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 찔: 선생님, 안녕하세요? 식사는 잘하셨는지요?
■ 맹: 네, 잘했습니다. 인터뷰하시는 분은 그렇지 못하신가 보군요. 이런 질문을 하는 걸 보니.
■ 찔: 네, 제가 입이 좀 짧습니다. (미소) 문득 선생님은 어떤 음식을 좋아하시는지 궁금하군요.
■ 맹: 음식을 특별히 가리는 건 없습니다. 물고기 요리도 좋아하고 곰 발바닥 요리도 좋아합니다. 많은 이들이 무엇을 먹으면 좋을까 관심이 많은데 정작 자신의 마음을 위해서는 얼마나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 찔: 그 말씀을 들으니 갑자기 뜨끔해지는군요. 일찍이 선생님께선 소체(입과 몸)의 충족을 추구하는 자는 소인이 고 대체(인의)의 충족을 추구하는 자는 대인이라고 하셨는데, 저는 본의 아니게 대인을 추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웃음)
■ 맹: 하하하. 뭐 그렇게 봐도 좋습니다. 그러나 섭생을 너무 소홀히 하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습니다. 기갈(굶주림과 목마름)이 심하면 아무것이나 먹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몸도 상할뿐더러 마음도 상하게 되지요. 내가 대체를 강조하는 것은 사람들이 지나치게 소체에 얽매이는 것을 경계한 것이지 결코 소홀히 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 찔: 네, 잘 알겠습니다. 선생님, 오늘은 수양에 관한 말씀을 들려주셨으면 합니다. 어제 교육에 관한 말씀을 해주셨는데 교육과 수양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 맹: 그렇죠. 교육과 수양은 밀접한 관련이 있지요. 우리 유학의 핵심을 간결히 정리하면 수기치인(자신을 수양하고 타인을 다스림)이라고 할 수 있는 만큼, 수양은 우리 유학에서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죠. 사람들이 흔히 "천하 국가를 경영하려면…" 운운하는데 천하 국가를 운영하려면 먼저 자신의 나라를 잘 운영해야 할 것이고 나라를 잘 운영하려면 집안부터 잘 다스려야 할 것이며 집안을 잘 다스리려면 먼저 자신의 몸을 잘 다스려야 할 것입니다. 수양은 천하 국가 운영의 토대입니다.
■ 찔: 참으로 정연한 논리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은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수기의 기는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천하 국가 운영과 관련지으면 왕이나 장차 왕이 될 사람을 가리키는 것 같은데, 그 이외의 사람들도 해당이 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 맹: 그건 문자에만 집착한 데서 빚어진 오해입니다. 당연히 그 이외의 사람들도 해당되지요. 천하 국가를 왕 혹은 왕이 될 사람 혼자서 운영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 찔: 그렇군요. 제가 너무 문자에만 집착하여 그릇 생각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왕이나 왕이 될 사람 이외의 이들과 관련지어 수양에 관한 말씀을 먼저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 맹: 정치 일선에 나서려면 윗사람의 신뢰를 얻어야 할 것입니다. 윗사람의 신뢰를 얻는데 방법이 있습니다. 친구에게 신뢰를 얻으면 됩니다. 친구에게 신뢰를 얻는데 방법이 있습니다. 부모를 기쁘게 해 드리면 됩니다. 부모를 기쁘게 해 드리는데 방법이 있습니다. 자신을 돌이켜 반성해 보면 됩니다. 반성을 하는데 방법이 있습니다. 무엇이 선이고 불선인지 밝게 살펴보면 됩니다. 선과 불선을 밝게 살펴 선의 길로 매진하는 것을 성신(자신을 정성스럽게 수양함)이라고 합니다. 성신은 부모와 친구와 윗사람을 움직이는 동력입니다.
■ 찔: 선생님, 이 역시 정연한 논리입니다만, 너무 정연해서 단선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흡사, 이런 비유를 들어서 죄송합니다만, 원숭이 똥구멍을 빨개, 빨개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 길으면 기차, 기차는 빨라, 빠르면 비행기, 비행기는 높아, 높으면 하늘, 하늘은 넓어, 넓으면 이 세상 하는 논리와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즉 빨간 것이 왜 꼭 사과로 연결되고 맛있는 것은 왜 꼭 바나나로 연결되는 것인지 그 타당성이 모호한 것처럼 윗사람에게 신뢰받는 것이 왜 꼭 친구에게 신뢰받는 것으로 연결되고 친구에게 신뢰받는 것이 왜 꼭 부모를 기쁘게 하는 것으로 연결되고 부모를 기쁘게 하는 것이 왜 꼭 반성으로 연결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수양의 타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억지로 갖다 붙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반성을 하는데 선과 불선을 명찰(밝게 살핌)해야 한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 맹: 지난번에도 나의 논리가 단선적이라고 비판했던 것 같은데…. 일견 나의 논리가 단선적이고 억지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 같긴 하군요. 그러나 이는 내가 부가 설명을 하지 않아서 생긴 오해라고 봐요. 윗사람에게 신뢰를 얻기 위해 친구에게 신뢰를 얻어야 한다고 했는데, 얼핏 보면, 무리한 연결 같지만 잘 생각해 보세요. 사람은 유유상종이라고 비슷한 이들끼리 모이기 마련이죠. 어떤 사람을 등용하려고 하는데 그 사람을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은 그가 어떤 이들과 어울리는가를 살펴보는 거예요. 그리고 그가 그들 사이에서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느냐까지 살펴보면 그에 대한 검증은 끝난 겁니다. 그러기에 친구 사이에 신뢰를 얻으면 자연스럽게 자신을 등용하려는 사람에게도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한 겁니다. 친구에게 신뢰를 얻으려면 부모를 기쁘게 해야 한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친구는 자신과 비슷한 또래이다 보니 부모는 자신의 부모이기도 하지만 친구의 부모이기도 한 셈입니다. 그렇다면 부모를 기쁘게 해 드리는 사람이 친구에게 신뢰를 얻을까요, 그렇지 못한 사람이 신뢰를 얻을까요? 답은 자명하지 않겠습니까? 부모를 기쁘게 해 드리는데 자신을 반성하거나 자신을 반성하는데 선과 불선의 명찰이 필요하다는 것은 이의가 없을 것 같으니 더 말 안 해도 될 것 같군요. 어떤가요, 조금 이해가 되는지요?
■ 찔: 네, 그렇게 부가 설명해주시니 명확히 이해가 됩니다. 감사합니다. (웃음)
■ 맹: 뭐, 감사까지…. (웃음) 내 논리가 단선적인 면이 없잖아 있다는 것은 나도 인정합니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부가 설명을 하지 않았기에 일으키는 오해도 없잖아 있습니다. 그런 경우엔 꼭 질문을 해서, 지금처럼, 오해를 풀었으면 좋겠어요.
■ 찔: 넹, 선생님!
■ 맹: 넹, 선생님? 그건 무슨 말이죠?
■ 찔: 아, 아닙니다. 말이 헛나왔습니다. (약간 당황) 선생님, 저는 수양과 관련해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부끄러움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맹: 부끄러움은 매우 중요한 것이지요. 부끄러움이 없는 것을 부끄러워한다면 부끄러움이 없게 될 것입니다. 부끄러움은 자신의 부족에 대한 겸허한 수용입니다. 사람이 완벽한 존재가 아닌데 어떻게 부족함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한 부족함을 기꺼이 수용하고 고쳐 나간다면 점점 더 완벽한 존재, 다시 말하면, 부끄러움이 없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부족함에 대한 겸허한 수용이 없으면, 즉 부끄러움이 없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으면 그는 사람의 길에서 벗어나 금수의 길로 들어섭니다.
■ 찔: 요즘 흔히 듣는 말로 "사람들이 염치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말인데요, 왜 이런 현상이 생겼다고 보시는지요?
■ 맹: 그건 법 만능주의가 빚어낸 결과 아닐까요? 일찍이 공자께서도 법으로만 다스리면 사람들이 부끄러움을 모르게 된다란 말씀을 하신 적이 있지요. 법은 최후의 보루랄까, 마지막 한계선이 돼야 하는데 지금은 처음부터 법을 들이대니 그런 현상이 생긴 것 아닐까 싶군요.
■ 찔: 일리 있는 말씀 같습니다. 선생님, 수양론은 아무래도 내용이 방대해서 오늘 하루로 다 듣기에는 벅찰 듯싶습니다. 교육과 관련지어 수양에 관한 말씀을 들으려 했는데, 정작 그 말씀은 듣지 못했는데도, 이렇게 많은 말씀을 해주셨으니 말입니다.
■ 맹: 그렇군요. 그러나 교육과 직접 연관을 짓지 않았다 하여 교육과 수양에 관한 말을 안 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주로 정치와 관련지어 말을 하긴 했지만 다 교육과 관련이 있는 것이니까요.
■ 찔: 그렇군요. 어쨌든, 선생님 오늘을 이만 줄이고 내일 또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 맹: 그러세요. 약은 잘 드시고 있나요? 약 맛은….
■ 찔: 잘 먹고 있습니다. 아찔할 정도는 아니지만 효과가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맛은 그다지…. (웃음)
■ 맹: 하하하. 내일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