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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스스로 박은 대 못(5)

by 심상


[ 임시메시지 내용 ] 아드라 그날은 미아하다, 아빠가 술에 취해서 모난 꼬를 보였구나. 느그 엄마가 보고십다. 통하 하ㄴ 번 해보고 십구나. ㄷ....


아버지는 그날을 잊지 않고 있었고 나 또한 평생 가슴에 잊지 못 할 대못을 박았다. 앞으로 평생 죄를 뉘우치며 살아야 하는 천륜의 대죄에 감옥에 갇혀버렸다.


아버지의 휴대폰에는 전화번호부, 통화목록, 메시지 등 저장된 기록이 전혀 없었다. 단 하나의 임시저장된 메시지뿐이었다. 언젠가부터 아버지는 휴대폰에서 모든 기록을 지웠다. 가끔 아버지에게 “왜? 자꾸 핸드폰 번호하고 기록을 지워? 누가 아빠 핸드폰 빌린 다음에 지우는 거야? 아빠가 기록 지우는 방법 알아? ”라고 물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가족 번호는 다 외웠다면서 “그냥 지웠다.”라고 덤덤하게 말을 했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모든 날들이 지금 와서는 무슨 준비를 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했다. 숫자버튼을 하나씩 꾹꾹 눌러대며 어머니와 아들에게 전화를 걸던 아버지의 모습이 그려졌다. 전화를 받지 않을 때마다 얼마나 씁쓸한 표정을 지었을지, 베란다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하염없이 바깥 풍경만 바라보던 아버지가 생각이 났다.


돌아가시는 그날에도 몇 시간 동안 살아계시면서 아등바등 전화 한 통이 간절하지 않았을까... 그 시간 동안 아버지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그 생각만 하면 글을 쓰는 지금도 하염없이 눈물이 흐른다.



아버지는 술 주정뱅이였고, 물려준 재산이 통장에 남아있는 312원이 다였다. 단 한 푼에 빚도 남겨주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었다. 신용카드를 쓰면 가족들에게 피해를 줄까 현금을 받으면 쪼개고 쪼개고 쓰던 사람.


아버지도 한때는 키가 180cm에 힘이 장사고 강한 사람이었다. 세월의 풍파는 아버지의 키뿐만 작게 만든 것이 아니라 휘청거리게 하고 무기력하게 만든다는 것을 그땐 미처 알지 못했다. 나이 서른 31살이 되고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아버지 생각이 난다.



30대 나이에도 작은 물방울 하나가 마음을 요동치게 만드는데 40대와 50대 시절에 풀리지 않아 느끼는 힘듦이 무엇일지 헤아릴 수가 없었다. 지금 내가 바라는 응원의 한마디, 칭찬의 한마디, 위로의 한마디를 듣고 싶은 만큼 아버지도 단지 그것을 바라지 않았을까...


나는 아버지가 원망(怨望)스럽다. 돌아가시고도 끝까지 아버지 곁을 떠나지 못하게 하는 아버지가 원망스럽다. 그러나 아버지를 원망(願望) 한다. 다시 한번 본다면, 남들에게는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칭찬과 배려를 원 없이 한 번쯤은 해드리고 싶다.


아버지 한 명도 일으켜 세우지 못한 아들이 지금, 누구에게 동기를 부여하겠다고 글을 쓰고 있다. 부끄러운 만큼 사는 동안 좋은 말을 전하고 사람들을 돕는 삶을 살겠다며 새로운 대못을 마음에 박았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시련이자, 사랑이자,
고통이자, 깨달음을 주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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