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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응보로다

by 찔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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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이 장손무기 등에게 말씀하셨다. “오늘은 나의 생일이오. 세상 모두 나의 생일을 축하하지만, 나는 도리어 비통한 심정만 드오. 비록 천하에 군림하여 사해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지만, 부모님께 사랑받는 즐거움은 영원히 얻을 수 없기 때문이오. 자로가 말한 ‘출세하여 넉넉히 살게 됐지만 부모님이 아니 계신 지금, 옛날 어렵게 살며 부모님과 함께 지내던 때가 외려 더 그립다’란 심정이 바로 지금의 내 심정이오.『시』에 ‘슬프다, 우리 부모님 / 나를 낳으시느라 너무도 힘드셨도다’라 했으니, 어찌 부모 힘들게 한 날을 즐거운 날로 여길 수 있겠소.”


당 태종은 중국 역사상 전설상의 성군을 빼고는 최고의 군주로 평가받는 이이다. 『통감절요』에서 그의 치세 다룬 부분을 읽으면 영명하면서도 결단력 있고 엄한 위엄을 지니되 자신의 과오를 과감히 인정하고 부하들의 고언을 기꺼이 수용하는 모습에서 더할 나위 없는 상쾌함을 느끼게 된다.


이런 당 태종의 특출한 면모를 일면 볼 수 있는 것이 위 발언이다. 보통의 군주 같으면 자신의 생일날 연회에서 축하받기 여념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당 태종은 외려 슬퍼하며 부모 그리는 마음을 피력하고 있다. 특별하지 않은가. 백번 양보하여 그의 발언이 신하에게 보이기 위한 가식적인 발언이라 생각할지라도 신하들에게 적지 않은 감동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


오늘은 나의 생일이다. 그런데 나는 당 태종의 심정 같은 것은 전혀 느끼지도 않았고, 보태어 아무런 안부 전화도 하지 않는 아이들에 대해 섭섭한 마음만을 곱씹었다. 물론 처와 형제들의 축하는 받았지만, 가장 받고 싶은 어쩌면 받아 마땅한 축하는 받지 못해 무척 아쉬웠던 것이다. 오늘이 애비 생일이니 축하하라고 너스레를 떨 수도 있지만, 왠지 그러기에는 내 자신이 너무 초라해 보여 그렇게는 못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이게 꼭 아이들 탓만이라고 하기도 그렇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 생일은 챙겼어도 내 생일은 애써 외면했다. 거추장스러운(?) 축하가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것이 은연중 학습되어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애비 생일을 등한시하게 된 것 아닌가 싶은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이건 내 자업자득이랄 수밖에 없으니, 아이들을 원망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운한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런데 되돌아보면 나도 부모님 생전에 부모님 생신을 제대로 챙겨드린 적이 없다. 우리 부모님도 나처럼 그런 것을 요청한 적 없으시고 나도 굳이 챙기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자식을 낳고 길러보니, 비록 부모님이 내게 그러한 것을 요청한 적 없으셨지만 그래도 무덤덤하게 넘기는 자식의 소행에 조금은 서운해하지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늘 내가 느끼는 아이들에 대한 섭섭함은, 흔한 말로, 인과응보일 터이다.


지난번 산소에 사초하러 갔는데, 떼가 많이 죽어 잔디를 일부 이식하고 왔다. 근자에 비가 자주 내려 잔디가 잘 살았을 것 같다. 주말에 잔디가 잘 살았는지 한 번 보러 가야겠다. 가서 뒤늦은 죄송함도 고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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