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빨리 3월이 왔으면 좋겠다

by 찔레꽃
스크린샷 2025-02-16 071415.png

사진 출처: 전남 광양 매화축제 홈페이지




洛陽訪才子 낙양으로 재자를 찾아갔더니

江嶺作流人 강령 땅에 귀양 갔다고

聞說梅花早 들으니 매화가 일찍 핀다는데

何如北地春 북방의 봄과 비교하여 어떠한지


맹호연의 '낙양방원습유불우(洛陽訪袁拾遺不遇)'이다. 힘들게 오랜만에 친구를 찾았는데 먼 남쪽 지방에 유배 갔다는 놀랍고 슬픈 소식을 들었다. 이 훌륭한 이가 어떻게 이런…. 1, 2구에서는 낙양과 강령 그리고 재자와 유인의 두 대비를 통해 원습유의 인격과 현재의 불행을 선명하게 제시해 작자의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고, 3, 4구에서는 대유령(강령 지역에는 매화로 유명한 대유령이란 곳이 있다)의 매화 만발한 찬란한 풍경 속에서 우울하게 낙양의 봄을 그리워할 원 씨에 대한 작자의 위로와 동정의 마음을 그렸다. 평담 하면서도 슬픔이 짙게 묻어나는 시이다.


매년 새해가 되면 그럴듯한 결심 몇 가지를 한다. 내가 근 30여 년에 걸쳐 새해마다 결심한 것 중의 하나는 ‘한시 암송’이다. 그런데 ‘새해마다’란 말이 말해주듯 달성한 적이 없다. 최대 한 달, 짧으면 일주일에 그 결심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늘 스스로 이렇게 변명했다. ‘할 일이 많고 바빠서.’ 올 해도 여지없이 이 결심을 했는데, 이젠 더 이상 변명을 할 처지가 아니기에(초로의 백수이다), 올 해는 어쩌면 이 오래된 결심을 달성해 낼지도 모르겠다. 위 시는 오늘 암송한 시이다.


혹자는 왜 그런 바보 같은 결심을 했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전에는 그렇다 쳐도 지금이야 손안에 수만 수의 시를 들고 다니는데 말이다. 틀린 말은 아니나, ‘부뚜막의 소금도 입에 넣어야 짜다’고 손안에 있는 시는 왠지 ‘그림 속의 떡 ’ 같아 실감이 나질 않는다. 가슴속에 들어 있어야 실감이 난다. 바보 같은 줄 알면서도 암송을 결심한 이유이다.


혹자는 또 지금 세상에 한시가 뭔 의미가 있기에 그 짓을 했냐고(하려는 거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이 역시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그 짓을 한(하려는) 이유는 단 하나 한문을 전공했다는 것에 대한 면목을 세우고 싶어서이다. 즉흥적으로 한시가 나오지는 않아도 그 근처까지는 가야 어디 가서 “나, 한문을 전공했소”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한시를 지을 줄은 알지만 그 내용이 너무 생경하고 시간도 많이 걸려 도대체가 어디 가서 한문을 전공했다고 말하기가 낯부끄럽다. 내용이 충실하면서도 그리 길지 않은 시간에 한시를 지으려면 아무래도 뱃속에 적지 않은 시(적어도 300여 수의)가 담겨 있어야 할 것 같기에 이 바보 같은 짓을 되풀이 결심했던(하는) 것이다.


올 해는, 앞서 말한 대로, 이 오랜 결심을 잘하면 달성해 낼 수 있을 듯싶다. 유일한 난점은 박약한 기억력인데, 이거야 뭐 자꾸 되풀이하면 해결되지 않겠나 싶다. 기대하시라, 연말 이 초로의 늙은이가 거의 술술 한시를 쏟아내는 모습을! 하하하.


사진은 광양의 매화 축제 사진인데, 올 매화 축제는 3.7~16일 사이에 있다고 한다. 맹호연의 시를 접하면서 문득 광양 매화 축제가 생각나 찾아낸 사진이다. 광양은 내가 좋아하는 구한말의 선비 매천 황현이 살던 곳이기도 하다. 매천 황현은 원습유처럼 유배를 당한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 세상과 담을 쌓고 유인(流人)처럼 지냈던 이이다. 그는 구한말 자신이 살던 시대의 모습을 ‘귀국광인지국(鬼國狂人之國, 귀신과 미친 놈들의 나라)’이라고 표현했다. 모처럼만에 방안 샌님 생활에서 벗어나 광양 매화 축제에 한 번 다녀와야겠다. 화사한 꽃 속에서 그 이가 느꼈을 처연한 슬픔을 느껴보면 맹호연의 시도 한결 더 심도 있게 다가올 것 같다. 그리고 혹 나도 그럴듯한 한시 한 수 건질 수 있을는지도…. 빨리 3월이 왔으면 좋겠다. 하하하.


* 시 번역과 해설은 임창순의 ‘당시정해’에서 빌려왔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그래서, 당신 취미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