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日依山盡 태양은 산에 붙어 넘어가고
黃河入海流 황하는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欲窮千里目 천리 먼 풍경을 끝까지 보고 싶어
更上一層樓 다시 누각 한 층을 더 오른다
왕지환의「등관작루(登鸛雀樓, 관작루에 올라)」이다. 관작루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니, 동남쪽에 있는 중조산에 가로막혀 태양 빛이 보이지 않는 것을 빼고는 태양이 비치는 어느 곳이나 드넓게 탁 트여있고, 아래로는 이곳에서 방향을 바꾸어 곧장 바다로 흘러들어 갈 황하 강물이 바다와 만나 함께 흐르는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이 천지 사방에 가득 찬 장관을 남김없이 다 보고 싶어, 누대 한 층을 더 올라선다.
이 시는 넓은 중국의 평원을 읊은 시 가운데 대표작으로 평가받는다. 단순히 넓은 평원을 그린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통해 장쾌한 기상을 드러낸 점을 높이 샀을 것이다. 중국 학생들이 의무적으로 외워야 하는 시 중의 하나라고 하는데, 확실히 그만한 가치가 있는 시이다.
우리나라도 한문학의 역사가 장구한데 학생들에게 이와 같이 장쾌한 기상을 느끼게 할 만한, 하여 암송하게 할 만한 시가 없을까? 언뜻 떠오르는 것이 진화(陳澕)의 「봉사입금(奉使入金, 금나라에 사신으로 가며)」이다.
西華已蕭索 서화[송] 시들고
北塞尙昏夢 북새[금] 어둑하니
坐待文明旦 앉아서 문명의 아침을 기다리노니
天東日欲紅 하늘 동쪽에 찬연히 해 뜨네
새 문명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웅혼하고 힘찬 기상을 내뿜고 있는 시이다. 그것의 실현 여부는 차치하고라도, 이런 주체적 웅혼한 기상을 가졌다는 것 자체가 흐뭇한 일이니, 학생들이 외워 가슴에 품을만한 시라고 본다.
전통적인 시교(詩敎, 시를 통한 교육)를 회복하자고 하면 고리타분하게 들릴 수 있는데, 좋은 시가 불러일으키는 감흥은 수백 수천 마디의 말이나 그 어떤 책 못지않게 훌륭한 역할을 할 수 있기에 되살려 볼 교육이 아닐까 싶다. 지금처럼 점점 감수성이 메말라가는 시대엔 더더욱. 다음 시를 가슴에 담은 이(학생)는(은) 결코 “호수 위의 달그림자” 같은 말은 부끄러워서라도 하지 않을 것 같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犯)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사진은 인터넷에 떠도는 관작루 사진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누각이 아니고 흡사 고층 빌딩 같다. 원래대로 복원한 것인지 관광을 위해 과장되게 복원한 것인지 불분명한데, 왠지 후자 쪽일 것 같다. 하여간에 이 사람들 큰 거 좋아하는 거는 알아줘야 한다.
*원시 해석과 해설 부분은 임창순의 『당시정해』에서 옮겨 왔다. 이 시에 대한 해석과 해설이 난무하는데, 임 씨의 해석과 해설이 가장 적확하다. 문장은 다소 성글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