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찔: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어제 나왔던 양(위나라의 다른 명칭)나라 혜왕과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려주셨으면 합니다. 소문으로 들어 대강 알고는 있습니다만, 직접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아무리 지식인이 존중되는 시대라고는 하지만 한 나라의 왕을 일 지식인이 격하게 꾸짖는듯한 말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어찌 보면 선생님의 말씀은 지식인의 기개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지식인의 이미지는 나약한데 선생님의 모습은 대장부, 바로 그 모습이라 무척 인상적입니다.
■ 맹: 대장부라는 말도 내가 사용한 말이지요. 천하의 가장 넓은 집에 살고, 천하의 가장 바른 자리에 서며, 천하의 가장 큰 도를 행하여, 부유하고 귀함이 그의 뜻을 흐리지 못하고, 가난하고 천함이 그의 뜻을 바꾸게 하지 못하며, 어떤 위세와 권력도 굴복시키지 못하는 이가 바로 대장부라고 했지요. 요즘은 기껏 사내대장부 운운하며 씩씩하라고 권고할 때 쓰는 용어가 돼버렸지만 본뜻은 그게 아니지요. 하지만 그 말에도 내가 언급한 말의 일부분은 들어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대장부는 역시 지난번에 말했던 호연지기와 유관한 것입니다. 참고로 천하의 가장 넓은 집이라고 비유적으로 말한 것의 원 의미는 인(어짊)이고, 가장 바른 자리라고 말한 것은 의(올바름)이며, 가장 큰 도란 예(상황에 맞는 처신)입니다. 그러면 이제 양혜왕과의 대담을 자세히 말씀드려 볼까요?
■ 찔: 네.
■ 맹: 양혜왕은 나를 초치(불러들임)했을 때 많은 기대를 했을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일성을 꺼내더군요. "선생께서 먼 길을 오셨는데, 어떻게 우리나라를 도와 이롭게 해 주실는지요?" 저는 왕의 마음을 바로 잡아야 양나라의 국정이 바로 설 것이라 판단, 에두르지 않고 즉답했습니다. "왕께서는 왜 이롭게 할 것은 하문하십니까? 어떻게 하면 어질고 의롭게 할 수 있는지를 하문하셔야지요. 왕께서 어떻게 하면 내 나라를 이롭게 할까 궁리하시면 대부는 어떻게 하면 내 집안을 이롭게 할까 궁리할 것이며 사나 서인은 어떻게 하면 내게 이로울까를 궁리할 것입니다. 이처럼 위나 아래 모두가 서로 잇속을 탐하면 나라는 절로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이리되면 만승(승은 수레의 단위)의 나라에선 천승의 집안이 그 군주를 죽이게 될 것이고, 천승의 나라에선 백승의 집안이 그 군주를 죽이게 될 것입니다. 만승의 나라에서 천승의 가세를 유지하는 것이 결코 작은 부가 아니고 천승 나라에서 백승의 가세를 유지하는 것이 결코 작은 부가 아니거늘 군주가 인의를 뒤로하고 잇속을 앞세우면 아랫사람들은 자신의 부에 만족지 못하고 윗사람의 부를 넘보게 돼 그런 하극상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군주가 인의를 앞세운다면 아랫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이에 동화되어 윗사람의 부를 넘보거나 지위를 탐하지 않게 됩니다. 나라는 자연스럽게 잘 다스려질 것입니다. 저는 여태껏 어진 사람이 자신의 부모를 방기(내버림)했다거나 의로운 사람이 자신의 군주를 내쳤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왕께서는 절대 잇속을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인의(어질고 의로움)만을 말씀하셔야 합니다." 양혜왕은 나의 도도(거침이 없음)한 언설에 눌렸는지 묵묵히 침묵만 지키더군요. 어쩌면 양혜왕으로선 나를 후한 대접으로 초치했고 그 이유는 뭔가 도움을 얻으려고 했던 것이니, 왕의 질문은 당연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마 양혜왕이 기대했던 것은 부국강병의 묘책, 예컨대 진나라에서 실시했던 상앙의 변법이나 초나라에서 실시했던 오기의 부곡 강병책 같은 것이었을 것입니다. 나도 모르는 바 아닙니다. 나는 상대의 말을 잘 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내가 한 말은 왕이 추구한 이로움과 동떨어진 말이었습니다. 아마도 양혜왕은 나의 논리에 밀려 할 말을 잊은 것도 있지만 우활(현실감이 없음)한 답변에 실망해 할 말을 잊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나의 말을 곱씹었다면 나의 우활한듯 한 답변이 실은 그가 추구한 잇속과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대의(큰 올바름)는 대리(큰 이익)와 상통하는 법이죠. 거부들 일수록 정도와 원칙을 중시하지 않던가요? 그러나 양혜왕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습니다. 양혜왕과의 첫 대면은 이렇게 어색하게 끝났지요.
■ 찔: 그렇군요. 그러면 이후엔 양혜왕을 만나지 않으셨습니까?
■ 맹: 그렇진 않죠. 이후도 만났죠.
■ 찔: 그 이후 이야기를 계속 좀 들려주실까요?
■ 맹: 한 번은 양혜왕이 자신의 별궁으로 나를 초대했습니다. 갔더니 그는 호수를 그윽이 바라보고 있더군요. 마침 호수에는 기러기들이 내려와 앉아 있고 주변 숲에는 사슴인지 노루인지가 뛰놀고 있었습니다. 무척 흐뭇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보던 왕이 다소 뜬금없이 이런 질문을 하더군요. "이른바 현군(어진 임금)이라고 하는 이들도 이런 것을 즐기는지요?" 자신의 즐거움이 정당한 것인지 그렇지 못한 것인지를 확인해보고 싶은 심정이었던 같습니다. 내가 말했죠. "현군이 된 이후라야 이런 것을 진정으로 즐길 수 있는 것이니, 그렇지 못한 이는 비록 이런 것이 있다 해도 즐길 수 없습니다. 시(후대의 시경)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영대(문왕의 별궁)를 짓기 시작했네 / 서두르지 말라고 권했으나 / 백성들이 자식처럼 일하여 / 하루가 못되어 완성됐네 / 영유(영대에 있는 동산)에 계시니 / 사슴들이 편히 쉬고 있네 / 사슴들 털빛 윤택하고 / 흰 새들 유유히 나네 / 영소(영대에 있는 호수)에 계시니 / 물고기 가득히 뛰어오르네' 문왕께서 백성을 동원하여 별궁과 호수를 만들었으나 백성들은 외려 기뻐하며 그 별궁을 영대(신령스러운 별궁)라 부르고 그 호수를 영소(신령스러운 호수)라 부르며 그곳에 있는 사슴이나 새 물고기 등도 좋아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겠습니까? 바로 백성과 함께 즐거움을 나누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탕서(서경의 일부)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이 해(하나라 걸 임금. 하나라의 걸 임금은 자신을 해에 비유했음)는 언제 없어지나 / 너 죽고 나 죽자' 백성들이 군주를 원망하여 이런 지경까지 간다면 군주에게 비록 훌륭한 별궁과 아름다운 호수 멋진 새와 동물들이 있다한들 어찌 능히 저 홀로 즐길 수 있겠습니까?" 질문을 했던 왕은 나의 말에 기가 눌렸는지 이번에도 묵묵부답이더군요.
■ 찔: 선생님의 논리 정연한 언변에 어떻게 양혜왕이 응대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선생님 아무리 옳은 얘기도 상대의 입장을 헤아려가며 얘기해야 스며드는 것인데, 기분 좋게 호수의 경치와 그곳의 조수(날짐승과 길짐승)를 바라보고 있는 임금한테 좀 과하게 말씀하신 것 아니었나 싶네요.
■ 맹: 그런가요? 하지만 내가 양나라에 초치된 이상 밥값은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에두르지 않고 말한 것뿐입니다.
■ 찔: 그래도 좀 아쉬운 감이...(웃음). 이후에도 양혜왕을 만나셨죠?
■ 맹: 당연하죠. 계속 이야기를 해볼까요?
■ 찔: 아닙니다, 선생님. 오늘은 여기서 줄이면 어떨까 싶습니다. 양혜왕에게 하셨던 도도한 말씀의 기운이 저에게도 전해져 기가 많이 눌려서요(웃음). 좀 정신을 차린 다음 선생님의 말씀을 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 힘들 것 같습니다.
■ 맹: 그 정도예요? 젊은 분이 너무 기가 약하시군요. 보양식이나 약이라도 좀 드세요. 서(후대의 서경)에 약에 관한 말이 있죠. "약이란 모름지기 약간의 어지러움이 들 정도로 사용해야, 이런 어지러움을 명현 현상이라고 말하죠, 효과가 있다." 쓴 말, 충고라는 것이 바로 그런 것과 같은 것입니다. 충고란 써야 그 가치와 효과가 있는 법입니다. 내가 왜 양혜왕에게 에둘러 말하지 않고 즉답을 했는지 아시겠죠? 그건 그렇고 어쨌든 처방을 잘 받아 약 좀 들어 보세요.
■ 찔: 네, 선생님(웃음). 감사합니다. 그럼 내일 또 뵙겠습니다.
■ 맹: 네. 편히 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