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를 마치며
■ 찔: 선생님, 안녕하셨어요? 그동안 15회에 걸쳐 부족한 저와 대담해 주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간혹 버릇없는 말투나 질문이 있었던 점도 사과드리고요. 그러나 근본 취지는 선생님의 뜻을 조금 더 분명히 파악하고자 한 의도였다는 점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 맹: 이런, 그간 그런 사과는 필요 없다고 했는데, 인터뷰하는 분이 너무 자신감이 없군요. (웃음) 그나저나 벌써 마무리를 지으려 한다니, 나로선 좀 아쉬운 감이 없잖아 있군요. 아직 할 말이 좀 더 있는데…. 물론, 대체(큰 줄거리)는 거의 말했지만.
■ 찔: 저도 좀 섭섭합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도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대체는 거의 말씀하신 것 같아 마무리지을 생각을 했습니다. 애초 선생님과 대화를 나눈 의도는 선생님의 말씀과 그 의미를 많은 이들이 부담 없이 즐겁게 읽을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였기에 굳이 세세한 말씀까지는 안 들어도 되겠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 맹: 그렇군요.
■ 찔: 오늘 마지막으로 선생님께서 하시고 싶은 말씀을 듣는 것으로 마무지 짓고자 합니다.
■ 맹: 요임금과 순임금으로부터 탕임금에 이르기까지가 500여 년인데 중간의 우임금과 고요는 직접 성왕을 보고서 그분들의 도를 알았고, 탕임금은 성왕의 도를 듣고서 알았습니다. 탕왕으로부터 문왕에 이르기까지가 또한 500여 년인데 이윤과 주래는 직접 성왕을 보고서 그분들의 도를 알았고, 문왕은 성왕의 도를 듣고서 알았습니다. 문왕으로부터 공자님에게 이르기까지가 또 500여 년인데 태공망과 산의생은 직접 성왕을 보고서 그분들의 도를 알았고, 공자님은 성왕의 도를 듣고서 알았습니다. 공자님으로부터 지금 나까지는 100여 년 밖에 안됩니다. 성인이 사시던 세상과 지금처럼 가까운 시절이 없었고 성인이 사시던 곳(노나라)과 이토록 가까운 곳(맹자님의 고국인 추나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성왕의 도를 이을 사람이 없겠습니까?
■ 찔: 무슨 의도로 말씀하시는지 충분히 알겠습니다. 그리고 왜 선생님이 그토록 선생님 자신의 주장에 자신감을 가지고 계신지도요. 비록 현실에서 선생님의 도를 인정해 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선생님은 결코 실망하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실제도 그러셨구요.
■ 맹: 그렇습니다.
■ 찔: 선생님께서는 잘 모르시겠지만 후일 한유라는 이가 선생님의 도를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피력한 바 있습니다. 이 이의 의지는 다시 후일 송대의 후계자들로 이어집니다.
■ 맹: 그래요? 진리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 법이죠.
■ 찔: 외람되지만 제가 선생님에 대해서 한 말씀드려도 될까요?
■ 맹: 그러시죠.
■ 찔: 선생님의 생각에서 가장 위대한 점은 '민(백성)의 발견'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 동시대의 많은 이들이 개인적인 안분(분수에 편안함)이나 권력의 확장을 위한 민의 수단화에 매몰되어 있을 때, 선생님은 이 양자의 경향을 뛰어넘었다고 생각합니다. 혹자는 선생님을 보수주의자요, 이상주의자라고 합니다. 저도 그런 면을 읽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보수나 이상주의는 개인의 안분이나 민의 수단화를 배제한 다수의 민을 하늘의 위치에 올려 파악한 점에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보수나 이상주의와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일면 대단히 혁신적인 주장을 펴셨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구체적인 제도의 입론 등은 말씀하시지 않고 주나라 제도를 복원하는 선에서 말씀하셨기에 다소 아쉬운 감은 없잖아 있지만, '민의 발견'은 그러한 단점을 충분히 만회하고도 남는다고 생각합니다.
■ 맹: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고맙군요.
■ 찔: 저뿐만 아니라 선생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은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제가 선생님과 대화를 나눈 것도 어쩌면 이런 선생님의 생각을 널리 알리고 싶은 의도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부터 그것을 염두에 두고 선생님과 대화를 나눈 것은 아니지만요. (웃음)
■ 맹: 옳은 것은 저절로 드러나게 돼있지요. (웃음)
■ 찔: 선생님, 모쪼록 앞으로도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기원드리겠습니다.
■ 맹: 하하. 그건 인터뷰하시는 분한테 해주고 싶은 얘긴데…. 어쨌든 그간 즐거웠습니다.
■ 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