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와의 대화

13화

by 찔레꽃

■ 찔: 선생님, 안녕하셨어요? 오늘은 교우 관계에 대한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이우보인(벗은 내 인의 성장에 보탬이 된다)'이라고, 벗은 인격 성장에 큰 도움을 주는 존재입니다. 공자님께서도 일찍이 "자신과 뜻이 통하는 벗이 찾아오면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벗의 가치와 의미를 중시하셨습니다. 이는 선생님도 마찬가지이실 것 같습니다.


■ 맹: 맞습니다. 벗은 '또 하나의 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찔: 선생님께서 광장(匡章)을 벗으로 삼으신 것도 그런 이유이신가요?


■ 맹: 그렇게 봐도 무방합니다. 제자인 공도자는 나와 광장간의 내밀한 교류를 인식하지 못하고 그를 겉면만 판단하고 왜 그런 이를 벗으로 삼느냐고 힐문한 적이 있지요. 아시다시피, 광장은 온 나라 사람들이 불효자라고 손가락질했으니까요.


■ 찔: 효를 중시하는 선생님께서 그를 친구로 삼으신 것에 저 역시 의문을 갖고 있습니다.


■ 맹: 공자께서는 "모든 이가 좋아하더라도 꼭 살펴보고, 모든 이가 싫어하더라도 꼭 살펴보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어찌 보면 광장의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이들이 광장을 불효자라고 손가락질하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그에게 과연 과연 불효한 행위가 무엇이 있는지 의문입니다. 일반적으로 불효라 하면 열심히 일하지 아니하여 부모를 제대로 부양하지 못하는 것, 술 마시고 노는데 정신 팔려 부모를 제대로 부양하지 못하는 것, 처자식만 챙기고 부모를 챙기지 않는 것, 사치 방탕한 일로 부모를 욕되게 하는 것, 과격하고 싸움질 좋아하여 부모의 마음을 조바심 나게 하는 것을 드는데 광장은 이 중 어느 하나도 범한 일이 없어요. 다만 그가 잘못한 것은 부모에게 옳은 일을 하라고 강권하여 부모와 사이가 틀어진 것뿐입니다. 광장의 부모 역시 광장에게 자신들의 가치관을 강요하다시피 했지요. 그러다 보니 광장은 부모와 틀어져 지내게 된 것입니다. 전에도 말했지만, 부모와 자식 간에는 '책선(선한 일을 하도록 질책함)'을 하는 게 아닙니다. 그러다 보면 서로 간의 감정만 상하게 되지요. 책선은 친구 간의 도리이지 부자간의 도리는 아닙니다.


■ 찔: 선생님, 어쨌든 그래도 장자는 불효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것이고요.


■ 맹: 그러나 사람들은 그가 부모와 결별한 후 지내는 행동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고 있어요. 그의 행동을 보면 그를 결코 불효자라고 손가락질하지 못할 겁니다.


■ 찔: 어떻게 지내는지요?


■ 맹: 그라고 왜 처자식과 함께 살고 싶지 않겠어요? 그러나 부모와 결별하여 지내는 처지에서 처자식과 오손도손 사는 것은 또 한 번 부모에게 죄를 짓는 것이라 생각하여 그는 처자식을 내치고 홀로 지내고 있어요. 과연 어떤 이가 부모와 결별하여 지낸다 하여 광장처럼 지내겠어요? 나는 광장의 이런 점을 높이 평가한 것입니다. 남들이 손가락질하는 광장과 내가 교우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고요.


■ 찔: 그렇군요. 과연 공자님의 말씀처럼 모든 이가 싫어해도 꼭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더불어 선생님의 사람을 보는 안목도 확실히 남다르신 것 같구요. 선생님, 그럼 좀 더 구체적으로 교우는 어떻게 맺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는지요?


■ 맹: 벗 삼는 것은 상대의 덕을 벗 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나이와 신분 혹은 상대의 가정 배경 등을 게재시켜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순수한 교우가 아닙니다. 맹헌자는 대부의 지위에 있었던 사람인데, 그가 벗으로 삼았던 사람은 악정구와 목중 등 다섯 사람이었지요. 맹헌자와 교유했던 다섯 사람은 맹헌자에 비겨 나이나 신분 혹은 가정 배경이 그만 못했어요. 그러나 맹헌자도 그 다섯 사람도 모두 그런 것에 개의치 않았습니다. 대부의 지위에 있던 사람만 이런 경우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작은 나라의 군주에게서도 이런 경우가 있었지요. 비혜공은 그가 교유하던 인물인 자사와 안반 장순장식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어요. "나는 자사를 스승으로 여긴다. 안반은 벗으로, 왕순장식은 나를 모시는 자로 여긴다." 이들 역시도 나이나 신분 혹은 가정 배경이 비혜공만 못했지만 비혜공도 이들도 모두 그런 것에 개의치 않았습니다. 다만 비혜공의 경우 세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 다소 차이가 있었을 뿐입니다. 작은 나라의 군주만 이런 경우가 있는 것이 아니라, 큰 나라의 군주에게서도 이런 경우가 있었습니다. 진평공은 해당과 벗으로 지냈는데, 그가 해당 집을 방문했을 때 해당이 들어오라고 해야 들어갔고 앉으라고 해야 앉았으며 먹으라고 해야 먹었으며 비록 보잘것없는 음식이라도 항상 흡족하게 들었습니다. 하지만 진평공과 해당의 교유는 거기까지 였습니다. 둘 사이에는 그 어떤 신분이나 나이 혹은 배경이 개입되지 않았습니다. 진평공은 자신을 학덕이 높은 이에게 배움을 갈구하는 일개 학인 정도로 여겼으며, 해당 역시도 진평공을 자신에게 배움을 청하러 온 일개 학인으로만 대했습니다. 큰 나라의 군주만 이런 경우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천자의 경우에도 있었으니, 요와 순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순이 요를 만났을 때 요는 순에게 별궁을 제공하며 순에게 연회를 베풀었고, 순 또한 자신의 별궁에 요를 초대하여 서로가 손님과 주인의 역할을 번갈아 했습니다. 이는 천자가 일개 필부를 자신의 벗으로 삼은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일들은, 벗 삼는 것은 덕을 벗 삼는 것이지 그 이외의 것을 벗 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 줍니다.


■ 찔: 선생님, 제가 처음에 선생님께 듣고자 했던 교우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친구 사이의 관계 맺음이었는데 정작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은 그것보다는 정치적 지도자와의 관계 맺음이었습니다.


■ 맹: 정치적 지도자와의 관계 맺음 속에 인터뷰하시는 분이 생각하는 친구 사이의 관계 맺음도 들어 있다고 볼 수 있지요. 지위나 신분 나이 등에 있어 나하고 현격한 차이가 나는 사람과도 덕을 중심에 둔 동등한 사귐을 주장했으니 애초부터 그런 차이가 나지 않는 사람과는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는 자명한 것 아니겠어요?


■ 찔: 그렇군요.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웃음) 선생님, 교제를 할 때 첫째 덕목은 아무래도 '공경'이겠지요?


■ 맹: 그렇습니다. 한 번은 제자인 만장이 이런 질문을 하더군요. "받을까 말까 망설이는 것이 어째서 불공한 것인지요?" 공경에 대비되는 불공을 통해 공경의 의미를 찾아보려는 질문 같았어요.


■ 찔: 뭐라고 답해 주셨는지요?


■ 맹: 그렇게 망설이는 것은 받으려는 물건이 의(옳음)에 합당한 지 그렇지 않은 지를 재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것은 그것을 주는 사람에 대한 공경의 태도가 아닙니다. 더구나 그것을 주는 이가 나보다 나은 위치에 있다면 더욱 그러하지요. 이런 취지의 답변을 해주었습니다.


■ 찔: 그런데, 선생님, 의에 합당한 지 그렇지 않은지를 헤아려보는 것은 그다지 그릇된 행동은 아니지 않습니까?


■ 맹: 그렇지요. 그렇게 헤아려보는 것이 그릇된 행동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게 헤아려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상대와 덕을 매개로 교제하고 서로 예에 맞게 행동하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만일 상대와 그렇게 교제하고 있다면 상대가 어떤 물건을 줬을 때 의에 합당한 지 여부를 헤아리는 것은 상대를 욕보이는 행동입니다. 의에 합당한 지 여부를 헤아리는 것은 상대와 그런 교제를 하고 있지 않은 경우에 해당하는 일입니다.


■ 찔: 상대가 자신의 검은 속셈을 감추고 외적으로만 도와 예로 교제하려는 경우도 있지 않겠습니까?


■ 맹: 만장도 그런 취지의 질문을 하더군요. "도성의 관문을 지키는 자가 남의 물건을 강탈한 뒤 도와 예를 내세워 그 물건을 보내오면 그 경우도 받을 수 있는 것인지요?"


■ 찔: 뭐라고 답변하셨는지요?


■ 맹: 뭐라고 답변하다니요? 당연히 받아서는 안 되는 것 아니겠어요?


■ 찔: 도와 예를 갖춰 보내온 물건이면 받을 수 있다고 하셨는데….


■ 맹: 여인과 손을 잡아서는 안된다는 것이 원칙이지만 물에 빠진 여인의 경우에는 손을 잡아야 하지 않겠어요? 도와 예를 갖추면 그가 보내온 물건을 망설임 없이 받는 것이 원칙이지만, 상대가 물건을 가져온 경위가 부당한 것인지를 분명히 아는 경우에는 비록 외적으로 도와 예를 갖췄다 해도 받아서는 안 되겠지요. 원칙도 중요하지만 권도(상황에 맞춘 원칙 변화) 또한 필요하지요.


■ 찔: 저는 선생님이 강고한 원칙주의자 이신줄 알았는데, 꼭 그런 것만도 아니시군요. (웃음)


■ 맹: 계제에 만장이 내처 했던 질문 이야기를 마저 해보지요. 만장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관문을 지키며 물건을 강탈하는 자가 비록 예와 도에 맞게 물건을 줬다 해도 그것을 절대 받아서는 안된다고 하셨는데, 오늘날 제후들의 소행을 보면 관문을 지키며 물건을 강탈하는 자와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이런 제후들이 보내오는 물건은 그들이 예와 도를 지켰다면 받을 수 있는 것처럼 말씀하십니다. 어불성설 아닌지요?"


■ 찔: 예리한 질문이군요. 뭐라고 답변하셨는지요?


■ 맹: 이렇게 말했지요. "그대가 생각키에 왕도정치를 펴려는 군주가 있다고 했을 때 지금의 제후들을 일고의 희망도 없는 자들이라 여겨 다 죽이겠는가, 아니면 가르친 후에도 고치지 않으면 죽이겠는가? 자신의 소유가 아닌데 무단히 취하는 것을 '도둑질'이라고 하지. 그런데 그와 유사하지만 도둑질이라고 치지 않는 것도 있지. 엽각(사냥해 온 짐승의 다과를 비교하는 일. 때로 다른 이의 사냥한 것을 취하기도 함)이 그 경우인데, 공자께서도 노나라에 계실 때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엽각을 하신 적이 있었지. 엽각도 하신 마당이니, 도와 예를 갖춰 물건을 보내오면 마다하지 않으셨지."


■ 찔: 공자님의 사례로 선생님의 생각을 대신 말씀하신 거군요. 제후들의 행동을 실제 도둑과 동일시할 수는 없는 것이고, 그런 차원에서는 그들이 도와 예를 갖춰 물건을 가져올 경우 마다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신 거죠?


■ 맹: 그렇습니다.


■ 찔: 교유에 있어, 한 경우를 가지고, 제자 분과 정밀한 토론을 벌이셨군요. 제자 분도 선생님을 닮아 사리 분별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


■ 맹: 그런가요? (웃음)


■ 찔: 선생님, 이제 정리 차원에서 어떤 이를 벗으로 삼는 게 좋을지에 대해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경우도 정치적 혹은 일반적인 대등한 관계가 모두 포함될 것 같습니다.


■ 맹: 그렇지요. 답은 간단합니다. 굳이 어떤 이를 벗 삼으려 할 필요가 없습니다. 유유상종이라고, 벗은 자신의 성숙 정도에 맞게 자연스레 맺어지게 돼있기 때문입니다. 한 고을의 뛰어난 선비는 그와 동급의 선비를 사귀게 마련이고, 한 나라의 뛰어난 선비는 그와 동급의 선비를 사귀게 마련이며, 천하의 뛰어난 선비는 그와 동급의 선비를 사귀게 마련이지요.


■ 찔: 선생님, 혹 천하의 선비 중에 자신과 뜻이 통하는 벗이 없을 경우엔 어떻게 해야 할까요?


■ 맹: 좋은 질문입니다. 그 경우엔 옛사람을 벗으로 삼아야 하지요. 그 사람이 쓴 시와 글을 읽으면서 그와 교유하면 됩니다. 이 경우, 그 사람이 살던 시대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시대를 알아야 그 사람의 사고와 행동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죠.


■ 찔: 그렇군요. 그 사람이 쓴 시와 글은 그가 살던 시대를 배경으로 나온 것이지 아무런 토대 없이 나온 것은 아닐 테니까요. 시대를 앎으로써 그 사람이 시대에 대처했던 사고와 행동 방식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선생님, 오늘 좋은 말씀 감사했습니다. 더불어 저 자신 제 교유 관계를 되짚어 보며 제 자신을 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 맹: 도움이 되었다니 기쁘군요. 편히 쉬시고 내일 봅시다.


■ 찔: 네, 선생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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