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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스스로 박은 대 못(3)

by 심상

어버이날을 맞아 어머니를 모시고 강원도 여행을 갔다. 내심 어머니만 모시고 가면서 아버지에게 양심에 찔리기도 했지만 함께 가기에는 처음 만나 인사하는 낯선 사람보다 못한 부자관계가 되어, ‘에이 몰라, 엄마한테만 잘하면 되지, 할 만큼 했다.’라며 상황을 모른척했다.


강원도 여행 2일차에 어머니와 동생과 함께 메밀 막국수집에 들렀다. 사각형 모양의 두터운 방석을 깔고 앉아 물컵에 물을 따르며 ‘강원도 음식은 얼마나 맛있을까?’라며 가벼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지이잉 ~ 지이잉 ~ ) 음식이 나오기도 전에 여동생 휴대폰으로 벨이 울렸다. 아버지였다.


처음 전화가 울렸을 때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받지 말자는 표정으로 암묵적으로 동의를 했다. 모두 약간 미안함과 이 상황을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음식이 나올 무렵, 아버지가 다시 걸은 전화에 동생이 받았고, 어머니와 나는 죄지은 사람 마냥 숨을 죽인 채 아버지와 동생의 대화를 묵묵히 엿들었다.


“ 응 아빠.... 왜 ?.... 잘 지내고 있어? ”


“ 그래 잘 지내지, 근데 머리가 좀 아프다. ”


“ 그렇구나, 아빠는 요즘 뭐해...? ”


“ 술 먹고 다쳐서 아파서 요즘은 술도 잘 안 먹고 있네.. 집에는 언제쯤 올 거야? ”


“ 한번 시간 되면 가야지...... ”


“ 너네 오빠랑, 엄마랑은 연락하고 있어? ”


“ 연락한지 좀 됐지... ”


“ 그래 알았다. 집에 한번 와라 ”


“ 그래 알겠어... ”


동생은 혹시나 자신이 가족들과 연락을 많이 한다는 것을 아버지가 알면 서운해할 것 같아 거짓말을 했다. 아버지는 술에 취해 그날의 기억은 까맣게 잊은 듯, 나에게 전화를 해도 받지 않자 동생에게 나와 연락이 안 되는지 물은 듯했다.


아버지는 힘이 없는 목소리로 말을 했지만 평소 술을 먹다 못 먹을 정도로 힘이 빠져 며칠 동안 침대에 누워있는 모습을 자주 보았기에, 머리가 아프다는 말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다.


그렇게 4일이 흘렀다. 이른 저녁 무렵, 옅은 회색빛의 먹구름이 햇빛을 가려 평소보다 더 어둡고 고요한 날이었다.


(지이잉 ~, 지이잉 ~)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보통 어머니의 통화는 밥을 먹고 들어오는지 정도의 안부였지만 그날은 받자마자 잔잔하게 떨리는 어머니의 목소리에서 불편함을 느꼈다. 과거 중학생 시절 아버지가 술에 취해 반려묘 ‘네로’를 작살로 찍어죽인 적이 있었다. 오늘 친구네서 자고 오라며, 떨며 말하던 그날 어머니의 목소리... 그 비슷함에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 ... 아들아... 지금 어디니 ?... 경비실에서 전화가 왔다. "


" 왜...... 무슨 일 있어? "


" 아침마다 정좌로 나오던 아버지가 일주일째 나오질 않아서 주민들이 신고를 했데. 그래서 전화를 해봤는데 안 받는다. "


" 그래? 내가 전화해 볼게 "


(연결이 되지 않아 삐 소리 후 소리샘으로 연결되오며 통화료가 부과됩니다. )


아버지는 어머니와 떨어져 산 이후에 자식에게 어머니 모욕해도, 자신이 애타게 찾고 사랑하는 아내의 전화만큼은 무조건 받는 사람이었고, 혹여 가족들에게 전화가 올까 기다리며 휴대폰 배터리는 충전해놓고 꼭 손에 쥐고 다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몇 번 전화를 다시 걸어도 들리는 것은 익숙한 여성의 자동음성뿐이었다. 집으로 가던 중 차를 돌렸다. 제발 아니길 바라면서.. 묘한 불안함이 틀리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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