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 찔: 선생님 안녕하셨습니까? 오늘은 선생님의 교육관에 대해서 듣고자 합니다. 지난번 성선(사람의 본성은 선하다) 말씀에서도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셨기 때문에….
■ 맹: 그러지요. 내 일찍이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을 말한 적이 있습니다. 위로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아래로 타인에게 부끄러울 것이 없는 것, 부모 형제간에 아무런 변고가 없는 것, 천하의 영재를 얻어 교육하는 것을 들었지요. 교육은 정말 보람된 일이자 즐거운 일입니다.
■ 찔: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천하의 영재를 얻어 교육하는 것"은 교육을 담당하는 이들에게 회자되는 문구 중의 하나입니다.
■ 맹: 그런가요?
■ 찔: 선생님은 보편 교육보다는 수월(영재) 교육을 선호하셨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 맹: 내 말이 그렇게 비칠 수도 있겠군요. 천하의 영재란 말을 사용했으니. 그러나 그것이 내가 수월 교육을 선호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단지 교육의 즐거움을 말할 때 그 대상을 영재로 언급한 것뿐이지요. 나는 보편 교육을 강조했습니다. 앞서도 말했습니다만 백성들을 경제적으로 안정시킨 다음에는 반드시 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강조했지요.
■ 찔: 그러셨지요. 제가 너무 문구 그 자체에만 집착했나 봅니다. 그런데 선생님, 교육의 가장 기본적인 출발점은 가정입니다. 가정에서의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 맹: 그렇죠. 가정은 품성의 원형을 만드는 공간이자 사회화 공간이기도 하기 때문에 가정교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죠. 가정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의 모범적인 행동입니다. 지난번 시(후대의 시경)에서 인용했던 구절을 다시 언급하고 싶군요. '아내에게 모범을 보여 / 형제에게 이르고 / 집안과 나라에까지 이르게 하네' 란 구절 생각나죠? 그때는 이 시를 가까운 곳에 베푸는 마음을 멀리까지 미치게 하는 것을 일컫는 의미로 사용했습니다만, 교육의 방법론적 측면으로 살펴볼 수 있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아내에게 모범을 보인다는 말은 자식들에게 모범을 보인다는 말도 내포된 의미 아니겠습니까? 시에서는 모범을 보이는 이를 가장, 즉 아버지로만 한정했지만 가정교육에 있어선 당연히 어머니도 포함돼야 하겠지요.
■ 찔: 저도 선생님의 의견에 공감합니다. 부모가 '바담 풍'하면서 자녀에게 '바람 풍' 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이니까요.
■ 맹: 그렇죠. 그리고 가정에서의 교육은 '엄격' 보다는 '자애로움'이 중요합니다. 엄격은 자칫 책망으로 이어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책망, 즉 잘하라고 꾸짖거나 비판하는 것은 부모와 자식 간의 감정을 상하게 합니다. 부모와 자식 간의 감정이 상하면 어떤 좋은 가르침도 소용이 없습니다. 부모와 자식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서로를 지켜보는 입장에 있습니다. 부모는 완벽한 인간이 아닙니다. 허물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자식도 그것을 압니다. 그런 상태에서 부모가 자식에게 '감 놔라 , 배 놔라' 하면 자식은 겉으로는 복종하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본인도 잘 못하면서…'이런 마음을 품게 됩니다. 이런 마음을 품는 자식에게 책망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사이만 멀어질 뿐이지요. 책망은 친구 간에 소용되는 덕목이지, 부모와 자식 간에 소용되는 덕목이 아닙니다.
■ 찔: 정말 깊이 공감되는 말씀입니다. 저는 유학의 교육하면 엄격만을 생각했는데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그건 오해였던 것 같습니다.
■ 맹: 부모는 모범을 보이되 책망하지 않는다, 이것이 가정교육의 제1 원칙입니다.
■ 찔: 부모가 자식을 직접 가르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맹: 권하지 않습니다. 앞서 말한 대로 서로의 감정을 상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르침에는 일정한 목표와 가치가 있기에 책망이라는 행위가 자연스럽게 따라붙지 않습니까? 예부터 '자식은 서로 바꿔서 가르쳐야 한다'라고 했는데, 다 이유가 있었던 겁니다.
■ 찔: 선생님, 이제 '가정'이라는 수식어를 떼고 '교육' 그 자체에 대한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 맹: 그러시죠.
■ 찔: 교육하면 교육의 목표, 교육의 내용, 교육의 방법 세 가지가 필수적으로 갖춰줘야 할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서 차례로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 맹: 교육의 목표라고 하면 보통 어떤 완성된 인간형을 생각하는데, 굳이 그런 것을 염두에 둔다면 대장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대장부의 인품에 대해선 지난번에 말한 바 있으니 다시 말하지 않겠습니다. 대장부의 구체적인 역사상 인물로는 요임금이나 순임금 혹은 우왕이나 문왕 이른바 성군을 들 수 있겠지요. 공자님도 포함할 수 있겠습니다. 교육의 목표를 굳이 어떤 완성된 인간형으로 보지 않는다고 하면, 나는 자득(스스로 터득함)을 교육의 목표라고 보고 싶습니다. 깨달음이라고 해도 좋겠습니다. 교육의 내용 하면 흔히 어떤 교과를 생각하는데, 굳이 그런 것을 염두에 둔다면 시, 서, 예, 춘추 등을 들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내가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교육 내용은 스승과 생활하면서 배우는 것입니다. 그것은 특정 교과를 넘어선 범교과적인 내용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 범교과적인 내용은 '도'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교육 방법을 말해 볼까요? 교육 방법에는 다섯 가지가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변화시키는 법, 미흡한 덕성을 집중 배양시키는 법, 특정한 재주를 발양시키는 법, 물을 때마다 답해주는 법, 홀로 찾아 익히도록 권면하는 법입니다. 교육 방법은 배우는 자의 능력과 처지 및 특성에 맞추어 달라야 합니다. 획일적인 방법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자연스럽게 변화시키는 법은 능력이 뛰어난 자에게 적합한 방법입니다. 한창 성장기의 초목에 적절히 비가 내리면 무럭무럭 자라듯 능력이 뛰어난 자에겐 약간의 막힘이 있을 때 조금만 도움을 주어도 큰 성장을 할 수 있지요. 미흡한 덕성을 집중적으로 배양시키는 법이나 특정한 재주를 발양시키는 법은 그다음 능력을 가진 자에게 적합한 방법입니다. 문답법이나 홀로 찾아 익히도록 권면하는 법은 뛰어난 능력을 가진 자나 그렇지 못한 자 모두에게 적용되는, 말 그대로 보편적인 교수법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가르침은 배우는 자의 특성에 맞춘 적절한 개입과 지도 및 배우는 자의 자발적 노력이 결합할 때 성과를 낼 수 있는 활동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 찔: 저는 유학 교육하면 스승의 가르침을 묵수(묵묵히 따르고 지킴)하는 것으로만 생각했는데, 결코 그렇지 않군요.
■ 맹: 네, 묵수가 아니고 자득입니다. 하하하.
■ 찔: 그런데 선생님, 지금까지 말씀해 주신 것은 수월 교육에 관한 말씀이지 보편 교육에 관한 말씀은 아니지 않습니까?
■ 맹: 그렇게 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수월 교육과 보편 교육을 꼭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가를 필요가 있을지 모르겠군요? 우리 시대는 아직 그렇게 교육이 대중화되지는 못한 상태이니까요. 수월 교육 방법을 보편 교육 시 적용하면 그것이 곧 보편 교육 방법이 되겠지요. 인원이 많든 적든 교육의 본질은 달라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생명을 지닌 존재는 귀한 것이고 일회적이니까요.
■ 찔: 마지막 말씀은 정말 귀한 말씀입니다. 소수의 귀족 교육은 중히 여기고 다수의 대중 교육은 업수이 여기는 교육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소수 정예 교육이 필요한 것이 사실입니다. 대중 교육은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여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는 모양입니다만, 인원을 잘게 나누고 구성원간 긴밀한 협력을 강화시키며 지도하는 이가 적절히 개입한다면 소수 정예 교육과 근사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맹: 좋은 방안인 것 같군요.
■ 찔: 선생님, 오늘은 여기까지만 했으면 합니다.
■ 맹: 그러시지요. 아 참, 지난번에 약을 한 번 해 드시라고 했는데 어떻게 했는지요?
■ 찔: 네, 바로 그 약을 찾으러 가려고…. (웃음)
■ 맹: 그렇군요. (웃음) 그럼, 내일 봅시다.
■ 찔: 네~ 선생님. 편히 쉬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