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와의 대화

14화

by 찔레꽃

■ 찔: 선생님, 안녕하셨습니까? 오늘은 약간 거창한 주제에 대해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다름 아닌 국제 관계인데요, 국제 관계에서 "영원한 우방이나 적은 없다"고 합니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우방이 되기도 하고, 어제의 우방이 오늘의 적이 되기도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선생님은 국제 관계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갖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 맹: 한 번은 제선왕이 인터뷰하시는 분과 유사한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웃 나라와 교류하는 데 있어 도가 있냐고 묻더군요. 현실적인 국제 관계가 인터뷰하시는 분이 말씀하신 것과 같은 양상인 것을 보면서 뭔가 흡족하지 못한 점이 있어 질문을 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 찔: 뭐라고 답변해 주셨는지 궁금합니다.


■ 맹: 이렇게 답변했지요. "어진 자라야 큰 나라이면서도 작은 나라를 섬길 수 있고, 지혜로운 자라야 작은 나라로서 큰 나라를 섬길 수 있습니다. 탕 임금이 갈나라를 섬기고 문왕이 곤이를 섬긴 것이 전자라면, 태왕이 훈육을 섬기고 구천이 오를 섬긴 것은 후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큰 나라로서 작은 나라를 섬기는 것은 하늘의 뜻을 즐거워하는 것이고, 작은 나라로서 큰 나라를 섬기는 것은 하늘의 뜻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하늘의 뜻을 즐거워하는 자는 천하를 보존할 수 있고, 하늘의 뜻을 두려워하는 자는 그 나라를 보존할 수 있습니다. 시[후대의 시경]에서도 '하늘의 위엄을 두려워하니 / 그것을 보존할 수 있겠도다'라고 했습니다."


■ 찔: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군주와 나라를 동일시하고 계신 거죠?


■ 맹: 그렇습니다. 군주가 곧 나라이고, 나라가 곧 군주이지요. 그런데 왜 갑자기 그 질문을?


■ 찔: 전에 선생님께서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이 그다음이며, 군주는 가벼운 존재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서요. 그 말씀대로라면 군주와 나라를 동일시하는 것이 아닌 것 같은데, 방금 말씀하신 바로는 군주와 나라를 동일시하시는 것 같아서요.


■ 맹: 그것은 국내에 있어서의 상황이고, 국제 관계에 있어서는 군주가 곧 나라가 될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내가 얘기하는 군주와 나라의 동일시는 바로 국제 관계에 있어서의 상황을 말한 것입니다.


■ 찔: 그렇군요. 제나라는 소국이 아니고 대국입니다. 선생님의 말씀대로라면 소국을 잘 보호하는 낙천자의 자세를 취해야 옳은데, 실제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나라는 연나라의 혼란스러운 정치 상황을 틈타 연나라를 공격한 적이 있지요.


■ 맹: 그래서 그랬을까요, 제선왕은 나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이렇게 말하더군요. "선생님의 말씀은 참으로 크고 좋습니다. 헌데 제겐 병통이 있어 선생님의 말씀을 실천에 옮기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저는 용맹이 절륜(보통 사람보다 뛰어남)하여 작은 나라를 섬기는 그런 어진 자가 되지 못할 것 같습니다."


■ 찔: 살짝 빠져나가는군요.


■ 맹: 살짝 빠져나간다고요?


■ 찔: 아, 죄송합니다. (당황한 표정) 저급한 표현을 써서. 선생님의 말씀을 수긍하고 싶지 않지만 그대로 말하기는 곤란하여 자신의 약점을 내세워 회피한 것 같은 느낌입니다. 왕의 말에 어떻게 답변하셨는지 궁금합니다.


■ 맹: 이렇게 말했지요. "용맹함을 지니셨다니 참으로 좋습니다. 다만 소용(작은 용기)을 갖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상대방이 비위를 건드렸다 하여 자신의 칼을 어루만지며 '네가 감히 나를 업수히 여겨? 어디 한 번 맛 좀 볼 테냐!'라고 화를 내는 것은 소용입니다. 이런 용기는 한 사람을 상대하는 자잘한 용기입니다. 그보다는 대용(큰 용기)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시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왕께서 분노 하사 / 군사를 정비하여 / 여 땅의 무리를 막아내 / 주나라 복을 돈독히 하셨네' 이는 문왕의 용맹으로, 여 땅의 무리를 정벌한 문왕의 용맹은 천하의 백성을 편안케 하였습니다. 서[후대의 서경]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하늘이 백성을 내심에 임금도 세우고 스승도 세웠나니 상제를 돕기 위한 것이라. 사방을 다스리게 하심에 유죄 무죄에 항상 임재하니 천하가 어찌 그 뜻을 어길수 있으리오. 난잡한 필부 하나[주왕]가 천하를 어지럽히니 무왕은 이를 수치스럽게 여기었다.' 이는 무왕의 용맹으로, 주왕을 타도한 무왕의 용맹은 천하의 백성을 편안케 하였습니다. 왕께서도 천하의 백성을 편안케 할 용맹을 발휘해 보십시오. 그러면 백성들은 왕께서 용맹을 좋아하지 않으실까 봐 걱정할 것입니다."


■ 찔: 왕께서는 뭐라고 답변하였는지요?


■ 맹: 별 말이 없었습니다.


■ 찔: 빠져나가려다 되려 덜미를 잡힌 것 같습니다. (웃음) 죄송합니다. 또 속된 표현을 써서. 그나저나 선생님의 말씀은 힘없는 약소국의 입장에서 보면 대단히 감동적인 주장입니다만, 과연 대국 중에서 그런 마음을 먹는 나라가 있을지 궁금합니다. 너무 이상적인 말씀을 해주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 맹: 일시적 이익에 매몰되어 다른 나라를 넘보면 일시적으로는 득이 될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실이 됩니다. 인터뷰하시는 분이 말씀하신 제의 연나라 침략만 봐도, 그 뒤의 일이 말해주듯, 결국은 제나라에게 실이 되고 말았지요.


■ 찔: 주변국들이 제나라를 침략하려 했고, 후일 연나라가 다시 제나라를 침공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맹: 그렇지요.


■ 찔: 선생님, 혹시 약소국의 군주가 이웃 나라와의 관계에 대해 질의한 적도 있는지요?


■ 맹: 등나라 군주가 그랬지요.


■ 찔: 대국인 제나라와 대조되는 소국 등나라의 경우엔 어떤 말씀을 해주셨는지 궁금합니다. 앞서 작은 나라는 큰 나라를 섬기는 것이 나라를 보존하는 지혜로운 처사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혹 그와 똑같은 말씀을 해주셨는지요?


■ 맹: 그보다는 약소국이 강대국 사이에서 눈치 안 보고 지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말해 주었습니다.


■ 찔: 그런 방법이 있을까요?


■ 맹: 있습니다. 한 번은 등문공이 이렇게 묻더군요. "선생님께서도 아시다시피 우리 등나라는 강대국 제와 초 사이에 낀 조그만 나라입니다. 어느 나라를 섬기는 것이 지혜로울까요?" 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글쎄요? 그 구체적인 대상은 제가 감히 말씀드리지 못하겠습니다. 다만 이것을 말씀드리고 싶군요. 성 둘레에 해자(성 주변을 에워싼 물길)를 깊게 파고 성을 튼실히 구축한 후 백성과 함께 나라를 굳게 지키자고 맹세해 보십시오. 백성들이 왕의 뜻에 공감하고 결사항전의 자세를 가진다면 굳이 제나 초 중 어느 나라를 섬기지 않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 찔: 백성과 한 뜻이 된다면 어떤 나라가 쳐들어온다 해도 상대해볼 만하다는 말씀이군요. 승패 여부는 하늘의 뜻에 맡기고요.


■ 맹: 그렇지요. 그런데 문제는 백성과 한뜻이 되지 못한다는데 있습니다. 백성에게 인정(어진 정사)을 베풀지 못해서 그렇지요. 이렇게 되면 강대국 사이에서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습니다.


■ 찔: 등문공은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어떻게 했는지요?


■ 맹: 내 말에 확신을 갖지 못했어요. 이후 한 번 더 이런 질문을 하더군요. "등나라는 소국입니다. 온 힘을 다하여 대국을 섬긴다 해도 화란(재앙과 어지러움)을 면하기 힘듭니다.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을 모면할 수 있을는지요?" 나는 과거의 사례를 들려주었습니다. "과거 문왕의 아버지 태왕이 빈땅에 살 적에 적인이 침략한 적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가죽과 패물을 바쳤지만 물러나지 않았습니다. 견마(좋은 개와 말)와 주옥(좋은 옥)을 바쳤지만 물러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태왕은 장로(존경받는 어른)들을 불러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적인이 원하는 것은 우리의 토지요. 내 들으니 '군자는 사람을 도와주는 물건 때문에 사람을 해치게 하는 법이 없다'고 하오. 나는 저들이 원하는 토지 때문에 빈땅 사람들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소. 나는 빈땅을 떠나려 하오. 그대들은 다른 이를 수장에 앉히시오.' 그리고는 빈 땅을 떠나 양산을 넘어 기산의 아래에 새 터전을 잡았습니다. 빈땅 사람들은 '저분이야말로 어진 이이다. 우리가 놓칠 수 없다' 하고는 그를 따라나섰는데 좇아가는 이들이 마치 시장에 사람들이 떼로 몰려가는 것과 같았습니다. " 그리고 보태어 이런 말도 해줬습니다. "어떤 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대로 지켜온 것인데 내 대에 와서 잃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이 땅에서 죽을지언정 떠나가지 않을 것이다.' 왕께서 택하실 수 있는 것은 이 둘 중 하나입니다."


■ 찔: 등문공의 입장에서는 책략에 의한 모면책을 구했던 것 같은데, 선생님께서는 너무 원론적인 말씀만 해주셔서 등문공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답답한 마음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 맹: 답답한 마음이라구요? 글쎄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약소국의 입장에서 백성을 다치지 않게 하면서 강대국에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방법에 이 이상의 방법이 있을까요? 약소국의 입장에서 섣부른 책략은 백성만 다치게 하고 자칫 다른 나라로부터 비열하다는 평만 듣지 않을까요?


■ 찔: 선생님 말씀을 듣고 보니 그런 생각도 들긴 합니다만, 선생님이 예로 드신 태왕의 경우는 지금의 시대 상황과 차이가 있어 왠지 현실감이 떨어집니다. 지금은 그때와 달리 나라의 규모도 크고 정치 제도도 단순하지 않은데…. 태왕이 다스리던 빈 땅의 경우, 명을 하달받은 이들이 장로인 것을 보면, 규모가 무척 작은 것 같고 정치 제도 또한 단순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시대 상황에서는 태왕처럼 하고 싶어도 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 맹: 글쎄요? 꼭 그럴까요? 나라 규모가 크건 작건 정치 제도가 복잡하던 단순하건 기본이 되는 것은 매한가지 아닐까요? 그러면 인터뷰하시는 분은 어떤 대안을 낼 수 있겠어요?


■ 찔: 글쎄요? (멋쩍은 웃음) 하지만 왠지 선생님의 제안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방안이란 생각이 듭니다.


■ 맹: 성패를 예단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때로는 그것에 관계없이 의[올바름]에 기초하여 용맹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할 때도 있습니다. 절체절명의 경우엔 더더욱 그러하지요. 이[이로움]에 매몰되어 좌고우면 하다 보면 되려 명분과 실리 둘 다 잃게 될 수도 있습니다.


■ 찔: 네, 잘 알겠습니다. 선생님, 오늘 대화는 여기서 줄였으면 하고요, 끝으로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는데….


■ 맹: 뭡니까?


■ 찔: 등문공에게 말한 제안 중 '어떤 이'의 견해는 혹 선생님의 견해가 아닌지요?


■ 맹: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인터뷰하시는 분이 편한 대로 생각하십시오. (웃음)


■ 찔: 알겠습니다. (웃음) 그럼, 내일 또 뵙겠습니다.


■ 맹: 그러지요. 편히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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