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도보 국토 종단기(제13화)
4월 11일 화요일
5시 30분, 눈을 떴다. 앱을 켜고 문경 시내까지 거리 검색을 했다. 48km에 도보로 12시간 30분 걸린다고 나온다. 오늘은 어느 모텔서 잘까? 이제는 눈만 뜨면 잘 곳부터 찾는다. 숙박지 앱 ‘여기 어때’를 켜고 문경 시내 일원의 모텔을 검색해 봤다. 저가 순으로 훑어가며 댓글 평을 읽는데, ‘퀸 모텔’이 눈에 띈다. 시설은 약간 노후됐지만 가성비가 좋고 무엇보다 주인이 친절하단다. 그래, 여기로! 저녁 6시쯤 숙박지에 들어가려면 빨리 준비해야겠다. 어제 샀던 호박죽으로 아침을 먹고 간단히 세수를 한 뒤 제반 아침 의식을 끝내고 민박집을 나섰다. 6시 30분. 자, 여왕님 품을 향하야 출~발!
날이 좀 어둑하다. 기분도 덩달아 살짝 눅눅해진다. 역시 사람은 자연의 일부분. 과수 전문 인력을 댄다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그런데 ‘작업 현장 관리 필수’라는 말이 덧붙어 있다. 인력들이 제대로 일을 하지 않는다는(못한다는) 불평이 많아 덧붙인 모양이다. 저기서 대는 인력은 십중팔구 외국인 근로자들일 것 같다. 이제 농촌에서 이분들 없이는 일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 된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어느 모텔에선가 지방 TV 방송을 보는데 농번기를 대비해 베트남과 인력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일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 된 것 같은' 게 아니라, '일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고 말해야겠다. 우리도 70년대 외국으로 그 나라에서 하기 힘들어하는 일을 할 근로자를 보낸 적이 있는데, 과문해서 그런지, 농업 관련 근로자를 보냈다고 들어본 적은 없다. 그것은 그 나라가 생명과 직결된 먹을거리에서만큼은 자주성이 필요하다고 여겨 인력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지금 우리나라의 농촌 인력 외국인 의존 심화는 화근(禍根)을 갖고 있는 것 아닐까? 당장에야 언 발에 오줌 눗기로 인력 공급 문제가 해결되겠지만, 결국은 농촌 문제를 더 악화시킬 것 같다. 당국자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무심하게 지나칠 수 있는 플래카드를 보며, 대안도 딱히 없으면서, 머리 무거운 질문만 던지게 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식량 주권만은 지켜야 하는데….
산모롱이 도로를 지나가는데 친근감 가는 문구의 플래카드가 눈에 띈다. “할배요, 할매요 산불 내면 큰일납니데이~.” 봄철 논둑 밭둑 태우다 산불로 옮겨 붙는 경우가 많아 경각심을 주려 붙였을 터이다. 경직된 문구보다 한결 호소력 짙어 보인다. 봄철 논둑 밭둑 태우기는 아무 효과가 없다는 것을 수없이 들었다. 그러나 농사짓는 분들, 특히 연세 드신 분들에게는 그게 다 마이동풍인 것 같다. 본격 농사 전 논둑 밭둑에 불을 한 번 싸질러야 개운하다는 생각이 드는지 이 연례행사가 근절되질 않는다. 강력하게 처벌한다는 문구까지 써놨지만, 근절되긴 어렵지 않을까 싶다. 고정관념이란 얼마나 강력하고 무서운 것인가!
어둑한 풍경들을 계속 만난다. 저런 풍경의 그림을 어디서 봤을까? 컨스터블의 작품이었나? 먹물 빛 구름을 배경으로 검녹의 둔중한 산이 침묵에 잠겨있는데 그 아래 붉은빛 감도는 벚꽃 길이 실처럼 둘려있다. 얼마 가니, 이번엔 좀 밝은 색인데, 그래도 여전히 색조는 어둡다. 옅은 먹물 빛 구름을 배경으로 검녹색 산 위에 연녹색을 살짝 터치하고 밝은 회색의 바위를 조금 드러냈다. 오늘은 하느님이 아무래도 살짝 우울하신 것 같다. 하느님, 기운 내세요! 파이팅!
상주 시내로 들어서는데 중앙에서 내려오는 관리들이 머물렀다는 객사(客舍) 상산관(商山館)이 보인다. 본래 있던 자리에서 이리저리 옮기다 이곳에 정착됐다는데, 꽤 웅장해 보인다. 더구나 어둑한 하늘을 배경으로 보니 더더욱 웅장해 보인다. 시간이 되면 한번 들려보고 싶은데, 마음이 바쁘다. 어서 빨리 여왕님의 품속으로!
배가 고프다. 아침을 죽으로 먹었으니, 당연한 일. 시계를 보니 12시 30분이다. 배낭에서 누룽지를 꺼내 씹으며 간다. 좀 부드러우면 좋겠는데, 딱딱해 얼마간 입에 옹물었다가 씹는다. 처음엔 멋모르고 우적우적 씹다가 입천장에 상처를 냈다. 요령이 생긴 것. 경험만큼 확실한 앎은 없다.
경천대(擎天臺)라 써 놓은 우람한 안내석이 보인다. 하늘을 떠받치는 누대라… 높은 곳에 있다는 뜻인가, 꼿꼿한 모습이란 뜻인가, 의미가 분명치 않다. 한문은 조사가 발달하지 않은 글이라 종종 의미 전달이 불분명하다. 게다가 압축력 또한 강해 의미 전달을 더욱 어렵게 한다. 자신의 무식은 탓하지 않은 채 의미가 불분명한 누대 이름을 한문 탓으로 돌려본다. (나는 우람한 안내석 밑에 쓴 ‘새 상주 로타리 클럽’이란 명칭만 보고 여기가 무슨 골프장인 줄 알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유명 관광지였다. 로타리 클럽을 골프 클럽쯤으로 여긴 무지이니 '경천'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문경 가는 입간판이 보이는데 ‘농암’ 가는 노정도 안내해 놓았다. 농암, 아들아이가 다닌 대안학교 ‘샨티’가 있던 곳이다(지금은 서산으로 옮겨왔다). 낯익은 이름이라 친근감이 든다. 아들아이는 풀무 농업학교에 합격했었는데, 최종적으로는 이곳을 택했다. 아내와 나는 속으로 많이 아쉬웠지만 아들아이의 의견을 따랐다. 아내는 그래도 종종 샨티 학교에 들렀지만 나는 아들아이가 그곳을 졸업할 때까지 몇 번 안 가봤다. 아이가 미워서가 아니고 단지 너무 멀어서. 근 4시간이 걸리는 그곳에 갔다가 돌아오면 초주검이 됐다. 아들아이한테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들아이가 샨티 학교에 들어갈 때만 해도 대안 학교들이 호응을 받았는데 지금은 예전만 못한 것 같다. 대안 학교에서 시도했던 내용들이 공교육에 많이 들어왔고, 입시도 전만큼 경직되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러다 보니 대안 학교 학생 수가 많이 줄고 그만큼 학교 운영이 어려워져 문 닫는 학교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정확한 내용은 아니다). 외국의 유명한 대안 학교, 서머힐 같은 학교가 우리나라에도 건재했으면 좋겠는데….
우리 내외가 아들아이를 대안 학교에 보낸 것은 학교 현장에서 보고 겪은 지긋지긋한 입시 교육에 환멸을 느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나 자신 두 번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고교 시절이 큰 동기가 됐다. 당시 학교 시절을 흐뭇하게 추억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내겐 정말 돌이키고 싶지 않은 시절이었다. 가장 아름다운 푸르른 봄날 같은 시기를 온통 입시 공부라는 회색빛으로 물들인 시절을 아들아이에게 대물림하고 싶지 않았다. 공교육에 종사하고 있는 선생으로 제 자식을 대안 학교에 보낸 것에 부끄러움이 있었지만 정말 자식에게는 끔찍한 입시 교육을 받게 하고 싶지 않았다(딸아이가 고교 1년을 다니고 자퇴한다고 했을 때 두말 않고 허락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아들아이가 샨티 학교에서 보낸 시간이 행복했는지 어땠는지는 알 수 없다. 너무 부모 의견만 강권해 아들아이의 진로를 방해한 것인지도 모른다(강권했다고 했지만 윽박지른 건 아니고 어렸을 때부터 분위기를 그런 식으로 조성했다). 하여 나중에 원망을 들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정말 아들아이에게는 끔찍한 입시 교육을 받게 하고 싶지 않았다(‘끔찍’이란 말을 벌써 두 번이나 사용했다. 내게 고교 시절은 그만큼 ‘끔찍’했다). 아들아, 후일 애비를 원망할지라도 애비의 이 절실했던 마음만큼은 이해해 주렴(아들은 지금 스물넷인데 군대에 가 있고 대학 1학년 휴학 중이다).
문경 시내에 들어섰다. 앱을 켜고 ‘퀸 모텔’을 찾았다. 방향을 확인하고 걷는데, 이상한 느낌이 든다. 왠지 목표 장소와 멀어지고 있는 듯한 것. 앱을 켜고 다시 확인해 보니, 아뿔싸,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앱을 켠 뒤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을 내가 있는 곳에서 가야 할 방향으로 일치시킨 뒤 걸어야 하는데, 대충 경로만 확인하고 걸었더니 이런 사단이 생긴 것이다. 하여간 이놈의 방향 감각은…. 허벌나게 걸어 겨우겨우 퀸 모텔에 도착했다. 시계를 보니 7시였다. 모텔은 댓글에서 본 것과 달리 그렇게 노후돼 보이지 않았다. 시(市)에서 인정하는 모범 숙박업소라는 작은 패가 붙어 있었다. 주인(여주인이다)도 친절했다. 가격은 4만 원. 방에 들어가니 리모델링을 한 듯 내부가 화이트 톤으로 깔끔하게 단장돼 있었다. 후줄근한 차림으로 침대에 앉으려니 괜시리 송구한 마음이 들었다. 침대보가 너무 깨끗하고 단정했던 것.
배가 고프다. 저녁을 한 끼 사 먹자. 모처럼 용기를 내어 모텔을 나와 식사할 곳을 찾는데, 모텔이 외곽 지대에 있어서 그런지 마땅히 먹을 만한 데가 없다. 순대국밥집이 눈에 띄어 들어갔는데, 여주인 혼자 TV를 보고 있었다. 내부를 보니 오픈하지 얼마 안 돼 보였다. 두 종류의 순대국밥이 있는데, 그냥 순대국밥을 시켰다(순대만 넣은 것을 달라고 했어야는데, 큰 실수였다). 잠시 뒤 나온 순대국밥. 오매,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잡다한 것들만 가득하네. 순대는 3개밖에 없었다. 나는 순대국밥에 들깨를 많이 쳐서 먹는데 이 집엔 들깨 통이 없었다. 들깨 없냐고 물으니, 국밥에 넣었는데 부족하냐며 쥐꼬리만큼 퍼다 준다. 한 숟가락 뜨는데 조미료 냄새가 역하다. 끝까지 먹을 수 있을까 싶다. 분기탱천 악전고투하며 최선을 다해 먹었지만 끝내 다 먹을 수가 없었다. 내 생전에 이렇게 맛없는 순대국밥은 처음이다. 8천 원이었는데, 정말 본전 생각이 간절했다. 숙소로 돌아오며 파리바케트에서 내일 아침으로 먹을 카스텔라와 초코 우유를 샀다.
숙소로 돌아와 가족 단톡방에 소식을 전하고, 샤워 이하 제반 저녁 의식 행사를 마쳤다. 뽀송한 침대에 들어가니 더없이 기분이 좋다. 아~ 이런 것이 여왕님의 품이구나. 느긋하게 베개에 기대 리모컨을 누르고 TV를 보는데, 오늘은 볼 만하게 나온다. 장사 천재 백종원. 이 양반을 모로코에 데려다 놓고 생면부지의 땅에서 음식 장사를 시키는 프로그램이다. 도대체 어떻게 해나갈 것인지 궁금한데 정해진 짧은 시간 안에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성사시킨다. 장사에 천재적 감각이 있긴 있는 모양이다. 그나저나 저 양반 이젠 아내(소유진) 보다 더 유명하더구먼. 최근엔 예산 시장 살리기도 하는 것 같던데…. 훌륭하고 멋져 보이는데, 다만 소심하고 걱정 많은 내겐(더구나 현미식과 채식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는), 저 양반의 음식이 건강한 건지에 대해선 자꾸 고개가 주억거려진다. ‘맛있고 잘 팔리는 음식=건강한 음식’은 아니라고 보기 때문. 이 사람아, 걱정 접어! 자네 건강이나 잘 챙겨! 그려, 맞어! TV를 끄고 불도 끄고 여왕님 품속으로 깊이깊이 파고들었다. 내일은 괴산 연풍까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