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는 왜 이런 걸….”
“다, 살이 되고 피가 되는 글이야.”
오랜만의 형제 모임. 가장 늦게 도착했다. 식사를 하려는데, 형님이 부진부진 쇼핑백에서 뭔가를 꺼내 형제들에게 나눠주셨다. 명언을 자필로 써서 만든 작은 액자였다. 번잡한 식당에서 그런 것을 주는 것도 어색한데, 명언에 대한 해설까지 달아주셨다. 평소 입바른 소리 잘하는 둘째 누나는 질색팔색을 했다.
내 액자는 ‘학불염 교불권.’ “아우는 교직에 있으니….” 운을 떼시고 해설을 덧붙이셨다. “공자 가라사대….”
한동안 방구석에 처박아 놨던 이 액자를 깨끗이 닦아 벽에 걸어 놓았다. 서재에 있던 책을 내보낼 때 이것도 버릴까 했는데, 왠지 마음이 끌렸던 것. 학불염 교불권이라, ‘교불권’은 몰라도 ‘학불염’은 앞으로의 노년 생활에 좋은 지침이 될 듯싶었던 것 같다. 굳이 평생 학습 운운 하지 않더라도, 백수에게 돈 안 들고 고상한 척 하기에 책을 벗 삼아 지내는 것 만한 것이 어디 있으랴. 일찍 직장을 나오셨던 형님이기에 샌님 아우의 앞날을 미리 헤아려 써주셨던 것 같다. 암만, 아우 보다야 형이 나은 법이지.
형님은 처자식 있는 독거노인이다. 형제들의 십시일반으로 생활하신다. 목하 십몇 년째 공인중개사 시험 준비 중이다. 형제들 여행 때 수험서를 들기 오기도 하셨다. 둘째 누나가 그딴 것 하지 말고 복지관에서 가서 즐겁게 놀 생각이나 하라고 타박하면, “난 그런 노인네들하고 달라. 바뻐.”라며 도서관에 가신다. 어쩌면 저 액자는 형님 자신의 의지를 내게 빙의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형님은 올해… 팔순이다. 진정한 ‘학불염’의 사내 아닌가! 암만, 아우 보다야 형이 나은 법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