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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찔레꽃 May 02. 2023

길에서 길을 묻다

20일 도보 국토 종단기(제8화)

4월 6일 목요일


다시 곰의 자손으로 돌아와 때아닌 긴 겨울잠을 자고 눈을 뜨니, 5시다. 근 12시간을 잤다. 중간중간 잠이 깨긴 했지만, 겨울잠은 계속 이어졌다. 곰도 겨울잠을 자며 가끔씩 깨나 모르겠다. 모든 아침 의식 행사를 마치고 정확히 6시에 모텔 현관문을 나섰다. 마당에 발을 내딛는데, 여주인이 나와 있다. 인사를 했더니, “일찍 출발하시네요?” 하면서 웃는다. 일찍 방을 비워주어서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더 기분 좋게 해 줬다. “방 깨끗이 정리했습니다~.” “안 그러셔도 되는데….”  하면서 또 웃음을 짓는데 비릿한 냄새가 묻어난다.


네이버 지도 앱을 켜고 임실 공용 터미널까지 ’길찾기‘를 누르니 37km에 도보로 9시간 59분 걸린다고 나온다. 오전 오후 5시간씩 나눠 걷고 중간에 간식이든 매식이든 점심을 먹으면 될 것 같다(간식으로 때웠다). 완전히 빗기운이 가시지 않았지만, 비가 지속해 올 것 같진 않다. 자, 출발~!


‘청정원’에서 운영하는 순창 고추장 공장을 지난다. 고추장 공장이라… 어렸을 때 고추장 된장은 집에서 담근 것만 먹고 자란 세대라 그런지 왠지 어색하고 낯설게 느껴진다. 먹을거리는 집에서 만들어 먹어야 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일 것이다. 공장에서 생산된 먹을거리를 부지기수로 소비하고 있으면서도 먹을거리는 집에서 만들어 먹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유년 시절의 체험 탓도 있지만 건강염려 탓도 있다. 공장에서 만들어 유통하는 식품엔 아무래도 여러 가지 화학 첨가물이 들어갈 수밖에 없고, 그것은 인체에 유해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미 공장에서 생산되는 음식물을 부지기수로 먹어 왔고, 앞으로도 먹을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이런 의식을 갖고 있는 것은 무의미한 걱정일 뿐이다. 그저 유해한 화학 첨가물을 덜 넣고 생산하기만을 바랄 뿐. 그나저나 ‘청정원’ 사장님네는 저 공장에서 생산되는 고추장을 드실랑가 모르겄네?

공장에서 생산된 고추장을 먹은 지 오래됐으면서도 막상 그 생산 공장을 접하니 어색한 감정이 든다. 왜 그럴까?


1시간 가까이 걸었는데, 이상하게 임실 가는 중간 이정표가 안 보인다. 대신 보성 이정표가 보인다. 어, 이거 이상한데? 앱을 켜고 확인하니,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이상하다? 분명히 출발할 때 잘 확인했는데…. 방향을 돌려 다시 출발점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자책이 들었지만 애써 자위했다. ‘지금이라도 발견했으니 다행이잖아.’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이후의 단추도 계속 잘못 끼우게 된다. 옷 입을 때만 그럴까, 개인사도 그렇고 사회사도 그렇지 않을까? 해결 방법은, 바로잡는 수밖에 없다! 늦어서 어쩔 수 없다고 무시하고 방치하면 더 악화될 뿐이다. 실수를 통해 대단한 교훈까지 얻은 양 스스로 대견해하며 부지런히 걸었다.


원점으로 돌아와 앱을 켜고 살피니, 순창 읍내를 외곽으로 돌아가게 안내해 준다. 그런데 눈앞에 시내를 가로질러 가는 임실 방향 이정표가 보인다. 앱을 따를 것인가, 저 이정표를 따를 것인가? 이정표를 따라도 별 무리 없을 것 같다. 앱의 안내를 포기하고 이정표를 따라 임실 쪽으로 걸었다. 이번엔 틀리지 않았다. 순창 읍내를 빠르면서도(?) 순조롭게 벗어나 임실 이정표가 보이는 큰 도로를 만나게 되었다. 이제 저 이정표만 보고 걸으면 된다. 휴~.


날이 개어 화창하다. 한참을 걸으니, 덥다. 큰 도로 옆으로 구도로인 것 같은 데가 나오는데, 잘못하다 길을 잃을 것 같아 그냥 큰 도로로 계속 걸었다. 산 중턱에 요양원이 보인다. 요즘 농촌 지역에 부쩍 늘어난 시설이 태양광과 요양원 시설이다. 그런데 뭔가 계획적으로 들어서기보다 우후죽순 중구난방 격으로 들어서는 것 같은 느낌이다. 분명 필요한 시설들인데 그런 식으로 들어서서 그런지 대할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다. 저 요양원도 그래 보인다(다른 이들도 그렇겠지만, 우리 내외가 공통으로 바라는 생애 마지막 소원은 요양원 안 가고 집에서 임종하는 것이다. “구하라, 그러면 얻을 것이요.”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으니, 예수님 빽 믿고 구하면 얻게 될는지도 모를 일이다. 부디, 그렇게 되기를!).

 이제 요양(병)원은 우리 사회에서 생의 마지막 코스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이 코스는 피하고 싶다. 나만의 심정은 아닐 터. 


날이 더워 자꾸 물을 들이킨다. 아껴 마셔야 하는데…. 한 번만 더 마시고! 임실까지 25km 남았다는 이정표가 보인다. 그런데 저만치 터널이 보인다. 아, 저 터널을… 걱정하던 차 신의 계시인지 버림인지(결과적으론 둘 다였다) 옆을 보니 구도로가 있고 임실 가는 이정표도 보인다. 그래! 구도로로 가는 거얏! 때마침 작은 볼일도 급해 망설임 없이 구도로로 갈아탔다. 얼마간 가다 주변을 한 번 훑어보고 작은 볼일을 봤다. 오매, 시원한 거! 그간 한 번도 큰일 작은 일로 자연을 오염시킨 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부득이 오염을 시켰다. 자연, 미안허이, 용서해 주시게나!


터널을 지난 차들이 고가도로 위로 쌩쌩 달린다. 그 아래 구도로를 따라 걸으며, 다시 한번 구도로로 노선 변경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한참을 걷는데 김용택 시인 생가 안내 표지판이 나온다. 오잉? 생각지 않은 횡재다! 그런데 저 김용택 시인이 그 김용택 시인 맞나? 혹 동명이인 아녀? 요즘엔 자기 자랑하는 문인도 많은디. 길가 동네 분인 듯한 분에게 물어보니, 뜨악한 표정으로(김용택 시인을 모른다 말여?) 나를 바라보다 말씀하셨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 맞지라.” 생가까지 얼마나 가야 하냐고 물으니, 얼마 안 가면 있다며 김 시인이 거기 살고 있다고 말했다. 김 시인을 찾아가 사진 한 장 찍으면 좋은 추억거리가 되겠다 싶어, 가던 노정을 잠시 멈추고 김 시인 집으로 향했다.


김 시인이 ‘섬진강’의 시인으로 유명한 것은 알지만, 정작 그 시 전편을 읽어 본 적은 없다. 단편으로 한 두 편 읽었을 뿐. 내게 김 시인은 ‘그 여자네 집’의 시인이다. ‘그 여자네 집’은 유치환의 ‘행복’과 함께 아슴아슴한 연애 감정을 잘 그려 읽을 때마다 고목나무에 꽃이 피게 한다.


가을이면 은행나무 은행잎이 노랗게 물드는 집/ 해가 저무는 날 먼 데서도 내 눈에 가장 먼저 뜨이는 집/ 생각하면 그리웁고/ 바로 보면 정다웠던 집….


아, 내가 그 시인과 사진을 찍을 수 있다니, 이건 신의 계시로다! 그런데 조금만 가면 있다던 김 시인의 집은 꽤 걸었는데도 안 보인다. 아~ 신의 계시가 아닌가 보다. 이러다가 지난번처럼 숙소를 못 찾는 낭패를 볼 수 있다. 그냥 가던 길 빨리 가자. 발길을 돌리는데 섬진강 자전거 도로 이정표가 보인다. 잠시 김 시인 집 언저리를 다녀갔다는 표시나 남기자. 김 시인이 그렇게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한 섬진강 사진이나 한 장 찍자(그런데 왜 이리 강이 쪼그만 하냐? 착각이었다. 길을 가며 거대한 섬진강을 만나게 됐다). 사진을 찍고 방향을 틀었던 지점으로 되돌아와 다시 임실을 향해 출발했다.

섬진강 지류. 김 시인은 섬진강 본류보다 이런 정겹고 아슴한 지류를 더 좋아했을 것 같다.


조금 갔는데 김 시인이 근무했다는 마암 분교를 연상시키는 작은 초등학교가 눈에 띈다.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아름답다. 평일이니 아이들이 등교했을 터, 아이들이 보일 법도 한데 전부 교실에서 수업받는지 운동장엔 적막만이 감돈다. 사진을 한 장 찍고 발길을 옮겼다. 

강변 산자락의 한 초등학교. 절로 시가 나올 듯한 풍경의 학교다. 아이들의 마음에서도 시가 흘러나오겠지?


조금 가다 보니 방치된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 옛 건물이 나온다. 근대 건축 유산 같은 느낌을 준다. 교회에 다니진 않지만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에 대해선 애틋한 감정을 갖고 있다. 어렸을 적 어린이 성경 학교를 이곳에서 다녔고, 성장해서는 이곳에서 주장하는 ‘채식과 현미식’에 대해 공감했기 때문이다(성경 공부나 교리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지금도 실천은 미미하지만, 여전히 이곳의 주장인 ‘채식과 현미식’에 공감하고 있다. 애틋한 감정을 사진 속에 담았다. 찰칵.

어덕의 폐허가 된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 폐허 전 청정한 마음으로 예배 봤을 아낙네들이 그려진다.


갈수록 거대한 강이 나타난다. 섬진강이다! 구도로라 그런가, 인적도 차량도 드물다. 한적한 강변을 걸으니, 다시 한번 구도로로 갈아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정면만 보면 안 돼, 옆도 봐야지. 아까 정면만 보고 갔어 봐. 이런 한적한 강변 풍경을 어떻게 감상할 수 있겠어. 인생의 큰 교훈을 얻은 듯 속으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발길을 옮긴다. 가끔 셀카도 찍었다.

섬진강을 배경으로 한 컷.  인적이 거의 없어 오만가지 표정으로 셀카를 찍었다.


무루마을이란 데를 지난다. 쓸쓸함을 넘어 스산함까지 느껴진다. 시골 산자락 동네가 다 그렇지 뭐, 하면서도 왠지 아쉽다. 스위스는 오늘날 관광과 휴양의 메카가 됐지만, 사실 그 나라 땅은 사람 살 곳이 못 되는 땅이다. 그런데도 관광과 휴양의 메카가 된 것은 천연의 풍경을 잘 유지하면서 인프라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시골도 그렇게 만들 수는 없을까? 모두가 도회지를 동경하게 만들어 시골은 버림받은 곳으로 된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시골은 시골답게 도회지는 도회지답게 만들어 상생할 수 있는 틀을 짜야하지 않을까? 신의 계시를 받은 건가, 스스로 생각해도 기특한 발상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길을 걷는다. 섬진강 댐이 보인다. 오, 역시 댐이라 위용이 돋보이는군. 사진 한 장 찰칵.

섬진강 댐의 위용. 자연의 힘도 대단하지만 인간의 인위도 만만치 않다. 


그런데 이거 왜 임실 가는 중간 이정표가 안 보이는 거냐? 앱을 켜고 현 위치에서 임실까지의 ‘길찾기’를 누르니 25km라고 나온다. 엥? 아까 구도로로 바꿔 탈 때 임실까지 25km라는 이정표를 봤는데, 지금까지 걸은 거리가 얼만데 25km 남았다는 겨? 이상해서 다시 살펴보니, 아뿔싸, ‘현 위치’가 이미 임실을 지나 임실과 반대 방향인 정읍시 주소로 나온다. 그러니 여기서 임실까지의 거리를 눌렀을 때 25km라고 나올 수밖에. 시간은 4시 30분을 넘어서고 있었다. 임실 가기는 글렀다. 그러면 부지런히 정읍시로 가서 숙소를 구할 수밖에. 안 되면 중간 어디서라도 숙소를 구해 1박을. 아, 어디서부터 사단이 생긴 걸까? 갑자기 강변 풍경을 즐기던 여유롭던 마음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후회가 밀려온다. 정도를 벗어나서 그렇지! 아니, 언제는 옆길도 보며 가야 한다고 좋아하더니? 서로 아웅다웅 다툰다. 아, 그만~.


이따금 펜션이 눈에 띄는데 내게 어울리는 숙박지는 아니다. 패스. 5시. 이젠 펜션도 안 보인다. 조금 가니 칠보면이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그래, 저기서 1박 하자. 뭐라도 있겠지. 가만, 지난번 북일에서 낭패를 봤는데. 아녀, 있을 겨. 5시 30분. 날이 어두워진다. 6시. 아직 칠보면은 멀었다. 6시 30분. 어둑하다. 칠보야, 아직도 멀었냐? 7시. 깜깜하다. 도로변에 인가도 없다. 이따금 지나가는 차만 있을 뿐. 태워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하지만 끝내 손을 들지 못했다. 7시 11분. 도로를 벗어난 곳에 마을 불빛이 보인다. 반갑다! 교회 십자가가 반짝인다! 그래, 저기 가서 부탁해 보자! 도로를 벗어나 교회를 찾아갔다. 그런데, 십자가만 번쩍인다. 목사관도 교육관도 깜깜하다. 다시 큰 도로로 나가려는데, 도무지 길이 어디로 연결되는지를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 되어 인도로 보이는 데를 따라 걷는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하나로 마트’ 네온사인이 보인다. 아니 저것이 보일 상황이 아닌데? 큰 도로를 벗어나 이리로 들어왔고 다시 나가면 큰 도로와 만날 터인데, 어째 저것이 보이지? 그러나, 반갑다(지금도 당시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잘 모른다)! 하나로 마트가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하나로 마트가 있다는 건 사람들이 있다는 것. 사람들이 있다면 뭔가 해결책이 있다는 것 아닌가!

어두워지는 도로. 불안감이 밀려든다. 저 끝은...


도착하고 보니(여기가 그렇게 애타게 찾던 칠보면 중심가였다), 모든 것이 파장 분위기다. 하나로 마트도 문을 닫았다. 숙소 할 만한 데가 없다. 어이할꼬? 그런데 눈에 띄는 건물이 있다. 농촌 무슨 무슨 사무소라는데다. 귀농인들에게 도움을 주는 곳 같다. 가면 왠지 숙소를 안내해 줄 것 같다. 노크하고 들어가 사정 얘기를 하는데, ‘웬 미친 놈여?’ 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숙소는 없다고 단칼에 잘라 말하고, 정읍 가는 막차가 있으니, 그것을 타란다. 7시 30분인데, 막차가 있을까? 정말 있냐니, 있단다. 차부가 가까이 있으니 가보란다. 친절하진 않지만 그래도 필요한 말은 다 해줬다. 감사허유~.


차부. 컴컴하기만 하지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맞은편에 불빛 환한 카페가 있다. '카페 고현.' 막차가 있는지 물어보았다(아까 알려준 사람이 영 미덥지 않아서). 그랬더니 가게에 붙여 놓은 버스 시간표를 보며 금방 올 거라고 알려준다. 나같이 차 시간을 물어보는 사람이 있어 시간표를 만들어 놓은 것 같다. 혹시 이 근처에 숙박할 데가 있냐고 물으니, 없다면서, 한번 알아는 보겠다고 어딘가 전화를 건다. 그러면서 우선 밖에 나가서 차를 기다리란다. 사람이 없으면 그냥 간다고. 카페 주인은 하얀 얼굴의 가녀린 몸매를 한 도회지 풍의 여성인데, 생각보다, 친절했다. 카페 문을 나서는데 버스가 들어오는 게 보였다. 급히 카페 문을 열고 소리쳤다. “사장님, 버스가 와요. 감사합니다!” 힘차게 손을 흔들어 차를 세우고 올라탔다. 손님이 몇 안 된다. 자리에 앉았다. 살았다! 시계를 보니, 7시 44분이었다.

고맙다, 카페 고현! 아니, 고맙습니다, 카페 고현 여사장님! 언제가 꼭 다시 들려 감사 인사 드리겠습니다.


8시 20분. 정읍 시외버스 터미널 간이 승강장에 내렸다. 시(市)라 그런지 사람들이 붐빈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사람 없는 칠흑 같은 곳에서 헤맸다가 붐비는 사람들을 만나니, 왜 이리 좋으냐! 평소 “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랐다”를 읊었는데, 한계 상황에 부딪혀 보니, 나는 그런 곳에선 살 위인이 못 된다는 걸 절감했다.


터미널 근처라, 숙소가 즐비하다. ‘첼로 모텔’을 선택했다. 무슨 무슨 좋은 숙박지로 선정된 곳이라고 내건 광고에 혹한 것. 4만 원이란다. 비싸지 않다. 내부 시설도 깔끔하다. 똑같은 가격인데, 어제 묵었던 모텔과 현격히 대조된다. 일체의 저녁 의식을 끝내고 침대에 누웠다. TV를 켜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많이 피곤하다. 14시간 이상을 걷지 않았는가. 거기다 심적 고통까지. 


엎드려 가족 단톡방에 간단히 소식을 올리고 수첩에 오늘의 소회를  썼다. “아, 임실! 피곤, 고통! 임실≒임시≒임질. 발음 슷비. 중도 이탈+순간 쾌락=피곤! 고통! 그러면, 정면/정도만?” 메모장을 내던지고, 불을 껐다. 빨리 자야 한다. 내일은 진안까지 간다.


*임실과 관련 있는 분들, 글 마지막 부분에 대해 분노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루 너무 힘들어서 스트레스 해소 차원으로 쓴 저급한 소회일 뿐입니다. 임실이야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길치인 본인이 잘못이지. 그냥 약간 읽는 분들의 재미를 위해 드러낸 것뿐이니,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고 웃어 넘겨주시기를 바랍니다. 넉넉한 마음으로 임실을 찾아 관광할 시간이 오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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