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승지 누각엔 대개 한시문 편액이 걸려있다. 읽기도 버거운데 해석은 언감생심이다. 으레 '멋진 내용이겠지?' 정도로 간주하고 지나칠 뿐이다. 그런데 수일 전 공주 공산성 공북루에 걸린 편액을 살펴보고는 그것이 꼭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다행히 읽을 수 있고 해석할 수 있어 그 본색(?)을 밝히게 되었다.
第一山城拱北樓 제일산성공북루 나라 으뜸 산성 공북루에 올랐나니
丹心望美幾人留 단심망미기인류 충심으로 임금 생각한 이 몇이나 있었던고
詩情買月三春節 시정매월삼춘절 돈 주고 산 듯한 따뜻한 봄날 시정(詩情) 넘치는데
漁笛斜風十里洲 어적사풍십리주 아득한 강가엔 바람결에 실려오는 어부의 피리소리
氛祲碑文雙樹裏 분침비문쌍수리 쌍수정엔 요악(妖惡)한 내용 비문 있고
嶒崚石壁錦江頭 증릉석벽금강두 금강엔 험준한 층암절벽
人醉妓歌同一帆 인취기가동일범 한 배 탄 사람들 취하여 흥나고 기녀들 노래 질펀한데
鐘聲靈寺夕煙收 종성령사석연수 영은사 은은한 종소리에 저녁 안개 걷히네
역사적 사실을 회고하고 지금의 모습을 그린 시인데, 역사적 사실과 지금의 모습이 유기적으로 잘 연결이 안 된다. 1, 2구에서는 인조가 이괄의 난을 피하여 공산성에 피신한 내용을 그렸다. 그렇다면 3, 4구에서는 당시 장면을 조금 더 부연해서 언급하거나 지금 상황에서 당시를 돌아보는 장면을 그려야 하는데, 너무도 급작스럽게 현재 모습을 그렸다. 현재 모습이라 해도 회고한 장면과 연계가 되면 급작스러움이 덜한데 양춘가절(陽春佳節)의 모습을 그렸기에 양 내용 간의 격절(隔絶)이 과도하다. 5, 6구에서는 1~4구까지 진행된 내용에 변화를 주어야 하는데, 또다시 뜬금없이 인조의 피난 시절과 관계된 내용을 언급하고 있어 생뚱맞기 그지없다. 7, 8구는 그간의 전개된 내용을 마무리해야 하는데, 외견상으로는 마무리에 준하는 내용처럼 보이긴 하지만, 앞서의 내용 전개와는 맥락이 통하지 않는 마무리를 하고 있다. 1~4구까지 보여줬던 패턴인 과거 회고와 현재 장면 기술을 그대로 되풀이하여 현재 장면만을 기술했을 뿐 시 전체를 아우르는 마무리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는 3, 4구와 7, 8구를 따로 떼어 붙인 다음 다듬었으면 족할 시인데, 별 연관성도 없는 과거 사실을 끌어오는 바람에 좋지 못한 시가 되었다. 애써 이 시를 좋게 해석하면 1, 2, 5, 6구의 험난했던 과거와 3, 4, 7, 8구의 화평한 현재를 대비시켜 현금(現今)의 즐거움을 도드라지게 표현하려 했다고 볼 수도 있겠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지나친 견강부회 같다. 무엇보다 초보적인 두함경미의 내용 흐름이 없고 동일한 패턴을 반복하는 졸렬한 작법을 썼기 때문이다.
부족한 실력으로 선인의 시를 함부로 난도질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나 아무리 시를 읽어봐도 위와 같은 생각만 들뿐 별다른 감흥이 일지 않아 짜증 섞인 불만을 토로했다. 혹 눈 밝은 분이 보시고 잘못이 있다면 부드럽게(^ ^) 지적해 주셨으면 좋겠다. 아무튼 우리가 잘 모르는 옛 것이라 하여 무조건 우호적인 느낌을 갖거나 높게 보려는 태도는 지양되어야 할 태도인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