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와의 대화

2화

by 찔레꽃

■ 찔: 선생님, 안녕하셨어요? 잠은 잘 주무셨는지요? 저는 간밤에 커피를 한 잔 마셨더니 영 잠이 안 와 한참 고생했습니다.


■ 맹: 인터뷰하시는 분은 카페인에 취약하신가 보군요? 섭생에 좀 더 신경을 써야겠네요. 내 일찍이 야기(밤 사이의 기운)에 대해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낮에 오감을 통하여 온갖 정보를 받아들입니다. 그렇기에 밤이 되면 그 정보들로 인하여 사념(고민, 잡념)에 휩싸이죠. 밤 사이 사념에 휩싸이면 야기가 보존되지 못합니다. 이런 이는 아침에 일어나면 눈이 흐리멍덩하죠. 반면에 사념을 떨구고 야기를 보존한 이는 아침에 그 눈이 초롱초롱하죠. 야기를 보존하는 방법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편안히 수면을 취하면 됩니다. 편안히 수면을 취하려면 일찍 잠자리에 드는 것이 좋고, 일찍 잠자리에 들려면 저녁 식사 전 적당히 운동을 해야 합니다. 식사는 되도록 가볍게 하고요. 밤늦게 식사하고 오락을 즐기거나 일을 하다 잠자리에 드는 것은 야기를 해치는 것이고, 이는 자신의 생명을 갉아먹는 것입니다.


■ 찔: 저도 선생님의 생각에 십분 공감합니다. 다만 의지가 약해서 매번 실패합니다.


■ 맹: 쉬운 일은 아니죠. 제가 주장한 호연지기(지극히 넓고 큰 기운)에 대해선 들어봤겠죠?


■ 찔: 여부가 있겠습니까!


■ 맹: 호연지기를 기르기 위해선 늘 마음속에 꺼림칙한 것이 남지 않도록 생각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호연지기란 어쩌다 한 두 번 옳은 마음을 먹고 행동했다 하여 길러지는 것이 아닙니다. 꾸준한 의(올바름)의 집적(모아서 쌓임)이 있을 때 가능한 것이지요. 호연지기가 길러지면 내 앞에 수천수만의 대항자가 있다 해도 절대 흔들리지 않습니다. 양(위나라의 다른 명칭)의 혜왕을 만나 그의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을 격하게 질타했던 것도 내게 호연지기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지요. 혹자는 우리 시대의 지식인을 우대하는 풍조 때문에 그런 일이 가능했다고 하지만, 물론 그런 면도 일부분 있긴 하죠, 호연지기가 없으면 어려운 일입니다. 미안한 말이지만 인터뷰하시는 분은 이 호연지기가 부족한 듯합니다. 의지의 부족은 곧바로 호연지기의 부족과 연관되기 때문이죠.


■ 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기왕에 호연지기에 대해 말씀하셨으니 이에 대해 조금 더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요즘 청소년들은 호연지기가 없습니다. 장래 희망을 물어보면 공무원이나 회사원이라고 대답하는 청소년들이 많습니다.


■ 맹: 호연지기와 장래 희망은 사실 관련이 없습니다. 호연지기란 내면의 도덕적 용기라고 할 수 있는 것 이거든요. 공무원이나 회사원이 호연지기를 갖는다면 나라와 회사는 잘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호연지기와 장래 희망을 관련지어 말하는 것은 호연지기가 있으면 장래 희망도 거창할 것이라는 가정을 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군요.


■ 찔: 말씀을 듣고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공무원이나 회사원이 되려는 청소년들의 희망을 과소평가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대신 어떤 자리에 있든지 호연지기를 길러야 된다고 주문해야겠습니다.


■ 맹: 그렇죠. 그게 올바른 사리(일의 이치)입니다. 호연지기에 대해 좀 더 말해 볼까요?


■ 찔: 네.


■ 맹: 호연지기는 제자인 공손추가 나의 장점을 물은데서 나온 말입니다. 나는 말[언어]을 잘 살필 줄 하는 장점이 있다고 말하면서 이와 관련하여 호연지기를 언급했지요. 순백지에 물감을 칠하면 그 물감의 색상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그러나 색상지에 물감을 칠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말을 잘 살필 줄 알려면 내 마음이 순백지와 같은 상태가 되어야 합니다. 그 순백지와 같은 상태의 마음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호연지기입니다. 호연지기는 올바른 사리 판단과 거기에 따른 의로운 용기를 갖출 때 생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저절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고 기를 때 가능한 것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집적될 때 가능한 것이지요. 나는 이런 호연지기가 충만하기에 상대의 말 이면에 있는 본질을 잘 파악합니다. 최근에 법륜 스님이 「즉문즉설」을 통해 질문자에게 답변하는 것을 보니 이 분도 나처럼 호연지기를 잘 길렀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상대방 말 이면에 있는 본질을 잘 파악하여 거기에 맞는 답을 하더군요.


■ 찔: 스님이라면 이단이라고 꺼리실 것 같은데….


■ 맹: 물론 그분의 출가는 인정하기 어렵죠. 그러나 내가 묵자를 배격하지만 그의 사상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라는 말을 한 것처럼 법륜 스님의 출가는 인정할 수 없지만 그분의 말조차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공자께서는 일찍이 말할 만한 상대를 만났는데 말을 하지 않으면 그것은 사람을 잃어버리는 것이란 말을 한 적이 있는데, 바로 법륜 스님에 해당되는 경우라고 하겠습니다. 통찰력이 있는데 그 점을 칭찬해 주지 않는다면 이는 그 사람을 업수이 여기는 행위가 아니겠습니까?


■ 찔: 그렇군요. 전 선생님께서 워낙 이단에 대해서는 강경한 모습을 보이셔서….


■ 맹: 허허. 그렇게 보셨다니 제게도 일부 잘못이 있는 것 같군요.


■ 찔: 아, 아닙니다(당황한 모습). 제가 선생님을 곡해한 것이 잘못이지, 어찌 선생님께 허물이 있겠습니까? 선생님,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했으면 합니다. 죄송합니다만, 너무 졸려서….


■ 맹: 그러세요. 그러나 낮잠은 그리 오래 즐길 것이 못됩니다. 경험해보신 적도 있겠지만, 낮잠을 길게 자면 외려 몸이 더 피곤합니다. 공자께서 제자 재여의 낮잠을 호되게 질책하신 것은 잘 알고 계시죠? 썩은 흙으로 어떻게 담장에 맥칠을 할 수 있겠느냐고 말씀하셨죠. 혹자는 재여의 낮잠을 한낮의 부부 교합(성행위) 이후의 낮잠으로 보고 꾸짖었다고도 하는데, 뭐 있을 수 있는 일이긴 합니다만 좀 지나친 추측이란 생각이 듭니다. 어쨌거나 낮잠을 잔다는 행위에 대해 공자께서는 좋은 인상을 갖고 계시지 않았던 것은 분명합니다. 시중(상황에 맞음)을 중시하셨던 분인 만큼 활동하는 시간 대에 잠을 자는 행위는 그리 올바른 행위가 아니라고 보신 거겠지요. 장자가 한낮의 꿈속에서 나비가 되어 노닐다가 깨어 자신이 나비인지 나비가 자신인지 모호하더라는 얘기를 하며 자신의 철학을 얘기한 적이 있는데, 공자께는 어림도 없는 이야기지요(웃음). 이런, 이야기가 엉뚱한 데로 흘렀군요. 자, 어서 들어가서 쉬세요.


■ 찔: 감사합니다. 피곤함 때문에 생각지 않은 좋은 말씀을 더 듣게 되어 기쁩니다. 선생님도 편히 쉬십시요.


■ 맹: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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