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두경의 중간『읍취헌유고』서(重刊 『挹翠軒遺稿』 序)
읍취헌 박 선생은 곧은 말을 하다 연산조의 미움을 받았다. 끝내 이 일로 하여 갑자사화(1504) 때 사형을 당했으니, 당시 나이 26세였다. 당시의 일은 차마 가슴이 아파 말하기 어렵다. 선생이 참화를 당했기에, 지었던 글들도 산실되었다. 다행히 친우였던 용재 이상국께서 얼마간 수습하여 세상에 내놓았는데, 이도 세월이 흘러 사라질 지경이 되었다. 나는 선생의 문집이 사라질 지경에 놓인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어떻게 이 천지간에 선생 같은 이의 문집이 사라질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어렸을 때 최간이와 권석주 두 분께서 읍취헌에 대해 평가한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두 분은 읍취헌의 문장이야말로 동국 제일이라고 말씀하셨다. 훗날 장성한 뒤 읍취헌의 글을 보니, 결코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의 시는 기품이 호방하고 뛰어나 황정견과 비길만했고, 문장은 우아하면서도 굳건하여 서한 시대의 글에 핍진했다. 돌아간 아내 신 씨를 추모하는 행장은 문호 한유도 손댈 수 없는 명문이다. 읍취헌을 천하의 기재(奇才)라고 말해도 결코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이런 분이 곧은 도리를 행하다 돌아갔으니, 어떻게 이 천지간에 선생 같은 이의 문집이 사라지게 둘 수 있겠는가!
이에 예조판서 오준과 이조참판 조석윤 대제학 채유후 승지 박장원과 상의하고 전라감사 심택에게 편지를 넣어 중간을 부탁했다. 심공은 흔쾌히 승낙하고 곧바로 간행에 착수했다. 이제 『읍취헌집』이 다시 세상에 널리 유포될 수 있게 됐으니,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문집을 세상에 전하려면 반드시 간행을 해야 하고, 간행을 하려면 남의 힘을 빌 수밖에 없다. 그 힘이 없으면 비록 뜻이 있더라도 일이 성사될 수 없다. 『읍취헌집』의 출간은 비록 우리 5인이 처음 뜻을 세웠으나 그 끝은 심공이 해냈다고 할 수 있다. 심공 또한 글을 아끼고 의를 사모하는 이라 아니할 수 없다. 간행이 마무리될 무렵 심공이 내게 서문을 청하고, 함께 뜻을 모았던 이들도 내게 서문을 청하기에, 감히 청을 받들어 이 서문을 쓴다.
* 읍취헌 박은(1479-1504)은 흔히 해동강서시파로 불리는 시인이다. 강서시파는 송대의 황정견 진사도 등 일군의 시인을 일컫는 말로, 주도자였던 황정견의 고향이 강서였기에 붙여진 명칭이다. 이들은 험벽한 전고의 사용과 기굴(奇崛)한 시풍을 추구했다. 해동강서시파는 박은 이행 정사룡 등을 지칭한다. 박은의 널리 알려진 「복령사(福靈寺)」(아래 시)를 읽어보면 이들의 시풍이 어떤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 신라부터 내려온 오래된 절이요 伽藍却是新羅舊
서축(인도)에서 가져온 천불상이라 千佛皆從西竺來
예부터 신인은 절속한 험지를 찾았나니 終古神人迷大隗
지금 이곳은 천태산과 같구나 至今福地似天台
봄 날씨 어둑어둑 비 올듯하여 새들 지저귀고 春陰欲雨鳥相語
무정한 고목엔 구슬픈 바람만 스쳐가네 老樹無情風自哀
만사란 한바탕 웃음거리도 안되거니 萬事不堪供一笑
청산서 세상 보니 먼지 본색 드러나네 靑山閱世自浮埃
1, 2구는 복령사의 오래된 햇수와 보기 드문 소장품을 통해 복령사의 특별한 외적 면모를 그렸다. 3, 4구는 이를 심화하여 도교의 성지인 천태산과 같은 고고한 곳이라는 것으로 복령사의 특별한 내적 면모를 그렸다. 5, 6구에서는, 시상에 변화를 주어, 누구나 한 번쯤 그려봤을 이러한 탈속적인 곳에 대한 시인의 느낌을 표현했다. 보편적으로는 탈속적인 곳에서 느낄법한 청신한 감상을 쓸만한데, 시인의 느낌은 이와 다르다. 음울한 비장미마저 느끼게 하는 감상을 말했다. 5, 6구가 외적 사물을 통해 그런 감상을 표현했다면, 7, 8구는 그런 감상을 직접적으로 토로했다. 이 시는 평범치 않는 감상을 전반부와 후반부의 격렬한 대비 구도를 통해 표현하면서 그 내에서도 외부와 내부의 대비 표현을 사용해 대비 구도를 심화시키고 있다. 내용과 형식 모두 기굴(奇崛)함을 발휘한 시라 볼 수 있다.
* 정두경이 박은의 문집을 중간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박은의 문학적 성과가 사라질 것이 아쉬운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박은이 보여준 선비로서의 올바른 자세― 곧은 말과 행동 ―가 문학인의 본보기가 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정두경은, 박은의 문집 중간(重刊)을 통해, 삶과 문학이 유리되(려)는 현실에 대해 비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 「복령사(福靈寺)」시 3구와 마지막 구의 해석에 자신이 없다. 부족한 점, 이해해 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