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와의 대화

6화

by 찔레꽃

■ 찔: 선생님, 안녕하셨습니까? 오늘은 세간에 화제가 됐던 제선 왕과의 대화 얘기를 좀 해주셨으면 합니다. 이른바 '곡속(죽기 싫어 부들부들 떰) 대화'라고 불리는 그 대화 말입니다. 선생님의 주장들이 종합적으로 녹아있어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제 말씀해주셨던 성선과도 관련성이….


■ 맹: 그렇죠, 관련성이 깊죠. 어느 날 제선왕이 제나라 환공과 진나라 문공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합디다. 자신이 모델로 삼고 있는 왕의 이야기를 통해 뭔가 시사를 받고자 하는 의도였겠지요. 나는 단호하게 거부 의사를 밝혔습니다. 이렇게 말했지요. "공자의 문하생들은 환공과 문공에 대해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러다 보니 전승돼 온 그들에 관한 이야기가 없습니다. 하여 저도 아는 바가 없습니다. 혹 저와 계속 이야기를 나누시기 원하신다면 왕도정치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 찔: 하하, 과연 선생님 다우십니다. 그러나 실제 그들에 관한 사적을 모르시는 건 아니시겠지요?


■ 맹: 그건 인터뷰하시는 분이 알아서 생각하십시오.


■ 찔: 네~ (머쓱해하는 표정). 왕은 어떻게 대답했는지요?


■ 맹: 이렇게 묻습디다. "선생께서 말씀하시는 왕도정치는 어느 정도의 덕망이 있어야 가능한 건지요? 내 자세히는 모르지만 나 같은 사람은 너무 어려워 보이는 경지 같던데…." 내가 대답했지요. "백성을 보호할만한 덕망만 있으시면 됩니다." 그러자 왕이 약간 구미가 당기는 듯한 표정으로 다시 묻습디다. "저 같은 사람도 백성을 보호할만한 덕망이 있다고 보시는지요?" 내가 대답했지요. "네!" 왕은 다소 의외라는 표정으로 "어디서 저의 그런 면모를 보셨는지요?" 하고 묻습디다. 내가 말했지요. "일전에 호흘에게 듣자오니 왕께서 앉아 계신 곳 앞으로 소를 끌고 가는 자가 있기에 '무엇을 하려고 소를 끌고 가느냐?'하고 물으셨다고 하더군요. 그러자 소를 끌고 가던 자가 '흔종(종의 빈틈을 피로 메꾸는 의식)'을 하기 위해 데려갑니다' 했고 왕께서는 '살려 줬으면 좋겠구나. 죽기 싫어 부들부들 떨며 눈물이 그렁그렁한 것을 차마 볼 수 없구나' 하셨다고 하더군요. 그러자 그 자가 '그러면 흔종 의식을 폐하오리까?' 했고 왕께서는 '그럴 수야 없지. 양으로 대체토록 하거라!' 하셨다고 하더군요. 제가 제대로 옮겼는지 모르겠습니다." 왕이 말합디다. "맞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지요." 나는 바로 응수했지요. "바로 그 마음입니다. 왕께서는 백성을 보호할만한 충분한 덕망을 갖추셨습니다."


■ 찔: 어떻게 제선왕의 마음을 공략하실 것인지, 저는 조금 감이 잡힙니다. (웃음)


■ 맹: 그래요? 하하하. 자득(스스로 이치를 깨우침)하게 되면 어떤 것을 만나더라도 본질과 연결 지을 수 있게 됩니다. 응용력이 생긴다고나 할까요? 나는 우선 왕의 마음을 달래 주었지요. "백성들은 왕께서 인색하다고 비아냥 거리는 줄 압니다만, 저는 왕께서 결코 인색해서 양으로 대체시킨 것이 아니란 걸 잘 압니다." 왕은 얼굴빛에 희색이 만연하여 말합디다. "그렇습니다. 우리나라가 비록 협소하다고 하지만 내 어찌 소 한 마리가 아까워 양으로 대체시켰겠습니까? 죽기 싫어하는 모습이 너무도 애처로워 양으로 대체시킨 것뿐입니다." 내가 말했지요. "백성들이 왕께서 인색하다고 비아냥 거리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마옵소서. 작은 것으로 큰 것을 대체시켰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죽는 것이 불쌍하다면 양도 쓰지 말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왕이 멋쩍은 듯 웃으며 말하더군요. "그렇군요. 거 참. 내 비록 인색하여 양으로 소를 대체시킨 건 아니지만, 백성들이 한 말도 틀린 것은 아니군요." 내가 말했지요. "상심하지 마옵소서. 왕께서 하신 일은 잘못하신 것이 아닙니다. 만약 양이 끌려가는 것을 보셨다면 그 또한 분명히 놓아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양을 보지 못하셨기에 그냥 흔종에 사용토록 하신 것뿐입니다. 군자는 짐승 죽이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고, 죽기 싫어 애처롭게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는 그 고기를 먹지 못합니다. 하여 군자는 푸줏간을 멀리합니다. 혹자는 이를 위선적인 행동이라 부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는 상정(사람이 가지는 보편적인 마음)에 기댄 극히 정상적인 행동입니다." 왕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합니다. "시에 '타인의 마음 / 나는 잘 헤아리지'라는 구절이 있는데, 바로 선생의 경우에 해당되는 구절 같습니다. 내가 행하고도 내 마음을 정확히 헤아리질 못했는데 선생께서 말씀해 주시니 분명해지는군요. 그런 그렇고, 이런 저의 마음이 왕도정치에 적합한 자격이 있다고 하셨는데, 좀 상세히 듣고 싶군요."


■ 찔: 저라도 왕과 똑같은 말을 했을 것 같습니다. (웃음)


■ 맹: 그래요? 하하하. 나는 왕께 먼저 질문을 했어요. "여기 어떤 사람이 왕께 '나는 백균은 들 수 있으나 깃털 한 개는 들지 못한다' 하거나 '나는 추호(가을날의 짐승 털. 매우 가늘다는 의미)도 살필 수 있으나 한 수레의 장작더미는 못 본다' 하면 그 말을 믿으시겠습니까?" 왕이 대답했지요. "말도 안 되는 소리지요." 내가 말했지요. "이제 살려주는 은혜가 짐승에게는 미치면서 백성에게 미치지 못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지요? 백균은 들 수 있으나 깃털 한 개는 들지 못한다는 것은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는 것이며, 추호도 살필 수 있으나 한 수레의 장작더미를 못 본다는 것 역시 할 수 있으나 하지 않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백성들이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은 왕께서 은혜를 베풀 줄 몰라서가 아니라 베풀지 않아서 일뿐입니다."


■ 찔: 왕께서 속으로 뜨끔하셨을 것 같은데, 뭐라도 답하시던지요?


■ 맹: 하지 않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의 차이를 명확히 하고 싶은지 이렇게 묻습디다. "하지 않는 자와 할 수 없는 자의 모습을 대조하여 말씀해 주실 수 있겠는지요?" 내가 말했지요. "태산을 끼고 북해를 넘어가는 일을 못하다고 하면 이는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른을 위해 나뭇가지 하나 꺾는 것을 못한다고 하면 이는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것입니다. 왕께서 백성을 보호하는 왕도정치를 하지 못한다 하심은 저 태산을 끼고 북해를 넘어가는 일을 못한다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니고 어른을 위해 나뭇가지 하나 꺾는 것을 못한다 하심과 같습니다. 못하시는 것이 아니라 안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집 노인 대접하는 것을 미루어 다른 집 노인에게까지 이르게 하고, 우리 집 어린아이 보살피는 것을 미루어 다른 집 어린아이에게 까지 이르게 하면 천하를 손바닥에 놓고 다스릴 수 있을 것입니다. 시에 이르길 '아내에게 모범을 보여 / 형제에게 이르고 / 집안과 나라에까지 이르게 하네'라고 한 것은 바로 가까운 곳에 베푸는 마음을 멀리까지 미치게 하는 것을 일컬은 것입니다. 은혜를 미루어 베풀 수 있으면 천하도 보살필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처자식 조차도 건사하지 못하게 됩니다. 옛 성왕들이 훌륭했던 것은 별 것이 없습니다. 바로 잘 미루어 베풀 수 있었던 것뿐입니다. 이제 왕의 은혜가 금수에게까지 미치고 있는데 그것이 백성에게 이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지요?"


■ 찔: 선생님, 제가 질문을 드려도 될까요?


■ 맹: 그러시죠.


■ 찔: 선생님의 논리는 너무 단선적인데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그리고 구체성이 없습니다. 일견 보기엔 타당해 보이지만 말입니다. 일례로 자기 처자식에게 은혜 베푸는 것을 다른 집 처자식에게 베푼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베푼다는 것인지 막연하지 않습니까? 또 다른 집 처자식은 그쪽 처자식을 거느린 가장이 있을 텐데 무슨 헤택을 베푼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 맹: 흠~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요컨대, 마음의 확장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왕은 나라를 통치하는 사람인데 기껏 자신의 식솔만을 생각하고 정치를 한다면 안된다는 말이지요. 자신의 식솔을 생각하는 그 애틋한 마음으로 백성들을 대하면 백성들을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은 저절로 찾아질 것입니다.


■ 찔: 저도 선생님의 취지를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하여간 알겠습니다. 갑자기 말씀하시는 도중에 맥을 끊어 죄송합니다. 이어서 말씀해 주시겠는지요?


■ 맹: 왕께서 나의 채근에 아무 말이 없기에, 사실 대답할 말이 없는 게 당연하지만, 나는 화제를 돌려 그가 왕도정치에 관심을 갖도록 다른 방향으로 질문을 유도했지요. 내가 물었지요. "왕께선 군사를 일으켜 신료들을 위태롭게 만들고 이웃 제후들과 원수지간이 되는 것에 아무런 불편한 감정이 없으신지요?" 왕이 대답했지요. "그럴리가요? 그런 일은 분명 불편합니다. 하지만 내게 야망이 있는 것은 숨기지 않겠습니다." 내가 말했지요. "야망이라고요? 그게 어떤 것인지요?" 그러자 왕은 웃을 뿐 말을 하지 않더군요. 하여 내가 말했지요. "설마 맛 좋은 음식, 따뜻하고 가벼운 옷, 아름다운 여인, 듣기 좋은 음악, 수족 같은 신하, 이런 것들에 대한 욕구를 말씀하시는 것은 아니겠지요?" 왕이 대답했지요. "당연하지요. 어찌 그런 것들에 대한 욕구이겠습니까?" 내가 말했지요. "그렇다면 왕께서 원하시는 욕구가 무엇인지 알겠습니다. 영토를 넓히고 저 서방의 진과 남방의 초가 왕께 조회를 하러 오게 하고 사방의 오랑캐를 보듬으며 중국의 패자 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생각키에 왕의 처지에서 그런 것을 바라시는 건 흡사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잡으려는 것과 같다고 봅니다." 그러자 왕이 정색을 하며 묻더군요. "그렇게 심합니까?" 내가 대답했지요. "어쩌면 그보다 더 심하다고 하겠습니다.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잡는 것은 물고기만 못 잡을 뿐 후환은 없지만, 왕의 처지에서 그런 것을 하시려 하면 성취도 안되거니와 반드시 후환이 있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왕이 묻더군요. "좀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내가 왕께 물었지요. "추나라와 초나라가 싸우면 누가 이길 거라 보십니까?" 왕이 말합디다. "초나라가 이기겠지요." 내가 말했지요. "그건 이런 것을 말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작은 것은 큰 것을 상대할 수 없고, 적은 것은 많은 것을 상대할 수 없으며, 약한 것은 강한 것을 상대할 수 없다. 이제 천하에 사방 천리 되는 나라가 아홉이 있는데 제는 그중의 한 나라입니다. 그런데 제가 나머지 여덟 나라를 상대하려 한다면 이는 추가 초를 상대하려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근본으로 돌아가서 하실 일을 살펴보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혹 왕께서 바라시는 바를 얻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진 정사를 펼치사 천하의 벼슬아치들이 왕의 신하가 되려 하고, 농사짓는 이들이 왕의 땅에서 농사짓고자 하며, 장사하는 이들이 왕의 시장에서 장사하고자 하며, 여행하는 이들이 왕의 나라를 여행하고자 한다면, 천하에 그 나라의 임금을 미워하는 자들이 모두 왕께 와서 하소연하리니 이와 같은 상황이 된다면 그 누가 왕을 상대할 수 있겠습니까!"


■ 찔: 선생님, 잠깐만요. 앞서 제가 선생님의 견해가 너무 단선적이고 구체적인 것이 없다고 말씀드렸는데 이번에 말씀하시는 것도 그렇습니다. 어떻게 왕께서 정치를 잘하신다고 이웃나라 사람들이 왕의 백성이 되겠다고 할 것이며, 설령 그런다고 해서 그 나라 왕이 백성들을 그대로 다 보내겠습니까?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흡사 막힌 물길을 터놓으면 그 물이 일사천리로 흘러가리라는 것과 같습니다. 나라와 나라의 일이 어떻게 그와 같이 손쉽게 해결되겠습니까?


■ 맹: 그런가요? 흠~ 일리 있는 주장이네요. 그러나, 내 늘 강조하지만, 나는 본질을 얘기하고 있는 겁니다. 지엽은 본질이 해결되면 자연적으로 풀리게 돼지요. 계속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지요. 내 말 끝에 왕은 고무를 받았는지 좀 더 말을 해달라고 하더군요. 시도해 보겠다는 말까지 했지요. 해서 내가 이렇게 말했지요. "항산(생계를 유지할 일정한 재산)이 없어도 항심(도덕심)을 잃지 않는 것은 사라야 가능합니다. 일반 백성은 항산이 없으면 항심도 없게 됩니다. 항심이 없게 되면 상규(일정한 법도)를 벗어난 일들을 거리낌 없이 저지르지요. 그들이 그런 일을 하다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범죄를 저질렀다하여 그들을 처벌하면 이는 백성을 투망질 하는 것과 같습니다. 투망질 할 때는 떡밥을 던져놓고 물고기를 모이게 한 후 잡지 않습니까? 백성들이 범죄를 저지르게끔 만들어 놓고 범죄를 저지르면 처벌하니 이 어찌 투망질 하는 것과 다르다 하겠습니까! 군주가 임금 자리에 있으면서 어찌 백성을 투망질 하는 일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이렇기 때문에 현명한 군주는 백성의 경제 활동을 잘 다스려 부모를 잘 부양하고 처자식을 잘 건사케 하여 평화로운 시절엔 종신토록 배불리 먹고 어려운 시절이라도 굶어 죽는 일을 면케 합니다. 그런 뒤에사 그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니 백성들이 그 길을 어렵지 않게 여깁니다. 그런데 지금 제나라의 사정은 어떠한지요? 모든 것이 이와 반대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죽음만 면하는 것도 큰 일입니다. 예와 의를 정치에 적용할 겨를이 없습니다."


■ 찔: 저는 선생님께서 당연히 옛 성왕들의 치도(다스리는 법)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놓으시리라 생각했는데, 의외입니다.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된 다음에 그런 문제를 논해야 한다고 하셔서 약간 놀랐습니다.


■ 맹: 그래요? 뭔가 오해를 했던 모양이군요. 제 주장은 일찍이 공자께서도 주장하셨던 것입니다. 제나라를 방문하셨을 때 사람이 많은 것을 보고 뭔가 큰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셨는데, 그때 제자가 선생님께서 국정을 담당하신다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하시겠냐고 묻자 공자께서는 '배불리 먹여야겠지!'라고 말씀하셨지요. 그다음엔 무엇을 하실 거냐고 묻자 '가르쳐야지!'라고 하셨지요. 저도 같은 취지로 말한 것입니다.


■ 찔: 그렇군요. 그러면 선생님께서 제선왕께 말씀해주신 백성을 배부르게 하는 경제 정책은 무엇이었는지요?


■ 맹: 전에 양혜왕을 만났을 때 설파했던 그 방법이었습니다. 지난번에 들었으니 굳이 다시 말하지 않아도 될 것 같군요.


■ 찔: 그렇군요. 그런데 선생님, 지난번에도 말씀드려 저도 다시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만 왜 꼭 그 방법만 말씀하시는 건지요? 나라의 규모도 다르고 정치 상황도 다르고 경제 상황도 다른데 말입니다.


■ 맹: 가만히 인터뷰하는 분의 말을 들어보니, 인터뷰하는 분은 제 주장에 불만이 많은 것 같군요. 하하하. 그리고 은근히 상앙류의 변법이나 오기의 개혁책 등을 그 대안으로 생각하는 것 같군요.


■ 찔: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시대가 변하면 변한 상황에 맞춰 새로운 방책을 구상해야 하는 것 아닐는지요? 어린아이가 어릴 적에 순진했던 건만 생각하고 그가 큰 뒤에 변한 것을 보면서 어릴 적의 순진함을 되찾도록 요구한다면 그게 가능한 일일 런지요?


■ 맹: 재미있는 비유군요. 그러나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어른이 되어서도 어린아이적의 순수함을 지키는 것이 더 바람직할까요, 아니면 욕망에 휘둘려 순수함을 저버리는 것이 바람직할까요? 선택은 개인에게 달려있겠지요. 내가 주장하는 경제 방법은 가장 본질적이고 원론적인 것입니다. 인터뷰하는 분이 말했던 것으로 환치하면 순수한 동심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시대가 변했다는 것은 어린이가 어른이 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어른이 되었다고 하여 굳이 순수한 동심을 저버릴 필요가 있을까요? 그것을 잘 견지하면 과도한 욕망에 빠지지 않고 바람직한 삶을 살 수 있는데 말이지요. 오기의 개혁책이나 상앙의 변법은 어른된 욕망을 최대한 충족시키고자 하는 방법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풍요를 가져올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것은 거기까지 입니다. 내가 주장하는 방법은 동심을 유지하면서 어른이 돼서 갖는 욕망을 조절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 더 바람직한 것인지는 선택의 문제입니다. 나는 어느 경우이든 내 주장을 굽히지 않습니다. 나는 나의 주장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찔: 이제 선생님의 주장에 공감이 갑니다. 지난번에는 제가 단견(짧은 생각)으로 선생님의 주장을 논박했는데, 역시 단견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건 그렇고 제선왕은 선생님의 주장에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요?


■ 맹: 별 말이 없더군요. 양혜왕처럼, '논리는 맞지만 현실감이 없는 주장인 것은 분명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더군요.


■ 찔: 그렇군요.


■ 맹: 그러나 내 주장은 일관됩니다. 백성을 희생시키지 않고 원칙적인 해결책을 찾는 것입니다. 나는 결코 상앙이나 오기와 같은 주장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백성을 희생시켜 얻는 성과입니다. 당장의 희생은 후일의 성과로 보답받는다는 주장을 하지만, 나는 그것에 결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생명은 더없이 귀한 것입니다. 그것은 일회적인 것입니다. 성과를 위해 귀한 일회성의 생명을 희생시켜야 한다는 주장에 나는 결코 동의할 수 없습니다.


■ 찔: 선생님의 주장에 공감합니다. 오늘은 어제 보다 더 길었던 대화였습니다. 장시간 감사합니다. 내일 또 뵙겠습니다.


■ 맹: 네. 편히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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