 꽉 물자 관자놀이가 아파졌다.


숨을 크게 한 번 들이쉬고 대답을 했다.


" 아.... 진짜 어딘데..., 지금 뭐 보여? 보이는 거 아무거나 말해봐 "


말을 흘려듣는 건지, 못 알아듣는 건지 아버지는 술에 취해 혀가 꼬인 체 이상한 말을 반복했다.


"몰라 ~ 몰라 ~ 사방이 하야코 높다. 아들아. 춥다. 아들아. 비가 너무 내린다. 다리에 히미 업어서 집카지 못 걷겠다. "


"알았어!!, 아 진짜!! 하 X 발!, 그냥 거기에 그대로 있어, 지금 갈 테니까"


나도 모르게 욕이 나왔다. 그냥 '화가 난다'라는 말로는 부족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에 세포 하나하나가 분노로 가득 찬 느낌, 이 지긋지긋한 혈연에 대한 분노가 세상에 대한 분노로까지 이어졌다.


" 어렸을 때는 그렇게 줘 패면서 괴롭히더니, 나이 들고서는 이렇게 심리적으로 괴롭히네, 진짜 언제쯤 아버지의 부정적인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벗어날 수는 있을까? 아무리 발버둥 쳐도 개미지옥 같은 삶이네 "라고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차에 시동을 켰다.


차량 와이퍼는 우두두둑 떨어지는 비를 쉴 새 없이 닦아 냈다. 30분쯤 돌아다녔을까, 아파트 1동과 2동 사이 설치된 야외 벤치에 아버지가 앉아있었다.


주황색 벤치 위에 우산은 그대로 놓여 있었고, 아버지는 낡은 트렁크 팬티 바람에 누런 메리야스를 입고 슬리퍼를 신은 채 비를 맞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화가 났다. 아버지에 대한 '역치' 낮을 데로 낮아져 버린 탓이다. 그의 몸으로부터 풍기는 술 냄새, 풀린 눈을 보기만 해도 풀 악셀을 밟은 것처럼 바로 화가 나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래전부터였다.


아버지가 나를 보자마자 "야 이놈의 새끼야 왜 이제 오냐, 춥다 집에 들어가자"라고 말하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뻔뻔히 집으로 들어가려는 그의 태도에 희미하게 남은 걱정이라는 감정마저 분노로 바뀌었다. 들고 있던 우산을 집어던지고,


시멘트 바닥에 부딪치며 올라오는 빗소리 사이로 세상에서 할 수 없는 저주란 저주를 아버지에게 퍼부었다. "그냥 좀 죽으라고 힘들게 하지 말고" 아버지도 나에게 욕을 퍼부었다. 아무도 듣지 못했다. 빗소리에 묻혀 남들이 보기엔 아버지와 나만의 속삭임과 같았을 것이다.


한바탕한 후 집에 들어와 마지막 쐐기의 말을 던지고 현관을 나왔다.


" oo 씨, 이 시간 이후로부터 당신을 존대하겠습니다. 저는 oo 씨 아들 아니고요. 그러니까 앞으로 오라 가라 하지 마시고요. 저도 앞으로 연락하지 않겠습니다. 연락해도 안 받을 거니까요. 연락하지 마시고요. 잘 계십시오. "


진짜 안 볼 생각은 아니었다. 아버지가 아들의 충격적인 태도에 정신을 차리고 아들에 대한 힘듦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기 바랐을 뿐이다. 그러나 그날이 아버지를 대면한 마지막 날이 될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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