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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스스로 박은 대 못(4)

by 심상

아버지가 거주하는 아파트에 도착했다. 차에서 급하게 내려 여러 번 눌러도 의미가 없는 엘리베이터 버튼만 계속해서 눌러댔다.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거실의 형광등과 켜져 있는 42인치 티비를 확인하고 안도감이 들었다. 아버지는 보통 TV 맞은편에 소파 대신 놓인 작은 침대에 누워 티비를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빠! 나 왔어!” 외치며 침대로 향했을 때 계시지 않았다. 안도감이 불안함으로 바뀌자 손끝에서 더 심하게 땀이 나기 시작했다. 당황한 채로 2개의 베란다와 내방, 작은방, 그리고 큰 방을 모두 돌아다녔다.



담배를 피우다가 저혈압으로 쓰러진 적이 있던 베란다를 먼저 확인했지만 없었고, 장롱 빼고는 아무것도 없는 큰 방에서 자는 것이 편하다며 주무시기도 했던 큰 방 문을 열었지만 계시지 않았다. 작은방에도 없었다. 아버지를 발견한 곳은 다름 아닌 마지막으로 확인한 화장실이었다.



청소를 하지 않아 벽면이 누렇게 뜨고 차가운 타일 사이사이 때로 물든 화장실에 아버지가 허리와 목이 꺾인 채 앞으로 누워 계셨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신발장에서 신발을 벗고 고개를 들면 바로 보이는 화장실이었지만, 한 번에 알아보지 못했다.



사람은 죽으면 12시간 이내에 체온이 내려가면서 근육 경직이 일어나고 48시간 이내에 다시 근육이 풀린 후 부패가 시작된다. 또한 혈관 속의 혈액이 중력에 의해 사체의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시반 현상이 발생하는 데, 누워계신 아버지의 몸은 차가웠고, 근육이 풀린 상태였으며, 눈을 뜬 채로 눈 밑에 시반이 형성되고, 가까이 같을 때 약간의 부패된 냄새가 났었다. 딱 4일 전에 동생과의 마지막 통화 이후 문제가 생긴 것으로 예상할 수 있었다. 조용히 아버지 시신에 다가가 눈을 감겨드린 후 눈물이 나기도 전에 이 상황을 사건 현장처럼 대해야 했다.


동생과 어머니에게 올라오지 말고 아래에 있으라고 전화를 했고, 경찰과 119에 전화를 했다. 꼴에 경찰이라고 변사체로 발견된 아버지의 시신과 혹시 모를 사건에 연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인해 냉정함을 유지하며 현장을 보존했다. 경찰과 119가 왔고 아버지의 시신을 의료원으로 옮긴 후 급하게 장례를 치렀다.



이런 일이 있기까지, 가족 중에 아버지를 찾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버지는 늘 ‘짐’, ‘걱정’, ‘불안’, ‘사고’라는 명사와 형용사로, 마주하고 싶지 않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버지를 찾고 진심으로 걱정해 준 사람은 피 한 방울도 섞여있지 않은 술로 맺어진 인연들인 동네 술주정뱅이 사람들이었다.



나는 평소 그들을 아니꼽게 생각하고 있었다. 술을 참고 이겨내보려는 아버지에게 술을 더 먹이는 사람들, 눈이 항상 풀려있고, 허름한 옷을 입으며 이발을 하지 않아 몸에서 씻지 않은 냄새가 나는 사람들로 치부했다. 그들이 집에 올 때마다 내 쫓기 일쑤였고, ‘끼리끼리’라며 저런 사람들 만나지 말라고 화를 냈었다. 그러나 정작 아버지를 찾은 것은 그들이었고, 그들이 없었다면, 아버지를 그 차가운 타일 위에서 얼마나 더 내버려 두었을지 알 수가 없었다.


그들도 힘들고 고단한 인생을 술 한 잔에 서로가 서로를 위로해 주며 기댈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며칠 후 경찰서에서는 타살 혐의 없음, 단순 실족사로 마무리를 했다. 수사가 끝나고 아버지의 휴대폰을 받았다. 집에 와서 휴대폰을 충전하고 메시지를 확인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마지막까지 다 쓰지 못한 임시저장된 글이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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